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보다 중요한 방향_무림고수 K
방향이 중요한가 거리가 중요한가? 마침내 올 것이 왔다. 주말골퍼들 사이에 난상토론을 부르는 제1 토픽이다. 이를 두고서는 숱한 주장과 반론과 또다른 주장이 난무한다. 정(正)과 반(反)이 있을 뿐 합(合)이 도출되는 경우는 없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에서 정답을 찾아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므로 “나는 모르겠다”는 결론을 미리 내리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 고등학교 동기동창들끼리 만든 골프 단톡방이 있다. 십 년 넘게 대략 30명 안팎 숫자를 유지해오고 있는 모임이다. 그들은 나처럼 평범한 주말골퍼들이다. 그간의 골프인생을 동고동락해 온 이 친구들한테 방향과 거리에 대해 물었다고 치자. 둘 중 하나만 가질 수 있다면 무엇을 택할 것인지. 음, 역시 50 대 50 정도로 의견이 갈릴 거 같다.
‘골프 낭만파’ 용일이는 분명 비거리를 원할 것이다. 그가 골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가 비거리다. “올 겨울에는 특훈을 해서라도 비거리를 20미터 이상 늘릴 거야”, “아무리 해도 더 이상 비거리가 늘지 않아”, “딱 230미터만 치면 원이 없겠어” 식이다. 그는 드라이브 샷 거리가 짧아서 두번째 샷에 롱아이언이 잡히는 경우가 많다며 한탄해 왔다. 이 친구한테 드라이브 샷 300야드를 칠 능력을 안겨준다면, 언더파 같은 숫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게 분명하다. 그에게는 “봤지, 내 공이 제일 멀리 갔잖아. 나 장타라고”의 자랑이 더 중요할 것이다.
‘골프 현실파’ 진규는 물론 방향을 택할 거다. 호리호리한 체격의 그는 한때 존 댈리 저리 가라 할 오버스윙을 구사했다. 그 스스로 “백스윙이 뒤로 넘어가서 땅에 닿은 적도 있었다고” 농담할 정도였다. 그는 지금 오버스윙 사이즈를 대폭 줄였고, 그래서 거리가 준 대신 방향성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친구들끼리 라운드를 나가서 “우리팀에서 내가 제일 멀리 쳐야지” 얘기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레귤러 온을 해서 버디와 파를 잡는 것이다. 그는 “캐시나 다름없는 방향성이 최고지. 쓸데없이 멀리 쳐봐야 무슨 소용이냐고……” 할 것이다.
정확하게 멀리 치면 될 거 아닌가. 골프 역사상 드라이브 샷을 가장 멀리, 그리고 똑바로 친 투어프로로 현역인 로리 맥길로이가 꼽힌다. ‘정확하게 멀리~’의 꿈은 맥길로이 정도 돼야 실현 가능한 것인가. 먼저 비거리에 대해 골프 전문가들은 “분명 타고나는 게 있다”고 말한다. 누구나 강속구 투수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누구나 장타 골퍼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주말골퍼한테 페이드나 드로우 샷 치는 방법은 가르칠 수 있어도, 비거리를 50미터씩 늘려주는 건 정말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프로들은 말한다. 어느 골프TV 해설가는 “레슨을 통해 늘려줄 수 있는 비거리 최대치는 약 30미터 정도”라고 말한다. 지금 200미터를 치는 주말골퍼가 레슨을 받는다고 250미터 이상 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똑바로 치는 것은 쉬운 일인가. 그것도 아니다. 주말골퍼들은 드라이브 샷을 ‘살기 위해’ 달래서 치더라도 방향성이 썩 좋아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골퍼가 가진 80~90%의 힘으로 방향성을 지켜 샷을 하려면 무엇보다 부단한 연습을 통해 스윙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투구 연습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모두가 제구력이 좋은 투수가 될 수는 없다. 특히나 골프에서도 장타본능에는 방향성을 미세 조정하는 DNA가 빠져 있는 거 같다고들 말한다. “장타는 필연적으로 쇼트게임에 약하다”는 속설이 있듯이 말이다. 전성기 시절 타이거 우즈는 단연 가장 멀리 치는 선수였으나 티 샷 정확도는 그리 좋지 않았다. 우즈가 “내 이름에 우즈(Woods)가 들어가 있어서 페어웨이를 놓치는 경우가 많은 거 같다”고 한탄할 정도였다.
그러면 낮은 골프 타수를 기록하는 데 필요한 것이 방향성인가 비거리인가. 이것 역시도 정답은 없는 거 같다. A는 평균 드라이브 샷 거리가 270미터인데, 화이트티 플레이를 하면 아웃오브바운드(OB)가 2개 정도 난다고 치자. 그것 때문에 드라이브 샷 220미터를 치는 B한테 게임에서 졌다면, 다음번에는 블랙티에서 게임을 하자고 나올 것이다. “화이트티에서 플레이하는 것은 100미터 달리기를 마치 80미터만 뛰는 거와 같다”면서. 블랙티로 가면 A가 이길 공산이 클 것이다. 자, 이쯤에서 결론을 내리자. 주말골퍼는 자신의 주특기를 살려 즐겁게 플레이하면 된다. 더 이상 싸우지 말자.
논어 위정편(爲政編)에 지학(志學), 이립(而立), 불혹(不惑), 지천명(知天命), 이순(耳順), 종심(從心) 같은 말들이 나온다. 까까머리 학창시절 한문 수업시간에 이 고색창연한 낱말들을 배운 뒤로 나이가 꽤 들때까지 세월이 흐르면 자연히 그렇게 되겠거니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이 오십을 훌쩍 넘겼음에도 매사 미혹됨이 많고, 하늘의 뜻을 알기 보다는 앞으로 나아갈 뚜렷한 길을 찾지 못해 여전히 헤매고 있다. 인생은 올바른 방향과 넘치는 에너지 두 가지를 모두 필요로 하는 것 같다. 가고자 하는 목표를 찾아서 온 힘을 쏟아붓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후회 없는 삶을 사는 이치 아닐까 싶다.
고교 친구들과의 골프 라운드는 사실 격의 없는 술자리가 앙꼬다. 골프 라운드에 이어지는 뒤풀이까지 ‘누가 잘쳤네, 못쳤네’ 하다가도 결국엔 술을 빙자해 자신들의 일과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만취 힐링 상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간다. 아, 고교 친구들의 아우성이 귓전을 때리는 듯하다. “네가 정녕 골프책을 쓸 정도로 골프 고수였단 말이냐!” 그냥 쓸데없는 환청이라 무시하고 나는 나의 길을 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