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한 세계여행 준비편
우리의 세계여행은 무기한 장기여행이다. 그래서 한국생활을 정리해야 했다. 모든 물건을 버리기만 해서는 안된다. 바뀐 라이프스타일에 필요한 물품도 살 것이 꽤 많았다.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1. 버리는 이야기
우리는 뭔가 사는 것에 큰 취미가 없다. 욕심이 있다고 하면 직업상 필요한 노트북, 휴대폰, 안경 정도이다. 근데 짐을 정리하려고 보니 사람 둘이 짊어지고 살아온 물건은 어마어마했다. 세탁기나 냉장고처럼 큰 물건뿐 아니라 작은 서랍을 열면 클립, 고무줄, 스티커 등이 잠자고 있었다. 펜은 또 왜 그리 많은지... 분명 정기적으로 물건을 버렸고 덜 사면서 산다고 생각했는데 집안 곳곳에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물건이 많았다. 크기가 어떻든 한 자리에 오래 방치해 두어서 내 머릿속에서 없는 셈 치게 된 물건들. 여기서 다짐했다. 이제는 많은 짐을 가지고 다닐 수도 없으니 점점 더 가볍게 사는 연습을 하자. 그래서 언젠가 정착을 하게 되면 물건 하나도 신중히 들이자,라고.
원래는 모든 물건을 폐기하려고 했는데 물건을 깨끗이 쓰는 습관 덕분에 정갈하게 보관한 물건들을 보며 당근마켓이 떠올랐다. 독서대부터 자전거, 아이폰까지. 깨끗하게 사용한 모든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내가 중고 물품을 사는 사람이면 혹시 하자가 있진 않을까 걱정이 있을 것 같아서 8,000원에 파는 물건이어도 상세사진 10장씩 꽉꽉 채워 넣고 설명도 정확하게 썼다. 올린 물건은 모두 팔았고, 우리 여행에 예상치 않은 여윳돈이 생겼다.
그런데 작은 부작용이 있었다. 당근도 사람을 대하는 일이라는 것.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걸 또 한 번 깨달았다. 물건 하나당 적어도 2-3명의 사람과 채팅을 하게 되고, 올린 물건의 수도 적지 않으니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을 상대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매너 없는 사람이 많더라. 중고거래에서 친절을 바란 적도 없고, 그냥 물건을 사고파는 데 필요한 적당한 질문과 대화가 있을 줄 알았으니 난 아직도 세상물정을 모르나 보다. 스트레스를 꽤 받았는지 실제로 두통이 오기 시작했고 차단해야 하는 사람도 생겼다. 역시, 돈 버는 건 쉽지 않다. 그래도 우리가 오래 아껴 쓴 물건이 필요한 사람에게 갔을 때 이상한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고, 우린 당분간 여유롭게 커피 한 잔 더 주문할 만큼의 돈을 벌었다.
2. 사는 이야기
무기한으로 세계여행을 하려면 우리의 사계절을 28인치 캐리어 2개, 노트북 가방 2개, 작은 옆가방 2개에 모두 넣어야 한다. 그렇다면 '꼭' 필요한 게 뭐더라... 긴 팔은 몇 개나, 반팔은 몇 개나 필요하지? 바지는? 신발은? 약도 챙겨야 하고 전자기기도 필요하다. 또 뭐가 있더라. 이런 대화를 수없이 나눴다. 떠나기 1년 반 전부터 우리의 산책 주제는 늘 짐싸기였다.
이미 가지고 있는 물건들은 대부분 낡았기 때문에(옷 포함) 새로 사야 했다. 해외에 나간다고 멋을 부리기보다 실용적이고 가벼운 것을 중점적으로 물건을 골랐다. 블랙프라이데이 세일을 이용해서 대부분의 물건을 구입했고 몇 군데 플랫폼을 정해서 쿠폰과 적립금을 활용했다.
단 하나의 물건을 사더라도 여러 번 고민한다. 이게 정말 필요할까? 무게는 얼마일까? 크기는? 그러다가 다시 한번 '이게 정말 필요할까?'. 고민이 끝나면 물건을 주문한다. 난 이게 참 좋았다. 내가 이고 지고 다닐 물건의 무게를 신중하게 정한다는 것. 그 물건의 용도를 정확히 생각하고 필요한 것에만 소비를 한다는 것. 그렇게 짐을 다 꾸렸다.
+ 뒷이야기
인간이란..ㅋㅋㅋㅋㅋ 그렇게 잔뜩 생각하고 짐을 쌌는데 막상 떠나와보니 필요한 물건과 덜 필요한 물건이 생각과 빗나간 경우들이 있다. 그냥 웃겼다, 어이가 없어서. 분명 엄청 필요할 것 같았는데 습관적인 '걱정'때문에 산 것들. 그래서 무게만 축내는 놈들. 결국 욕심이었던 몇 가지. 중요성을 간과해서 사지 않은 물건들. 이러면서 배운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물건들은 무엇인지, 심플하게 살고 싶은 우리의 신념에 따라 얼마나 더 덜어낼 수 있는지.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배우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