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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Jun 16. 2020

4-10. 역사라는 환상

주인과 종의 변증법, 니체 버전

회화에서 원근법과 소실점은 1500년 전후에 개발된 과학적 기법이다. 이전 시대의 그림은 다르게 그려졌다. 고대 피라미드 벽화나 중세 유럽의 성화를 보면 알 것이다. 가까운 것을 크게, 먼 것을 작게 그리지 않았다. 중요하거나 위대한 인물은 거인으로, 하찮은 인물은 난쟁이 소인으로 그렸다. 아마 그러한 방식이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잘 반영한 표현이었으리라.


그러한 표현이 주관적인 인식 세계에서는 참일 수 있지만, 실제 눈이 감각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르네상스 이후의 화가들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이미지를 화폭에 담고 싶었다. 그 문제의식에 대한 많은 화가들의 오랜 고민의 결과가 원근법이었다.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잠깐 포털에서 ‘마사초’를 검색해 보길 권유한다.


사실적/현실적 묘사에 대한 고민은 거듭 깊어져 시간이 지날수록 세련된 기법들이 속속 개발됐다. 다빈치처럼 스케치 선을 지우고 경계를 모호하게 표현하고 멀리 있을수록 채도를 낮춰 흐리게 처리한다든가. 카라바조나 렘브란트처럼 빛에 의한 명암의 대조를 극대화함으로써 공간감을 부여한다든가. 푸생처럼 인물과 근경과 원경을 구획 지어 깊이를 만든다든가.


원근법이 처음 개발되고 500년 넘게 지난 지금, 많은 사람들은 인간이 외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과 원근법이 일치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원근법이란 인간의 지각 방식을 화폭에 재현하기 위한 하나의 모델일 뿐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 모델은 우리의 시각 체계와 일치하지 않는다. 천동설적 세계도 지동설적 세계도 실은 우주와 일치하지 않듯이 말이다.


그것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카메라다.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인간의 눈으로 본 장면과 일치할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같지 않다. 초점이라든가 색감이나 색온도라든가 바깥 화면에 대한 굴곡률 등 많은 디테일에서 인간의 눈과 카메라 렌즈는 다르다. 그래서 우리 눈으로 본 풍경을 카메라로 담으면 실망하는 일이 많은데, 그건 카메라 렌즈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아마추어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다.


인간이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금의 나와 현 시대를 과거 사건들의 인과적 결과라고 해석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습은 과거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의 한국 사회가 이 모양인 건 일제강점기 때문이고 한국전쟁 때문이라든가. 박정희-전두환 정권에 연이은 개발경제 때문이라든가. 사람들은 시대와 사회를 늘 그렇게 이해한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시간이란 개념은 깡패가 되고 만다. 왜냐하면 역사적 관점에서 지금의 내가, 지금 우리 사회가 이런 모습을 하고 이런 문제에 직면한 건 과거의 연이은 사건들의 필연적 결과물인데. 관건은, 과거는 바뀔 수 없는 고정물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과거와 현재는 주종 관계가 되고 만다. 과거라는 주체가 현재라는 객체를 흔드는 꼴이다.


그런데 그건 인간의 해석이라는 게 니체의 진단이다. 고전주의 회화를 보면, 마치 소실점이 나의 눈에 풍경을 펼쳐주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소실점은 화가가 만든 임의적인 지점에 불과하다. 화가가 눈알을 조금만 옆으로 돌리면 소실점은 초점을 따라 이동하고 펼쳐지는 풍경의 스케이프는 달라진다. 그러므로 풍경을 펼치는 주체는 소실점이 아니라 화가 자신이다.


역사 또한 마찬가지다. 마치 과거의 사건이 지금의 우리에게 현재와 같은 사회를 펼쳐준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은 우리 사고의 초점이 특정 사건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라는 거다. 풍경을 지배하는 것이 화가의 시선이듯, 과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현대인의 인식이다. 수없이 많은 과거 사건들 중 무엇에 조명을 비출지는 현대인의 몫이다. 현재가 주(主)고, 과거가 종(從)이다.


역사를 나쁘게 보면, 내 문제의 원인을 과거 탓으로 돌리려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니체는 그런 부분까지도 염려한 듯하다. 나를 규명하고 규정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고 말이다. 그러니 내 문제의 원인은 현재에 있고, 나는 그것을 주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국가도 전통도 제도도 도덕도 역사도 니체에게는 약자가 개발한 훌륭한 핑곗거리일 뿐이다.


니체는 그러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라이프니츠적인 인과론적/과학적 세계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당연히 그 전환이 가능했던 데에는, 칸트의 인식론적 전환에 상당 부분 빚졌음은 두말 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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