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주요 무대인 마리아 사랑병원. 두 남녀가 엑스레이 촬영실에서 섹스를 하는 도중,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에 의해 몰래 촬영되고 만다. 결국 엑스레이 사진은 모두가 볼 수 있는 병원 앞 광장에 걸리고.
이튿날, 이 경진 병원장과 여 윤영 간호사를 제외한 전 직원이 출근하지 않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다.
이에 경진과 윤영은 병가를 낸 직원들이 정말로 아픈 것인지 직접 찾아가 보자며 병가를 ‘믿어보기로’ 한다.
그렇게 펼쳐지는 윤영의 ‘믿음 오디세이’. 일터인 병원, 윤영의 집, 성원의 일터인 공사현장 등을 오가며
그녀가 마주치는 사건은,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단면을 함축적으로 담아낸다. 사회 시스템에서 양산된
여러 문제들- 주거와 재개발, 데이트 폭력과 청년실업 같은 사안들이 영화 속에 총체적으로 포진되어 있다.
[메기]는 그런 문제들을 무대삼아, 영화적 장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연출한다. 이를테면 그것은 스크린을
벗어난 공간까지도 해당되는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는데, 관객의 대부분은 오프닝 시퀀스의 두 남녀가
엑스레이 사진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영화라는 장르의 특성상, 극 중 인물보다 관객 자신이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믿음이란 이렇게나 학습적인
면 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엑스레이의 주인공인 것이 사실이었을까? 영화는 이 사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촬영한 범인이 누구냐를 밝히는 과정을 중요하게 다루지는 않는다. 사건은 등장인물과 관객 모두를 ‘믿음’이라는 거대 전제 속으로 끌어들이는 맥거핀으로서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그 사진을 집으로 가져온 윤영과 성원의 ‘관계’로 스토리가 이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작품 후반부의 ‘맥신 분실사건’을 통해 소폭 정리된다.
성원은 직장에서 커플링(반지의 애칭이 맥신이다)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자신의 직장동료가 같은 디자인의
반지를 발가락에 하고 있을 것을 목격하곤, 자기 것을 훔쳤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 반지를 받아내지만,
발가락 반지가 손가락에 맞을 리 없다. 동료의 짓이 아니었던 것이다. 극 중 대사인
“사실이란 주변인들에 의해 포장된 것.”처럼, 성원은 스스로 포장한 껍데기에 둘러싸인 것이다.
그 껍데기는 다른 상황에서도 적용된 적 있었을까? 성원의 옛 여자 친구가 윤영을 찾아와, 그가 자신에게
행했던 폭력에 대하여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윤영과 성원, 두 사람의 갈등은 극으로 치닫는다.
이외에도 그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끝없는 의구심으로 가득 차있다.
영화는 그렇게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에게 본격적이고 직접적인 질문을 던진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이는 마치 성원이 일하는 공사현장의 싱크 홀 메우기 작업과도 같다. 인간이 대지 위에 아스팔트를
발라 세운 메트로폴리스. 그 무게를 견디다 못해 꺼져버린 것이 바로 싱크 홀 아닌가. 많은 만남과
다양한 가능성. 도시와 집단이 거대해질수록, 모든 종류의 관계는 맺기도, 깨지기도 쉽다.
그 부실함의 대변자로서 싱크 홀은 매우 직접적인 아이콘으로 관객에게 어필된다.
결국 성원은 그 구덩이에 빠지고 마는 상징적인 최후를 맞는다.
사실, 영화의 시작에서부터 결말이 어느 정도 예견되어 있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그것은 성원과 윤영이
신체적으로 가장 밀착된 장면에서조차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다리 위, 인도. 자전거 핸들 바 위에 윤영이 성원을 껴안은 채, 역방향으로 타고 있다. 그녀는 사직서 제출을
언급하며, 다른 병원이 저렇게 많은데 취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한다. 이에 성원은 웃음 짓는다.
주변을 흘끗 보다가 말을 잇는 성원.
“응... 십자가 보고 그랬구나.”
하지만 주변을 비추는 쇼트는 없다. 그것이 교회였을지 병원이었을지.
윤영과 성원, 관객 모두 자신이 원하는 대로 믿는다.
-오 년 전 미장센 영화제 방문 때 감상한 [왜 독립영화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의 연출 겸 배우로 알게 된 구 교환. 당시 상당히 많은 기대를 갖게 했던 그의 가능성은, 이후 [꿈의 제인]에 이어 [메기]를 통해 배우로서 여실히 증명되고 있었다. 혼잣말의 미학이랄까- 시퀀스 중간의 아주 작은 틈을,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조용히 치고 들어오는 순간들이 있다. “사직서는 쓰지 말라고 획이 이렇게 많은가 봐.” 같은 대사처럼.
-미장센 영화제 당시 감상했던 또 다른 작품인 [4학년 보경이]의 이 옥섭 연출. 이 감독의 조용하고 힘 있는
구성에,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했던 기억이 난다. 이에 대해서는 위의 본문에 충분히 표현되었으리라 믿는다.
-[힙한 선생], [꿈의 제인],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 [메기], [집우집주], [야구소녀]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는 이 주영 배우. 그녀만의 차분하고 정제된 매력을 앞으로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