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실력에 대해_무림고수 K
시월 말 산마다 단풍이 절정이었다. 골프코스로 운전해 가는 동안 심장이 뛰었다. 휙휙 지나가는 가로수가 바람에 세차게 흔들렸다. 차창을 내려 손으로 바람을 가늠했다. “두 클럽쯤이네. 장난 아니다” 싶었다. 바람이 이렇게 세계 불면 골프 타수가 적어도 2~3타는 더 나올 것이었다. 참가자 나이에 따라 커트라인이 달랐는데, 나는 화이트티에서 79타 이내 타수를 쳐야 테스트 통과였다. 7~8여년 전 어느 가을날, 미국지도자골프연맹(USGTF) 티칭프로 테스트를 보러 갔었다.
골프코스는 경기 포천의 A골프장. 그전까지는 인천에 있는 B골프장에서 프로 테스트가 치러졌다. B골프장은 평지코스, 양잔디 구장을 선호하는 나에게 좀 더 유리한 코스였다. 바뀐 코스인 A골프장은 조선잔디인 데다 티샷 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골프장이다. 전략적으로 아웃오브바운드(OB)만 피하기로 했다. 그러면 테스트를 통과할 것도 같았다. 18홀 내내 티샷은 무조건 아이언으로 한다, 그렇게 마음먹고 나섰다. 첫 홀은 파5 홀. 그런데도 5번 아이언으로 티샷을 했다. 페어웨이 중간에만 가져다 놓자 했는데 적중했다. 두 번째 샷은 실개천 해저드만 넘겨 놓을 심산이었는데 샷이 당겨져 도로 위 경사진 러프로 들어갔다. 세 번째 샷은 온그린 실패. 투 퍼트 보기. 멘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2번 홀, 손을 덜덜 떨면서 퍼팅, 쓰리 퍼트 더블보기. 멘털이 완전히 털렸다. 아, 망했다, 이제 끝난 건가. 2홀까지 벌서 3타를 까먹었는 데다, 3번 홀이 나한테는 가장 어려운 마의 홀이었으므로 자포자기 심정이 됐다. 그런데 행운이 벼락처럼 왔다. 가파른 내리막에서 두 번째 샷을 쳤는데 그것이 운 좋게 홀에 붙어 버디를 낚은 것이다.
그 뒤로는 어떻게 플레이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프런트 나인이 끝나자 캐디가 “뒷팀에서 앞에 타이거 우즈가 있다고 한다”는 말을 전했던 기억만 있다. 나는 그때도 우즈의 빨강 셔츠와 검정 바지를 입고 출전했다. 게다가 모든 티샷을 타이틀리스트(mb) 머슬백 아이언으로 하니 그렇게들 말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큰 실수 없이 라운드는 진행됐고, 정말 테스트를 통과하는 건가라는 긴장감이 또다시 몰려온 마지막 3홀에서 2타를 더 잃었지만 최종 78타를 기록했다. 간발의 차로 테스트를 통과했다. 미국에 연수를 갔다가 USGTF 자격증을 따 온 지인 권유로 나선 테스트였다. 그즈음 나는 라운드 횟수가 많아 쇼트게임이 착착 붙어서 로우싱글을 기록하는 일이 꽤 많긴 했다. 그렇더라도 대회 모드로 그 흔한 퍼팅 ‘오케이’도 없이 첫 대회 출전에서 78타를 기록한 것은 운이 많이 따라서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테스트 통과 기준이 79타, 즉 핸디캡으로 치면 7개였다.
나는 지금 화이트티 기준으로 핸디캡이 10~11개쯤 된다. 요사이 쇼트게임이 신통치 않은 탓이다. 라운드마다 버디를 2~3개쯤 하지만 티샷도 1~2개 정도 죽곤 한다. 아마 쓰리퍼트도 2개쯤 할 것이다. 만약 지금 내기 골프를 정색하고 치면 80개 안팎을 기록할 테고, 컨디션이 나쁜 날도 85개는 넘지 않을 것이다.
아마추어 초절정 고수는 어떤 사람들일까? 핸디캡이 대략 1~3개 정도, 3번 라운드를 나가면 1번 정도는 능히 이븐파 이상을 기록하는 사람들. 내가 관찰한 그들은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플레이 능력과 스타일을 가졌다. 드리이브 샷 비거리는 220~230미터로, 티샷 10번에 7~8번은 페어웨이에 떨어진다. 더 멀리 치려고 하면 250미터까지도 치는데 굳이 무리해서 티샷을 하지 않는다. 아이언과 웨지 샷은 지켜보기에 정말 편안하다. 홀컵에 붙이겠다고 무리해서 치는 일이 없다. 한두 클럽 여유 있게 잡고 부드러운 샷을 구사한다. 어프로치는 KPGA급이다. 홀컵을 보고 피치샷, 칩샷을 하면 웬만하면 최소한 투퍼트로 마무리할 거리에 골프볼이 멈춰 선다. 퍼팅은 음, 귀신같다. 저마다의 퍼팅 스트로크를 가졌는데 골프볼 롤링이 아주 좋아서 치면 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 사람들은 플레이에 기복이 없다. 감탄을 자아낼만한 대단한 샷을 치는 것 같지도 않은데, 18홀을 돌고 나면 75타를 넘는 일이 별로 없다.
이 고수들은 내가 알기로는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은 연습장을 찾는다. 저녁 술자리가 파한 뒤 연습장에 가기도 한다. 골프를 친 지 10년이 됐든 20년이 됐든 레슨을 꾸준히 받는 사람들이 많다. 골프 하기 좋은 봄~가을 시즌 중에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필드에 나간다. 주말골퍼들과의 라운드는 보통 막걸리나 맥주를 걸치기 마련이어서 골프 연습장에 갈 때 막걸리를 마시고 간다는 사람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실제 라운드와 같은 조건에서 연습을 하겠다는 욕심에서다.
이쯤 되면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정민 교수는 조선시대 지식인의 내면을 사로잡았던 열정과 광기를 탐색해 쓴 책 ‘미쳐야 미친다’에서 세상은 결코 만만하지 않아서 그저 대충 해서 이룰 수 있는 일은 없다고 강조한다. 정신의 뼈대를 하얗게 세우고, 미친 듯이 몰두하지 않고서는 우뚝한 보람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에 독서광 김득신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아버지 김치가 꿈에 노자(老子)를 만나고 득신을 낳은 바, 비록 문재(文才)가 떨어졌음에도 대기만성(大器晩成)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아 득신의 교육에 열성을 다했다. 하여 득신은 일평생 수 천 번 이상 읽은 고전만 수 십 권에 달했다. 특히 사마천의 사기열전 중 ‘백이전’을 1억 1만 3천 번을 읽고 그것을 자부해 자신의 거처에 ‘억만재(億萬齋)’라는 당호를 내어 걸 정도였으니, 결국 말년에 문명(文名)을 날리게 된다.
로우 핸디캐퍼들은 셀 수 없이 많은 샷 연습으로 스윙을 갈고닦은 사람들이다. 노력한 만큼 얻게 된다. 주말골퍼 중 한 사람으로 그들을 리스펙트 하지 않을 수 없다.
# 브런치에 막 입문해 서툰 관계로, 브런치북 연재 체크를 못했네요. 다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