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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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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 용범 Jan 15. 2023

날개

 꽤 긴 시간 동안 창틀로 쏟아지는 가을빛을 응시하고 있다. 그녀는 무엇이든 천천히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창틀 아래의 벽면은 흰 페인트로 칠해져 있기 때문에, 이 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아마 새하얀 하이라이트와 노란빛이 눈앞에서 한데 얽히고 마치 기억나지 않는 어떤 추억처럼 몽롱한 상태로 보일 것이다. 아마 그 분위기에 취하고 싶은 것일지도. 따뜻한 음료가 담긴 머그 컵을 건네었다. 조용히 받아 든 채 그 내음을 깊숙이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려온다. 은은하게 퍼지는 미세한 수분이 국화꽃잎 향을 한껏 안고는 폐부 깊숙이까지 날아든다.



"그래서, 무엇을 생각하는 거니?"



 그녀는 말 대신 천천히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킨다. 창 틀에는 잠자리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자세히 다시 보면 오후의 햇빛을 반사하는 날개가 많이 말라있다. 이제 더 이상은 바람을 가르지 않을. 뜨겁고 차가우며 높고 청명한 너무나도 짧은 그 계절의 삶.



두 손을 모아 잔을 잡곤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렇게 가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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