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한 세계여행 준비편
세계여행 준비에서 필수로 생각했던 건 의외로 수영을 배우는 일이었다. 지구의 약 70%가 바다로 덮여 있다는데 세계를 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바다로 뛰어들 것인가. 물론 바다수영은 다른 얘기지만, 스노클링 할 때 내가 발장구라도 칠 수 있다는 사실은 마음의 안정을 준다. 그리고 많은 날을 동남아 콘도나 리조트에서 보낼 텐데 수영을 하면 재미있게 건강을 관리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우리가 세계여행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조건 건강이다. 홈트(맨몸운동)는 잠깐이라도 매일 할 거지만 뭔가 활력을 불어넣어 줄 운동이 필요하다. 산책도 매일 하지만 '운동'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고, 러닝머신은 매일 1시간씩 할 만큼 재미있지 않다. 조깅을 습관화하고 싶었지만 무릎 때문에 어려워졌고, 나는 요가를 좋아하지만 K는 좋아하지 않아서 같이 하긴 어렵다. 자전거는 여건이 되는 지역에서는 탈 거지만 그런 지역이 흔할 것 같진 않다. 이러한 이유로 수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수영은 진입장벽이 꽤 높은 운동이다. 가뜩이나 운동을 등록하러 가는 길은 멀고도 먼데.. 등록했다고 운동화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수영복, 수영모, 물안경, 수영가방, 샤워용품, 제모를 챙겨야 한다. 수영복은 판매점이 도처에 널려 있지도 않으면서 입는 것조차 쉽지 않다. 여자라면 생리도 신경 써야 한다. 시력이 나쁜 사람이면 물안경에 도수를 넣거나 렌즈를 껴야 한다. 수영용품 관리도 신경 써야 한다. 고무재질에다가 염소물에서 수영하기 때문이다. 몸에 있는 구멍마다 물이 들어가기 때문에 중이염, 인후염의 위험도 있다. 왕주사를 맞거나 어딘가 베인 날에는 가지도 못한다.
이런 수많은 장벽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세계여행 동안 마주할 수영장, 아름다운 바다, 호수, 강을 생각하니 그냥 자연스럽게 수영을 받아들이게 됐다.
대단한 실력을 바라는 게 아니다. 살을 빼려고 시작한 것도 아니다. 그저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의 수영장에서 둘이 낄낄거리며 수영시합을 하고, 아름다운 유럽의 호숫가에서 책을 읽다가 더위를 식힐 겸 몇 번의 발장구를 칠 수 있다면. 그거면 충분하다. 타지에서 재밌는 놀이처럼 건강관리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으니 우리에게는 최고의 운동인 셈이다.
수영을 배우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취미를 가지라는 이유도 알게 됐다. 둘 다 생초보부터 시작하니까 돌아오는 길에 그렇게 할 얘기가 많다. 수업이 없는 날은 집에서 손을 휘저으며 서로 자세도 봐주고 연습을 독려하기도 한다. 예능 보면서 수다 떨기처럼 수동적인 것 말고, 조금은 일상과 다른 무언가를 함께 시작하는 것이 우리 관계에 활력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걸 몸소 느꼈다.
말 그대로 해가 쨍쨍한 일요일이었다. 야자수 나무가 시원스럽게 예쁘다는 치앙마이 주말마켓에 들러 팟타이와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먹고 극강의 뚜벅이답게 땡볕을 걸어 집에 왔다. 오랜만의 데이트에 기분 좋은 에너지가 한껏 충전된 상태지만 또 다른 외출을 하기에는 몹시 더운 그런 일요일 한낮. 어떤 더위는 아이스라떼를 부르는가 하면, 어떤 더위는 그냥 시원한 물에 빠져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지금이야. 우리 스포츠센터의 위력을 보여줄 때가 왔어. 근데.. 왜 벌써 숨 쉬는 거 잊어버린 것 같지? 지금 몇 시야? 몇 분 지났어? 말도 안돼, 40분은 한 것 같은데 10분 지났다고? 웃긴 코미디를 한편 찍고 너덜너덜해진 체력으로 20분 뒤 우린 첫 수영을 마쳤다. 쳇, 분명 스포츠센터에서는 1시간 30분 동안 수영 연습했는데. 나 강사님이 에너자이저라고 했는데. 어떤 어머님이 나 국가대표 같다고 했는데. 세계여행을 다니면서 콘도 수영장에서 멋들어지게 수영도 하고 선베드에서 책도 읽는 인생이란, 같은 로맨틱한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샤워하고 노곤노곤 한숨 곯아떨어지고 나니 왜 이렇게 웃기는지.
수영, 참 재밌지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