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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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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 용범 Dec 08. 2016

올림픽공원

다 찍은 필름은 원래 카메라 아래쪽 손으로 돌돌 돌리는 그걸 돌려서 감는다.

이내 커피가 나왔고, 꽤 뜨거운 터라 조금만 마셨을 뿐인데 

잔뜩 움츠러들어 있던 허리가 고양이 마냥 주-욱 펴졌다

힘을 빼곤 긴 한 숨을 내쉰다. 삼십-육 방 짜리라

오후 나절 두어 시간을 투자하여 촬영을 마쳤다. 이 필름 속에는 

나 홀로 나무도 있고 몽촌 토성 자락을 걸어 오르는 노인의 모습이나 

잔디밭을 가로지르던 잿빛 토끼도 있다. 

 필름으로 촬영을 할 때는 조금 더 망설이게 된다. 사실 그것은 

망설임이라기보다는 더 나은 무언가를 위한 짧은 기다림에 가깝다. 

클래식이 우리에게 주는 무언가는, 이렇듯 시간과의 접점에서 

느끼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작고 귀여운 수동 필름 사진기가

출시될 당시에는 최신 기종이었고, 디지털카메라 이후 골동품이 되었다가

새로이 접하는 젊은 층에게는 클래식으로 재해석되는 것처럼.

필름을 모두 감을 때쯤, 머릿속을 맴돌던 겨울 내음도 모두 빠져나갔다.

이윽고 따끈하게 데운 쿠키가 나왔고, 

비로소 주변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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