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만이었을까, 그 파란 눈의 바이올리니스트를 마주친 것은. 오래전에 다닌 직장이 있던 인사동. 점심시간이면 어김없이 길거리에서 연주 중인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때때로 시원한 여름밤에 멋진 여인분과 함께 서서 그 익숙한 바이올린 선율을 감상하던 기억도 있다.
그리고 스산한 가을밤의 지하철 역사. 서울의 어느 한 모퉁이-바이올린 자국을 따라오니 그의 익숙한 얼굴이 스치우고 있었다.
한 곡을 들었다.
연주가 끝나자 지폐를 바이올린 박스에 넣었다.
그가 이 우주를 헤쳐나가는 방법에 대한 격려이자 멋진 추억에 대한 값이다. 지하철 역사를 나오니 바깥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문득 그는 우산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 깊고 깊은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검은 사람들 사이로 눈 감은 채 다시 연주 중인 악사의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