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사진기를 들었다. 한 손에 딱 들어가는 까만색의 자그마한 녀석인데, 바다 건너 일본의 올림포스라는 회사에서 오래전에 출시한 모델이다. 동글납작한 것이 조약돌처럼 귀엽게 생겼는데, 본체 옆으로는 나사형식의 손쉽게 탈착이 가능한 꼬맹이 플래시마저 달려있다. 조그만 주제에 아직도 ASA방식인 것이 꽤나 고집스러울 것만 같다.
"네 아버지가 사다 놓았던 것인데, 이제 가져가는구나."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이 카메라가 판매된 것이 천구백팔십 년에서 팔십육 년까지였으니, 내가 태어났던 팔십오 년으로부터 따지면 거의 삼십여 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났다. 아버지는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였을 것이고, 해외를 나갔다가 귀국하는 길에 이 카메라를 사왔을 것이다.
지금 시간은 오후 일곱 시가 조금 넘었고, 바깥엔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조용한 아파트 한 귀퉁이에는 이삿짐들이 곱게 포장되어 쌓여 있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 아파트를 구입하셨다. 그래서 난 어린 시절부터 이 집 곳곳에 대한 기억들이 많이 있다. 명절 때마다, 할머니 생신에. 그래 이제 이사를 가신다니, 아쉬움이 마음을 앞선다. 언제부턴가 차가운 도어-록 시스템으로 바뀌어 있는 현관문에는 추석 때면 차례로 도착하는 친척들을 맞아 인사를 하던 기억이 묻어있고, 친척동생들과 송편과 만두 빚기를 하며 낄낄 거리던 어린 시절이 이 온기 어린 마룻바닥에 스며있다. 또 밤이면 티브이에서 해주는 특선영화를 보며 이불 속에서 소곤거리다가 잠들던 추억들이 안방의 검은 장롱 주변에 아른거린다. 나이 든 주인은 이제 가져갈 수 없고, 새 출발하는 신혼부부는 이런 골동품을 원하지 않는다. 문득 내 한 손에 쥔 작은 카메라인 미세스 올림포스만 남겠다는 사실에 장롱이 안쓰러워졌다. 오래된 카메라가 작동할 리 만무했으나, 뷰 파인더로 장롱의 마지막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별 생각 없이 셔터를 눌렀고, 오늘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미스터 장롱을 위해 '펑' 하고 플래시를 터뜨리며 마지막 힘을 짜내는 미세스 올림포스였다.
수십 년간 이 자리를 지켜온 녀석은, 불과 며칠 후면 가슴에 수고했다는 훈장인 ‘분리배출 스티커’를 붙인 채 아파트 앞 분리수거장에 방치될 것이다. 하지만 부디 어깨 구부리지 마라! 나의 오랜 친구 미스터 장롱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