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지 않는 한마디
글을 쓰다보면 나의 지난 날을 한번 돌아보게 된다.
'잊혀지지 않는 한마디'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고있는데
쓰다보니 좋은기억보다 안좋은기억이 압도적으로 많다.
좋은말은 금방 잊혀지고 나에게 상처가 되었던 말은 오래간다.
나 역시도 그렇지 않겠다고 다시한번 반성하고 다짐한다.
오늘 적을 이야기 역시도 별로 좋은 상황에서 들은말은 아니었다.
아마 30대 후반이었던걸로 기억을 한다.
그런친구들 있지 않은가. 동창인데 평소에는 연락이 없다가 가끔 만나면 반가운 그런친구들.
오늘 이야기할 그 녀석도 바로 그런녀석이었다.
그녀석과는 아마 고등학교 2학년때 같은 반이었을거다. 그리고 문과반이 이과반보다 적었고 층이 달라서 문과인 동창들하고는 대부분 얼굴과 이름을 알고 지냈다. 그녀석과도 아주 친하지는 않았지만 같은반 친구로써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모습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
어느날 자주 만나는 동창한테 그녀석이 '변호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 그렇게 공부를 잘했었나?"
"법대인가를 가서 죽어라 공부해서 사법고시를 패스했어. 독하게 공부했겠지 "
"와 대단하네. 그래도 동창중에서 변호사가 나왔네, 기회되면 한번 만나보고싶다."
자주만나는 친구한테 이야기를 들었는데 몇번 만났다고 했다.
"갑돌아, 그녀석말이지. 예전에 그녀석이 아니야, 변호사되고 완전 사람이 변했어."
의아했다. 시간이 지났어도 그동안에 만났던 동창들은 그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각자 무슨일을 하던 어떤 삶을 살았던 다시 만난 그시점은 18살에서 20년이 지났지만 다시 18세의 모습으로 만날수 있는게 동창이고 친구의 모습이 아니던가.
더구나 이제는 술도 한잔 할수 있으니 그동안의 밀린 이야기들을 안주로 삼을수 있다는게 삶의 또하나의 즐거움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던 나였다.
"갑돌아. 그녀석 한번 만나볼래?"
"그래? 만나면 반갑긴 하겠다. 많이 변했으려나. 그래도 동창이 변호사인데 언제 한번 도움받을수도 있겠네. 그래 같이 한번 보자"
머지않은시간에 약속이 잡혔다.
만나는날인가 그전날인가 주선자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나온다고 했고
나야 뭐 소개팅 자리도 아니고, 옛 친구를 만나는 느낌으로 약속장소로 갔다.
여담이지만 내가 옛친구를 만나는게 설레는 이유중 하나는
내가 기억을 하지못하는 이야기를 들을수 있기 때문이다. 뭔가 기억의 조각들이 이제서야 맞춰지는 느낌이랄까? 그녀석을 만나면 고등학교 2학년때 내가 잊고있었던 어떤 기억들을 떠올릴수 있을까.
졸업한 고등학교 근처에서 만난 그녀석은 한눈에 봐도 금방 알아볼수 있었다.
"야 반갑다. 그대로구나 너"
서로 20년의 세월의 지나갔지만 원판불변의 법칙! 그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우리는 근처 호프집으로가서 호프를 한잔씩 시켜놓고 옛 이야기를 시작하기 시작했다.
재미있었다. 서로 연락하는 친구들이 다르니 그 친구들의 이야기도 들을수 있었고
말했듯이 내가 몰랐던 기억들이 하나둘씩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술이 몇잔 더 들어가고 서로의 일 이야기 , 가정 이야기 ,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주위에 변호사가 고객으로밖에 없었던 나는 궁금한것들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거기서 끝냈으면 참 좋았을껄,
술이 몇잔 들어간후에는 내가 물어보지 않은 굳이 물어보지 않은 의뢰인에 대한 이야기 (개인정보가 전혀 포함되지 않은 업무이야기라 상관이 없을것 같긴 하다) 알게된 유명인사에 관한 이야기등을 해줬고 평소에 그런 내용을 들을 기회가 없었던 나는 흥미롭게 경청을 하였다.
그런데 뭔가 대화가 길어질수록 뭔가 선을 넘을듯 말듯 아슬아슬한 느낌.
대뜸.
"갑돌아. 너 보험한다고 했지? , 힘들지 않냐? 사람들 만나는거?"
"그렇지 뭐 . 내가 선택한 길이니깐."
"그래서 그런데. 야. 내가 보험하나 들어줄까? 한 100만원 짜리로?"
보험영업을 15년하면서 술자리에서 보험이야기를 해본적은 한번도 없었고 이건 내가 지키고 있는 철칙중에 하나였다.
"야 오랜만에 만나서 무슨 보험 얘기야. 정 필요하면 나중에 맨정신에 다시 물어봐줘. 그때 다시 얘기하자"
"아니야 보험 들수도 있는거지 야. 가져와봐. 내가 100만원짜리 하나 해줄께."
"됐어. 진짜 간만에 만나서 무슨 보험얘기냐 됐어, 그럴려고 만난거 아니야."
월 100만원이면 적은 금액은 아니다.
만약 내가 그 보험을 계약했으면 나는 다음달에 수입이 괜찮았겠지.
술을 먹을때 보험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나의 철칙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뭔가 꺼림직한 분위기의 나의 내면에 있는 무언가가 하지 말라고 했을까.
나는 이상하게나마 100만원짜리 보험에 집착하는 그녀석의 호의를 몇 번 거절하고
옛 이야기를 더 하자고 이야기 했다.
그러자 대뜸. 표정을 바꾸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고 한마디를 던진다.
'잘못들었나'
"응?"
"몇번 던졌는데. 안 넘어오네 , 먹고살기 괜찮은가보다."
"..............."
더 앉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방금까지 추억속의 친구는 금새 어딜가고
계약을 미끼로 눈앞에 보험설계사를 갖고 놀고 떠보려고하는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변해버린 인간이 웃고있더라.
"그래. 그 친구녀석한데 너 많이 변했다는 소리는 들었다.
........반가웠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마 바로 나왔던것 같다.
씁쓸하고 슬펐다.
그 뒤로 다신 그녀석을 볼일은 없었다.
집에 돌아오는길에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변호사가 얼마나 그렇게 대단한 직업이길래 사람을 저렇게 변하게 만드는걸까?
그 짧은 시간에 그래도 100만원짜리 보험을 해달라고 했다면
나는 얼마나 더 비참해졌을까.
씁쓸한 와중에 다행이라고 생각도 들었다.
이후에 업무적으로 만났던 변호사들은 대부분 괜찮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저 한마디가 내 가슴속에 남아서일까
' 이 사람들도 많이 변했을까? 내가 고객이고 일로 관계된 사람이라 친절한걸까?'
괜히 직업에 대한 편견이 생길까 무서웠고
반면에 내가 보험영업을 해서 이런 취급을 당했을까.
간만에 그녀석 이름으로 검색을 해봤다.
블로그나 기사가 2014년에 멈춰있구나.
이제와서 한마디 하자면
"옛 친구야. 그때 그 100만원, 누군가에게 또 무기로 삼지 않았길 바란다.
너는 너 대로 나는 나대로 열심히 건강하게 잘 살자.
그리고 앞으로 내가 법적으로 도움을 받을일이나 상담할일이 있어도
너를 찾거나 다른사람에게 소개 할 일은 없을것 같다.
그리고 이런 글 소재를 만들어줘서 고맙다.
너에게 고마울일은 이게 마지막일것 같다.
우리 우연히라도 마주치지 말자.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