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세검정 초등학교 4학년 4반 담임교사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명은 실제와 무관하며,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본 글은 학교폭력 문제에 있어 어른의 책임을 상기시키고자 하는 공익적 목적에서 작성되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제 말에 사람들이 귀 기울여 주기를 바랐습니다. 구체적인 행동 변화마저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진심을 다해 경청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시간을 들여 제 마음을 고찰해 보니, 그 바람의 근원에는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충격적인 기억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 왕따를 당하던 동급생 A가 있었습니다. 남자아이들은 A에게 폭력을 가했고, 여자아이들은 그것을 방관하거나 비웃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고, 담임교사와 음악교사께 알렸습니다. 그러나 두 분의 대답은 한결같았습니다.
“가만히 있어라.”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남학생들은 A의 여동생에게까지 손을 대었습니다. 나아가 음악 시간에는 A를 향해 “왜 태어났니, 왜 태어났니”라며 생일 축하 노래의 가사를 바꿔 불렀습니다. 저는 어린 마음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오래도록 이 질문을 품고 살아왔습니다.
아무리 아이라 할지언정, 인간이 이렇게 잔인해질 수 있을까?
공자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아이가 우물에 빠지면, 누구라도 달려가 구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은 정말 선한 것이 맞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왜 그 시절의 아이들은 그렇게 잔인했으며, 도대체 왜 어른들은 침묵했을까요?
다음 날, 저는 작은 녹음기를 들고 학교에 갔습니다. 그리고 동급생들이 A를 괴롭히는 소리를 녹음해 담임교사께 들려드렸습니다. 하지만 담임의 반응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있어라.”
사실 녹음기조차 필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교사들은 언제나 교실에 상주했기에, 교실 안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모를리가 없었습니다.
이후의 일은 지금도 저에게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일진은 저를 화장실로 끌고 가 “엄마 없는 애”라며 모욕했습니다. 심지어 제 가방에 자신의 지갑을 넣어, 제가 훔쳤다고 모함하기까지 했습니다. 이후 저를 언제나 '도둑년'으로 지칭했으며, 단 한마디의 사과조차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남은 것은 단 하나, 그날의 담임교사 이름입니다.
그분이 교사로서, 어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셨다면—
아니, 적어도 제 말을 들어주셨다면—
A와 저는 덜 상처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의미 없는 물음입니다.
2002년 세검정초등학교 4학년 4반 교사, 장미숙.
당신의 이름을, 저는 평생 잊은 적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