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지 않는 한마디
필자가 군대에 있을때 이야기다.
국방의 의무인 군대를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뺼수 있으면 빼야한다. 아니다.
말들이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군대를 다녀오는것을 찬성하는 편이다
군대를 가보니 이 사회의 작은 집약체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한이 없다.
그리고 내 자신이 군대를 다녀온 후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 나는 문제아는 아니었지만 내가생각해도 공부를 징그럽게 안했다.
친구들 만나서 노는걸 좋아하고 오락식 자주가고 공부에는 별로 취미가 없어서
학창시절에 공부를 그래도 잘하셨던 부모님은 아마 속이 뒤집이 지셨으리라.
고등학교때는 비평준화였다. 혹시 이 말을 사람이 있을까봐 추가적으로 설명하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 배정할때 학교에서 가까운 학교로 무작위 배정 (흔히 말하는 뺑뺑이)이 아니라 점수에 맞춰 고등학교를 지원해서 가는 그런 형식이었다.
동네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학교가 있었고 그 학교까지는 못가고 그 아래 있는 학교를 간걸봐서는 중학교까지는 공부를 했었나보다.
수능을 봤는데
딩연히 갈만한 학교가 없었다.
재수를 결심했고 실패했다.
재수는 좀 열심히 해서 작년보다 점수가 많이 올랐는데
작년보다 평균이 다들 그만큼 올랐더라.
좀 억울했다. 한번더 도전을 하기러 했다.
실패했다.
만사가 귀찮더라 4년제고 전문대고는 그냥 집에서 가까운데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점수가 많이 남는데도 불구하고 한 전문대에 지원했고 당연히 합격했다.
대학교에 가서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과대표(반대표)가 되었고
대학생활은 내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더 형편없었다.
수업내용이나 학교 시설, 이런것은 그냥 그렇다치는데 학생들의 수준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
전문대의 수준을 비하한다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후 편입을 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과 수준을 비교할수 있었는데 정말 같은 나이대의 사람들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격하게 들더라
우리학교는 부천에 있었다.
그 학교는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들도 오기도 하고 실업계학교에서 특수전형으로 온 친구도 있었는데
내가 개강 첫날에 본 광경은 김포에서 온 학생과 인천에서 온 학생이 어느지역이 더 쎈지 말싸움을 하닥 주먹다짐으로 번졌고 그걸 나와 예비역 형님이 뜯어말렸던 기억이 난다.
흔히 고등학교때 일진이라고 하는애들끼리 수업시간에 뒤에 앉아서 떠들어서 수업을 방해하는일이 다반사.
심지어 시험기간이 다 됐을때 교수님을 무시하고 너무 심하다싶어
수업시간에 벌떡 일어나 교수님께 "죄송합니다" 라고 인사하고 돌아서서 그 두꺼운 전공책을 뒤에서 방해하던 년놈들한테 던져버리고 쌍욕을 박고 당장 나가라고 했던적도 있다. (그 수업은 나도 참 어려웠는데 A학점이 나왔다)
회의감이 많이 들었다. 내가 이러려고 재수 삼수를 해서 여기까지 왔을까.
학교를 늦게가니 군대가 늦어졌고 먼저간 중고등학교 동창들은 전역을 앞둔녀석들도 있었다.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입대를 계획했다. 모든 보직이 다 힘들겠지만
휴가를 나왔던 행정병 친구가 수색대 친구한테 "꿀보직" 이라면서 엄청 타박을 받는걸보고
'아 수색대 이상 빡신군대로 가야겠구나'
생각을 했고 조만간 해병대에 지원했다.
참 시험운이 없는건지 실력이 없는건지 그마저도 한번 고배를 마셨고 두번째 지원을 하고 그제서야 합격을 했다.
군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제목에 있는 이야기는 새벽에 근무 초소에서 들었던 이야기다.
서울소재 명문 Y대를 체육학과를 다니던 선임이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한살이 어렸고 처음에 자대배치를 받았을때는 파견을가서 같이 생활을 못하다가 이병이 끝날때즘 합류를 했었는데 소문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같이 초소근무를 들어가기를 꺼렸었는데 결국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새벽 2시쯤이었들거다.
"야. 몇살이냐. "
"스물 셋입니다! "
"늦게왔네 나보다 형이네. 참 뭣같겠다 그치?
"아닙니다.!"
다른것없이 이렇게 시작된 대화는 일방적인 대화로 또 흘러갔다
"사회에서 뭐 하다 왔냐"
"대학생이었습니다"
"너 나 학교 어디 다니는지 아냐?"
"Y대 체대 다니시는걸로 알고있습니다"
"잘 아네 . 너 대학교 어디 다니냐?"
"저는 OO전문대학 다니고 있습니다"
"그게 어디있는건데?"
"경기도 부천이 있습니다."
"공부 존나 안했구나"
"그렇습니다"
"....... 야"
"이병 갑돌이!"
"전역하고 꼭 편입해라.."
"편입 말씀이십니까? "
"그래 편입 .
너 여자친구 있냐?"
"없습니다"
"전역하고 니가 사랑하고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생겼다고 치자.
결혼을 앞두고 인사를가겠지. 그럼 그 여자친구 아버지가 아마 이렇게 물어볼거다
그리고 니 입에서 대학교 이름이 나왔을때 그 다음 대화가 방금같이
' 그게 어디있는건가? ' 라는 말이 나오면 바로 끝이다. 넌 그냥 나와야 돼.
무슨말인줄 알아?"
듣고 흘릴수도 있는 말이었고
학벌이 좋은 나이어린 선임의 자기 자랑이었을 수도 있지만
초소에서 했던 많은 이야기중에 저 짧은 이야기만 토막으로 기억이 나는걸 봐서는
나에게 많은 임팩트가 있었고
후에 나는 명문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름을 들으면 어디 있는지 알만한 학교에 편입을 했는데
이는 그 선임에 그 말이 크게 작용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역을 하고 1학년 2학기로 복학했을때
처음에 만났던 그 일진흉내내는 아이들은 새로운 새내기로 다 바뀌어 있었고
그때보다는 좀 나아졌다지만 학생들의 수준은 크게 다르지 않았고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학교앞의 수많은 술집들을 지나쳐 편입학원이 있는 대방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편입공부는 꽤나 열심히 했다.
많은 유혹들을 이겨냈고 결국에 명문대는 아니지만 학교 이름을 들으면 어느 지역인지 정도는 알수있는 대학교에 편입을 할수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성취감.
어머니께서 정말 좋아하셨다. (우리어머니가 정말 좋아하시는 모습이 크게 두가지가 기억이 나는데 하나는 편입시험에 합격했을때고 나머지 하나는 타고다니던 오토바이를 잃어버렸을 때다.)
새로 다닌 학교에서는 기존에 못보던 모습들을 볼수 있었다.
예를들어. 우리학교는 국립대 였는데 더 나은학교를 갈수있는 실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집안형편이 어려워 비교적 학비가 저렴한 우리학교로 온 학생들이 있었다. 그 학생들은 그 학비도 아까워 장학금을 받기위해 아르바이트랑 공부를 병행하고는 했는데 , 정말 독하게 살더라. 많이 느끼고 많이 반성했다. 전에 학교에서 봤던 그 아이들과 같은 연령대가 맞나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고
그 친구들을 보고 처음으로 '그 동안 내가 했던것은 공부가 아니었구나' 라고 느꼈다.
'편입한게 살면서 도움이 되었나요?'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내 대답은 무조건 YES 다.
사실 그전에 보험할때는 직접적으로 도움이 된적은 없지만
이렇게 강사카드와 자기소개서를 자주 써낼 직업을 가진 지금
편입을 하지 않았다면 학력을 쓸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주눅이 들었을것 같다.
그때 그 선임과는 따로 연락을 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내가 그때 그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편입을 결정할수 있었을까?
모쪼록 그때의 한마디가 생각나서 적어본 글이 길어졌다.
좀 늦었지만
감사했습니다.
기회가되면 얼굴보고 맥주나 한잔 하고싶네요.
건강하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