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한 세계여행 준비편
우리가 생각하는 세계여행은 대략 1-2개월 전 가고 싶은 장소를 정해서 사는 것이다. 물론 체력과 경비를 고려해서 한두 달 만에 지구 끝에서 끝을 왔다 갔다 하진 않지만 너무 앞서 모든 예약을 하고, 거기에 맞춰서 움직이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이런 마음으로 첫 도시를 고민하고, 그곳에서 2달 정도 있으려고 했다. 그다음 여행지는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그러나 인생은 계획대로,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다.
# 첫 국가&도시 정하기
우린 1월에 출발하기 때문에 따뜻한 국가이길 바랐다. 그렇다면 말할 것도 없이 태국이었다. 여유로움과 불야성이 공존하고, 계속 먹어도 맛있는 팟타이, 땡모반, 마사지, 친절한 사람들..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초보 장기여행가인 우리에게 익숙한 나라인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살짝 낯선 느낌을 추가하고자 방콕이 아닌 치앙마이를 선택했다. 이 정도면.. 될 줄 알았다.
# 성수기 어택
1월이 성수기라는 점도 선택에 한몫을 했는데 그게 문제였다. 평화로운 마음으로 치앙마이 숙소를 구경하는데 예전에 봐둔 숙소들이 전부 예약이 찼거나 가격이 상당히 올라 있었다. 1월은 아직 많이 남았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온갖 숙박플랫폼을 뒤진 결과, 우리가 코로나 이후 일어난 여행붐과 성수기를 간과했다는 걸 깨달았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 초보자의 불안감은 카드 한도를 부른다.
우리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숙소 선정에 일정 조건이 있었고, 이 때문에 선택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분명 자유롭게 살자는 모토대로 1-2달 전쯤 설렁설렁 숙소를 찾아보려 했건만. 실시간으로 없어지는 숙소와 계속 오르는 숙소비에 밤을 새워서 검색을 해댔고 우린 치앙마이 항공권과 1-3월까지의 숙소를 예약해 버렸다. 응??ㅋㅋㅋㅋㅋ
혹시.. 4월은 어떻지?
봄에 유럽을 가기로 했기 때문에 몇 개국만 슬쩍 검색해 보니, 세상에. 맞다, 유럽은 언제나 성수기였지. 우리 코로나 기간 동안.. 여행쪼렙이 됐구나. 껄껄. 유럽여행 한 달 전에도 호텔과 에어비앤비를 착착 잘 구했던 기억만 믿고 있었으니.. 초보 장기여행가들은 갑자기 이성을 잃었다. 유럽에서 어디를 갈 것인지부터 숙소가 예산에 맞는지까지. 가고 싶은 유럽 도시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 최종 루트
그래서 우리의 선택은 1-2월 치앙마이-> 3월 방콕-> 4월 튀르키예-> 5월 피렌체-> 6월 파리.
자유롭고 여유로운 여행가는 개뿔. 무려 6개월의 여행을 예약해놨다ㅋㅋ 그래.. 우린 여린이니까.. 세계여행 초보니까. 6월까지 달리고 보니 카드에 한계가 온다ㅋㅋㅋㅋ 야심 차게 잡아놓은 예산도 엉망진창이 됐다. K가 먼저 정신을 차렸다. 우리 이 정도면 될 것 같아. 7월부터는 조금 천천히 해보는 거 어때? 그래.. 이러다가 2025년을 살고 있겠다. 이건 우리가 원한 게 아니지. 그래서 우리는 6개월만 미리 살기로 했다.
이래서 세계여행이 벌써 재밌다. 가기 전부터 변수가 계속 일어난다. 하지만 세계여행을 결심한 순간 했었던 생각을 잃지 않기로 한다. '낯선 곳에서, 어쩌면 나를 받아주지 않는 곳에서도 난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그럼 얼마나 많은 변수를 맞닥뜨리게 될까. 하지만 과하게 당황하지 않고, 과하게 스트레스받지 말자. 어느 정도는 유연한 사람이 되길. 통제하려고 버둥거린 삶을 살아온 내가 어느 정도는 내려놓을 수 있길.' 그러길 진심으로 바랐다. 이렇게 일찍부터 스파르타일 줄은 몰랐지만.
이거 참..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