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편 2

필동에서

by 조 용범

하루가 다르게 아침이슬에 냉기가 서리고

마음이 낙엽처럼 흩날리는 절기가 오면

묵어있던 가죽 내음 물씬 나는

오래된 재킷을 꺼내어 입고는

막역한 친구와 얼굴을 마주한 채

심심한 면을 후루룩 씹어 삼킨다

북쪽에서 온 별 말 없는 그런 육수가

사실은 더욱 많은 이야기를 지녔다

황소 등에 탄 피리 부는 소년과도 같이

오후의 햇살이 조용히 창을 타고선

그릇 한쪽을 눈부시게 빛낸다

큰 잉어 한 모금에 퍼진 물결처럼

소리 없이 일렁이던 우리 꿈도

갓 스물의 추억들과 함께.

십여 년이 지난 후에야 느껴지던

그윽한 면수의 향취가 우리 가슴에 먹처럼 스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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