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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Jun 05. 2020

4-08. 자유의지는 없다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를 비판한 니체

니체가 살았던 19세기의 독일인들은 독일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에 자부심이 굉장히 강했다. 독일민족으로서의 훌륭함. 자기 가문에 대한 으스댐. 당시 독일 귀족들이 가진 기본적인 매너였다. 니체는 그런 동시대인들을 혐오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천박(하지만 그럼에도 심플)한 비유를 하나 들겠다. 자신의 모교를 자랑하거나 소속 회사의 규모나 브랜드가치를 내세우는 사람만큼 좀스럽고 밉상인 경우도 드물다. 아마 니체에게는 독일민족 운운하거나 가문을 앞세우는 인간들이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민족성이나 가문은 인간의 내재적 가치가 되지 못한다.


특히 민족의 경우 니체는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몇 천 년 동안 독일인은 독일인끼리만 자손을 출산했다는 말인가. 당연히 그동안 수없이 많은 외국인 및 외지인들과 교류하고 자식을 낳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독일민족은 사실상 수많은 민족의 혼성인 셈이다. 심지어 독일민족이 깔보고 혐오하는 인종의 피도 섞여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순수한 혈통이니 우월한 민족 같은 개념이 가당키나 하냐고 니체는 비웃었다. 설사 민족이라는 개념이 과학적으로 참이고, 현실에서 성립 가능한 범주라 하더라도, 해당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요소를 마치 개인 소유의 특성인양 으스대는 꼴은 찌질의 극치라고 니체는 생각했다.


그러므로 특정 국가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니체는 탐탁지 않았다. 니체에게 국가란, 도덕과 마찬가지로, 약자들이 강자를 제압하기 위한 연대였다. 약자가 혼자서는 강자를 무찌르거나 막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힘을 합친 것이 공동체의 기원이고, 그것이 발전하여 지금과 같은 국가를 창출했다는 것이다. 국가라는 방어막 안에서 안심하며 안전하게 살려는 태도는 안일함의 극치다. 국가는 오히려 개인의 잠재력을 계발시키기는커녕 그것을 꺼내 쓸 기회를 박탈한다. 국가의 품 안에서 국민들은 온실 속 화초처럼 시들어간다.


대의제 또한 노예들이 개발한 안전장치에 불과하다. 자신을 통치할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선출해 그들의 명령과 지도에 스스로 복종하는 것. 자신을 다스릴 권리를 타인에게 기꺼이 양도하는 것. 그러한 양도가 자유주의적이며 세련된 통치제도라는 발상. 그것은, 복종에 길들여져 복종하지 않으면 불안한 노예들의 뼛속 깊은 근성이다.


그렇다고 니체가 ‘직접 민주주의’를 옹호했던 것은 아니다. 반대로 니체는 민주주의를 혐오했다. 사실 이 대목은 여전히 논란의 소재가 되는 지점이다. 혹자는 니체를 보수주의자 엘리트주의자 신분제 옹호자 등으로 비난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니체가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처럼 철인 통치를 옹호했던 것도 아니다. 니체는 정치 자체에 회의적이었다고 보는 게 더 정합적인 해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그럼에도 이 지면에서의 해석은 일부의 견해일 뿐임을 알아두기 바란다. 니체의 정치성향이나 정치철학에 대해서는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공동체의 특정 구성원이 구성원 전체를 통치한다는 제도에 대해 니체는 불만이었다. 군주제든 과두제든 대의제든, 사람들의 삶을 구획 짓고 디자인할 권리를 특정 부류에게 전임한다는 건, 니체에겐 개인이 가진 필수적인 본성 중 하나를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잠깐 다른 얘기로 빠지겠다.


니체는 ‘자유의지’라는 개념을 허구라 생각했다. 자유의지란 인간 정신의 일부분일 뿐이다. 우리가 자유의지라고 부르는 어떠한 실체는, 내 삶을 계획하고 판단하여 선택하는 정신의 주체적 영역을 일컫는다. 그런데, 그렇게 계획하고 판단하여 명령 내리면, 그 명령을 따르고 수행하는 ‘나’ 또한 존재해야 한다. 지시만 하는 ‘나’만 온전한 나일 순 없다. 그것을 실행하고 실패하거나 성공시키는 실천적/수행적 존재 또한 나의 일부다. 그러므로 나라는 존재는, 명령하는 나와 복종하는 나의 합으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자유의지’라는 개념을 중시하고 그것만 내세우는 것은 마치, 집단 전체 발전의 공을 지배층에게 돌리고, 지배층이 집단을 대표하는 냥 대우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이다.


개인에게 자유의지가 허구이듯, 집단에서 통치를 수행하는 정치적 지배층이라는 개념 또한 허구라는 게 니체의 생각이었다. 각자는 각자가 다스려야 한다. 나의 주인은 나이며 나의 노예 또한 나다.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통치 하에서 삶을 영위해야 한다. 내 삶을 내가 좌지우지하는 것. 그것이 내 삶의 본질인데 그걸 왜 남에게 맡기는가 말이다.


그러므로 니체가 민주주의를 비판했던 포인트는, 열등한 자들이 국가 통치를 수행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기보다, 내가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속한 공동체를 다스릴 권한이 나에게 주어지는 게 아니며, 나를 다스릴 권한 또한 같은 구성원이라는 이유만으로 타인에게 양도 명분 없다는 뜻이다. 니체는 무리 속의 생활을 폄하했다. 그가 원했던 건, 온전한 개인으로서의 고유한 삶의 양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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