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지 않는 한마디
중학교때부터 고등학교를 지나지겹게도 아직까지 만나고 있는 친구녀석이 하나 있고
20대 중반에 어떻게 친해지게 되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않는 그런 여사람친구가 하나 있었다.
우리 셋은 꽤나 성격이 잘 맞아서 가끔 술도 한잔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많이 자제를 하고있지만
어렸을때부터 말을 잘하고 친구들을 놀리는 장난을 치길 좋아했던 나는 친한친구들 중 누군가를 놀리고 그걸 보고 다 같이 좋아하는 그런것에 희열을 느꼈었나보다.
시간이 지나서 간만에 옛 친구들을 만날때
난 전혀 기억이 없는데 짖궂은 말장난을 기억하는 친구들의 증언을 들으면 참 미안하기도 하고
기억은 안나지만 무조건 사과를 한다.
솔직히 기억은 없다. 하지만 그때의 난 분명 그랬을것이다. 반성하고있고 요즘은 예전같지는 않다.
아내도 말을 조리있게 잘하는 편이다.
그래서 가끔 아이들에게 조언을 한다.
"너희도 엄마 아빠를 닮아서 아마 말을 잘하는 편일거야.
말을 잘하면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을수도 있는데 실수를 하는경우도 있어.
그건 언젠가 자기한테 돌아온단다. 하고싶은 말을 다 하면 안돼."
앞으로도 이 조언은 계속 할 예정이다.
이야기가 잠깐 빠졌는데
아담한 체구에 이쁘장한 외모와 달리 정말 털털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나와 내 친구 (내 친구도 말을 잘한다)의 공격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내며 우리는 그렇게 우정을 쌓아가고있었다.
그때 2000년 중반은 우리는 대학생이었고 돈이 없었다.
식대가 내 기억으로 4~5천원 했었던것 같고
호프집이 유행이었으며 3개 안주를 골라서 9,900원이나 10,900원정도 하는 메뉴가 많이 있었다.
지금처럼 식후에 커피를 마시는 문화는 전혀 없없고 , 스타벅스가 국내에서 점점 확장하던 그런 시기였다.
저가형 커피역시 없었고
뉴스에서는 3천원짜리 밥을 먹고 5천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젊은사람들을 비판하는 기사들이 많이 나왔었다.
나 역시 이해가 가지 않는 문화였다.
'커피숍에서 이것저것 다 올라가져있는 파르페를 먹어도 4천원인데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는 커피를 5천원이나 주고 먹는다고?'
위와 같은 문화를 비판하며 일컫는 말이 "된장녀" 라는 단어였다.
글을 쓰며 찾아보니 90년대 중후반에만들어져서 2000년대 중후반에 유행하다고 쓰여져있고
어원은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못하는 의미에서 만들어졌다는 썰이 있다고 한다.
여튼 좋은 의미는 아니었고 '된장남' 이라는 단어보다 '된장녀'라는 단어가 훨씬 많이 들렸던걸 봐서는
아마 스타벅스가 여심을 잘 사로잡지 않았나싶다.
여튼 그 '된장녀'라는 의미는 썩 좋지 않는 의미였다.
단순히 커피를 좋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심하게 말해 '허영심이 많안 , 골빈' 이런뜻에 가까웠으니
그말을 듣는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도 커피를 좋아했다.
우리 셋이 같이 밥을먹은적도 있지만 밥은 각자먹고 PC방이나 술을 한잔 마시려고 모였을때는
항상 손에 왕관을 쓰고 가재손모양을 하고있는 (지금도 그렇게 보인다) 사이렌이 그려진 종이컵을 들고있었다.
그날은 나의 꼽 력이 최고조로 올라와 있던 날이었고. 마침 모임에 가니 역시그녀가 커피를 들고있어서
'어떻게 놀려줄까. 새로 배운 된장녀라는 단어는 언제 써먹을까. 3천원짜리 밥을 먹고 5천원짜리 커피를 마시는게 가당키나 하냐?' 등등 여러가지 레파토리를 머릿속에 정리해놓고 쏟아내려는 찰라
나의 의도를 읽었는지 그녀가 내 얼굴을 보며 씩 웃으며 한마디 했다.
그런후에 아무렇지 않게 커피를 한모금 쯮!
'응? 이렇게 빨리 인정한다고?'
"너 된장녀가 무슨 뜻줄은 아냐?"
"왜 몰라. 나같이 되도않게 비싼 커피 먹고다니는 사람을 부르는 말이지. 근데 보니깐 틀린말이 하나도 없어.
근데 난 이게 좋아. 난 그냥 앞으로도 이렇게 살꺼야. 난 된장녀니깐. 쯮"
평소같으면 이 말 꼬리를 잡아서 어떻게든 더 놀려먹으려고 어떻게든 머리를 짜냈겠지만
'난 된장녀니깐" 이 한마디에 내가 다음에 반박할 말을 잃었고,
이말은 그뒤로도 꽤나 오랫동안 울림이 있었다.
야구선수 장훈이라고 유명한 사람이 있지.
재일 한국인이고 일본에서 타석에 들어설때마다 "조센징!! 조센징!!"이라는 야유를 엄청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의 대처는 "그래 나 조센징인데 그래서 뭐?"
하고 장외홈런을 때렸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그 전부터 들었던 이야기지만
눈앞에서 " 나 된장녀인데, 그래서 뭐?"라는 친구의 이야기가 훨씬더 임팩트가 있었다.
성격이 바로 바뀌진 않았지만
그렇게 내 자신을 인정하려고 노력했고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는 성격처럼 굳어졌다.
그걸 "자존감" 이라고 할지" 자신감" 이라고 이야기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예전보다 편해진 건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다.
보험엉엽 초기에는 어디 모임에 갈때 '혹시 목적을 가지고 이 모임에 오지 않았을까' 누가 말하지 않아도 나혼자 주눅이 들어가 눈치가 보였다면 , 시간이 지나 '그래. 난 보험영업하는 사람인데 뭐.' 라고 인정을 하고 후에 누군가가
"야 너 보험팔러 온거 아냐?" 라는 질문에 "그럼 내가 보험회사 다니는데 정수기 팔러 왔겠냐?" 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참 어려운 이야기중에 하나가 '돈 이야기' 이다.
강의 의뢰가 들어오면 "강사료는 얼마인가요?"라는 질문을 처음에는 하기 참 힘들었는데
이젠 나만의 레파토리가 있다.
웃으며 말할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제가 속물이라 그런지 강사료도 좀 중요해서요~ 강의료는 얼마인가요?" 라고 물어보면
상대는 "속물이라뇨, 당연히 중요하죠" 라고 강사료를 자연스럽게 말할수 있는 상황이 된다.
이 역시 '그래, 교육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을 위한 사명감 중요해, 그런데 나는 강사료도 중요한데.
돈이 중요하면 속물이라고? 너는 돈 안중요해? 그래 나 속물이야. 그래서 뭐?"
아주 정리가 쉽다.
근 15년만에 세명이 한자리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정말 반가웠고 거의 20년전을 어제일 처럼 기억하고 있는것에 좀 무서웠지만 너무나 즐거운 만남이었다.
위의 쓴 일들을 기억하냐고 물어보니 의외로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고,
"아마 나라면 그랬을거야" 라고 웃으면서 말하더라.
그냥 인정해버리니 굳이 기억해야할 필요가 없을만큼 별거 아닌것이 됐고 그냥 흘릴수 있었던거다.
그래 그때 니 이야기가 나에겐 꽤나 큰 사건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고맙고,
그렇게 계속 서로 당당하게
인정 하며 살자.
담엔 니가 한잔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