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필드에서 '여인네'의 뜻은?

인생은 결국 자세에 관한 모든 것_무림고수 K

by 무림고수 K

A는 막역한 후배다. 막 50대에 접어든 나이인데 평소 헬스 같은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해서 힘이 아주 천하장사다. 그가 피트니스 센터에서 허리에 벨트를 찬 채로 ‘으아악’ 소리치며 역기를 들어 올리는 동영상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나한테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나는 1년이면 고작 서 너 번 정도 몸이 영 찌뿌듯하다 싶을 때나 스트레칭을 하러 회사 헬스장을 찾는 게 전부인 데다, 근력 운동은 체계적으로 배워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그와 골프 라운드 뒤에 장난 삼아 팔씨름을 겨뤘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는 도저히 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는 키가 180센티미터가 넘고 울퉁불퉁 근육질 몸매여서 골프 라운드를 나가 티잉 그라운드에 서면 피지컬이 정말 PGA급으로 압도적이다. 90개 안팎의 타수를 왔다 갔다 하는 핸디캡에 비해 스윙이 매우 깔끔하고 좋다. 게다가 장타로, 타고난 히터다. 스윙어와 히터의 그 중간 어디쯤인 나는 그와 드라이브 샷 비거리에서는 엇비슷하다. 그는 근력이 좋고, 대신 나는 유연성이 그보다 낫다. 그는 골프 플레이 스타일도 상남자다. 티샷을 온 힘을 다해 쳐내는데, 숏게임 실수 같은 것에는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다. 타수를 중요시하기보다는 동반자와 함께 즐기는 라운드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동반자들의 멋진 샷을 칭찬하는데도 인색한 법이 없다. 설령 내기 골프에서 지더라도 ‘허허’ 한 번 웃고 나면 그만이다. 그와의 골프는 항상 유쾌하고도 즐겁다.



B는 회사 선배다. 그와는 수 십 차례 같이 골프를 쳤다. 나는 그가 일단 티샷을 하고 나가면 페어웨이나 러프, 벙커 어디에서건 골프볼에 손을 대는 일을 본 적이 없다. 우리끼리 골프볼에 흙이 묻으면 닦아내고 골프볼이 맨땅에 들어가면 옮겨 놓고 치자고 나름 로컬룰을 만들고 게임을 시작해도, “얼마든지 칠 수 있는 상황”이라며 한사코 그냥 치는 것이다.


반면, 유독 자신한테만 관대한 스타일의 골퍼들도 있다. 이들은 페어웨이에서 멀지 않은 러프에 공이 들어가면 클럽으로 공을 툭툭 쳐서 페어웨이에 올려다 놓는다. 물론 타수는 계산하지 않은 채로. 동반자들은 해저드 라인을 넘어간 공을 찾아다가 치게 되면 스스로 1 벌타를 먹는데, 동일한 경우에도 그들은 자신에게 벌타를 매기지 않는다. 아무리 주말골퍼들끼리 타수를 엄격히 따지지 않고 친목을 목적으로 치는 명랑골프라고 해도, ‘나와 너’가 다른 계산법이 기분 나쁘기는 마찬가지다.


필드에서 ‘여인네’로 불리는 사람들도 있다. 골프 구력과 실력에 상관없이 그런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볼이 워터 해저드에 들어가거나 아웃오브바운드(OB) 라인을 훌쩍 넘어간 것이 분명한데도 자신이 볼을 찾으러 가기만 하면 스스로 “여인네 (‘여기 있네’의 사투리)”를 외치고 세이프 선언을 한다는 것이다. 주머니에서 다른 볼을 몰래 꺼내 놓는 이른바 ‘알까기’ 행위다. 누군가는 안개가 잔뜩 긴 어느 날 파3에서 티샷을 하고 그린에 올라갔다가 공이 보이지 않자 또다시 알까기를 시전 했는데, 나중에 보니 티샷 한 원구가 홀인원이 돼 있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까지 전해진다.


골프는 매너를 중시하는 스포츠다. 매너를 지켜야 할 상황은 라운드 내내 벌어진다. 예를 들어, 라운드 동반자가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가 어드레스에 들어가면 티샷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야 한다. 페어웨이에서는 동반자가 샷을 할 때 시야에 방해가 되지 않는 곳에 서 있어야 한다. 디봇은 복구해 놓는다. 벙커샷을 한 뒤에는 고무래로 벙커를 정리한다. 그린에 올라가서는 피치마크(골프볼이 그린에 떨어져 생긴 자국)가 생겼다면 수리한다. 골프화 스파이크 자국이 볼의 롤링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동반자의 퍼팅라인(공이 홀컵으로 이동할 예상 경로)을 밟지 않는다. 여기에다 동반자의 멋진 플레이에는 ‘굿 샷!, 브라보!’를 외쳐주면 좋다. 복장도 깔끔하게 차려입으면 금상첨화다.


채근담에 ‘춘풍추상’이라는 말이 나온다.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과 같이 관대하고,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서리처럼 엄격해야 한다 (대인춘풍 지기추상 待人春風 持己秋霜)”는 말이다. 골프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 골프 매너는 나를 돌아보고 남을 살피는 데서 시작된다. 골프를 한 번 같이 쳐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스스로 룰을 지키며 플레이하는 신사인지, 아니면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소인인지 말이다. 룰을 어기거나 비매너 행동을 했을 경우의 불명예는 골프 플레이어 자신의 것이다. 불명예를 안고 골프를 치는 것은 치지 않는 것만 못하다.



골프의 매너를 일과 삶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면 태도가 될 것이다. 골프 플레이에 비춰 그의 삶에 대한 태도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일의 영역을 예로 들자면 펠로우십(fellowship), 팔로워십(followership), 리더십(leadership) 같은 것이 될 테다. 즉,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인가, 자신이 속한 조직과 팀에서 맡은 역할을 성실히 수행할 사람인가, 다른 사람의 지지와 도움을 얻어 일을 수행해 나갈 만한 사람인가 등 여부 말이다.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태도는 사소한 것 같지만 종국엔 대단한 차이를 만들어 낸다.


찰스 디킨스가 소설 ‘위대한 유산’에서 요즘말로 ‘선한 영향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다. 가난한 고아인 주인공 핍이 대장장이인 매형네서 사는 동안 역시 대장장이로 순박하지만 고결한 영혼을 간직한 조로부터 받은 영향을 말하는 장면이다. “온화하고 심성이 정직하며,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어떤 한 사람의 영향력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멀리까지 미치는지를 아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그 사람의 영향력이 바로 내 곁을 지나칠 때 나 자신이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가를 아는 것은 아주 가능한 일이다.” 디킨스가 소설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위대한 유산은 우연찮게 상속받은 돈 보따리가 아니라 바로 이 선한 영향력일 것이다. 우리 주말골퍼들은 숙명적으로 비즈니스 골프를 치면서 많은 이들을 스쳐 지나간다. 골프를 치는 동안 위대한 유산의 또 다른 주인공 조와 같이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동반자들에게 재미와 유쾌함, 즐거움을 나누는 골퍼가 되자.


# 브런치에 막 입문해 서툰 관계로, 어제 브런치북 연재 체크를 못했네요.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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