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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time Nov 30. 2020

아빠의 고백

책 읽기

지금은 잘 못 읽어주지만 아이들이 애기 때부터 책을 읽어줬습니다. 글자가 없거나 아주 조금밖에 없는 책을 주로 읽어줬습니다. 그림책 위주로 책을 읽다 보니까 수월했습니다. 시간도 얼마 안 걸리고 할 만했습니다. 애들이 어린이집, 유치원을 다니면서 책이 두꺼워지고 글자도 점점 많아졌습니다.


저는 한글을 가르쳐 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책만 읽어줬습니다. 안사람이 특별히 한글을 가르쳐 주는 거 같지도 않았습니다. 읽을 권수는 많아지고 매일 책을 읽어주는 게 생각보다 목도 아프고, 힘들고 귀찮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을 때 안사람이 책의 등장인물마다 목소리를 다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목도 더 아팠습니다. 사실은 책을 읽다가 몇 문장 건너뛰고 읽기도 했습니다. 애들아! 미안해. 별일 없이 지나갔습니다.


정확히는 기억은 안 나지만 유치원 때 같습니다. 딸이 혼자 책을 보길래 그냥 그림만 보는 줄 알았습니다. 그날 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책을 읽어주고 있었습니다. 목이 아팠습니다. 몇 문장을 안 읽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딸이 조용히 한마디 합니다.


아빠, 건너뛰지 마! 다 읽어


헉 너무 놀랬습니다. 딸이 글자를 읽을 줄 알았나 봅니다. 딱 걸렸습니다. 책을 한 문장도 안 빼고 다 읽어 줬습니다. 딸이 글자를 읽을 줄 알아서 기쁜 거보다, 이제 책을 제대로 다 읽어야 된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참, 철없는 아빠입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문제를 냅니다. 아, 여기서 부터 문제가 시작됐나 봅니다. 매번 문제, 문제 그놈의 문제를 내라고 한 이유를 이 글을 쓰면서 알았습니다. 쓰면서 깨닫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책에 있던 동물이나, 물건의 개수 색상에 관해서 문제를 냅니다. 문제를 내면 나, 나 하면서 서로 문제를 맞히려고 손을 들고 경쟁을 합니다. 정말 별것도 아닌 문제에 왜 그렇게 흥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책을 읽어주면 애들이 책 내용은 안 듣고 책에 있는 그림만 봅니다. 동물, 자동차, 물건 개수 세고, 색상 확인하고 둘이서 난리입니다. 문제를 예측하고 서로 토론도 합니다. 못 말립니다. 그럼 어쩔 수 없습니다. 문제 출제 경향을 좀 바꿔야 할 시점이 왔습니다. 이제, "무엇"에서 "왜" 위주로 문제를 내야겠습니다. 대한민국 아빠는 만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운전자가 담배를 차 시트에 비벼서 껐어. 이유는?


차 안에서 금연, 차 밖에서도 금연! 그나저나, 저 운전자는 애 아빠는 아닌가 봅니다. 너무 말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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