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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Jun 17. 2020

4-11. 윤회에 대한 과학적 고찰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

철학에 진지하게 몰두하기 전 니체는 과학을 연구하고 싶어 했다. 니체는 당대에 ‘힙’했던 과학자들의 저작, 예를 들어 클라우지우스나 켈빈 등의 열역학과 맥스웰 등의 전자기학을 흥미롭게 읽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과학자가 되지 않았지만, 그가 읽은 텍스트들은 그의 사상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


니체가 과학으로부터 가장 수혜를 받은 이론은 ‘영원회귀 사상’이다. 니체는 우주의 시간은 영원하며 공간은 유한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원자)의 수도 유한하다고 보았다. 지금 내 얼굴이 이렇게 못난 것은 나라는 신체를 구성하는 원자들의 배열 탓이다. 마찬가지로 저 배우가 잘생긴 것 또한 그의 신체를 구성하는 원자들의 배열 덕이다. 내 신체의 구성요소들이 저 배우와 똑같이 재배열된다면 나도 그와 같이 미남이 될 수 있다.


우주 전체가 그렇다. 은하의 움직임도, 별의 탄생과 죽음도, 지구 안에 온갖 생명체들의 생사도, 인간들 사이의 사랑과 전쟁도, 결국은 원자들의 배치로 읽을 수 있다. 그러니 현상·사건의 발생과 변화는 모두 각 시간에 따른 원자들의 운동과 위치 변화 및 그에 따른 결합-비결합에 기인한다.


그러한 니체의 아이디어에 도움을 준 분야가 역학이었다. 1840년대 율리우스 마이어와 헤르만 헬름홀츠는 ‘에너지 보존’ 개념을 확립하고 증명한 바 있다. 에너지란 물질과 똑같이 양적인 개념이며 따라서 형태만 변할 뿐 사라지지 않는다는 거다. 그러니 시간이 흘러도 우주에 존재하는 에너지 총량은 동일하다. 물질계든 에너지계든 플러스가 있으면 마이너스가 있으며 그 총합은 항상 0이다. 니체에게 우주는 제로섬의 세계였다.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원자의 개수는 유한하다. 유한한 원자로 만들어낼 수 있는 조합 또한 유한하다. 재료가 유한하니 그 재료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결과물의 수도 유한하다는 말이다. 반면에 우주의 시간은 무한하다. 유한한 재료로 만들 수 있는 모든 유한한 조합을 실현하는 데 걸리는 시간 또한 유한하다. 이쯤 되면 감이 오는가.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이 처음이 아니다. 당신이 이 글을 읽는 것도 처음이 아니다. 우리는 무한 번째 이 글을 쓰거나 읽고 있으며, 앞으로도 무한 번 그럴 것이다. 우주의 유한한 원자들로 만들어지는 모든 유한한 조합들은 우주의 무한한 시간 동안 무한히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때 니체의 조언은 이것이다. 멍청하게 살지 말라는 거다. 당신의 삶은 앞으로 무한히 동일하게 반복될 것이기에, 당신이 지금 바보처럼 산다면, 그 다음 번에도 또 그 다음 번에도 다음×10000번에도 당신은 바보로 살 것이다. 무한히 바보의 삶을 살고 싶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깨닫고 빨리 그만두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더 나아진 삶이 반복될 것이므로.


그렇다면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니체는 인간의 발달 단계를 3단계로 구분한다. 낙타, 사자, 어린 아이. 1단계는 낙타처럼 짐을 지고 사막을 건너는 삶을 말한다. 낙타는 자신의 짐을 지지 않는다. 목적지 또한 마찬가지다. 남의 짐을 지고 남이 정한 목적지를 왔다갔다 할 뿐이다.


2단계는 남의 짐을 벗어던지고 사자처럼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단계를 일컫는다. 사자는 밀림의 왕으로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으며 아무런 명령도 따르지 않는다. 언뜻 자유로워 보이지만, 사자에게는 하고 싶은 것도 가야 하는 곳도 없다. 되는 대로 즉흥적이고 본능적으로 반응할 뿐이다. 그것은 삶이 아니다. 연명(延命)이다.


3단계는 어린 아이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삶이다. 어린 아이는 세상이 정한 규칙에 무관심하며 무지하다. 해야 할 것도 없으며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없다. 때로 세상의 억압이 아이를 짓눌러도 아이는 상관하지 않는다. 자신의 길을 스스로 정하는 삶. 세상의 이목으로부터 자유로운 삶. 자신이 명령하고 자신이 따르는 삶. 그것이 니체가 말하는 가장 완성된 인간형이다. 그 상태에 도달한 인간을 니체는 위버멘쉬라 불렀다.


니체는 위와 같은 생각을 실러로부터 배웠다. 실러 또한 니체보다 앞서, 인간 성장 3단계 이론을 내놓았다. 1단계가 정욕과 쾌락에 따르는 삶. 2단계가 도덕과 법을 지키는 삶. 3단계가 자신을 해방시켜 유희하고 창조하는 삶이다. 니체의 이론과 거의 흡사하다.


니체가 실러 등의 낭만주의자들로부터 발견한 건 ‘개인’이었다. 니체는 낭만주의자들의 도움을 받아 칸트와 헤겔 등으로 대표되는 이성주의자들로부터 개인을 구출한 것이다. 모든 인간이 다 똑같지 않다. 인간은 동일한 소프트웨어가 설치된 AI가 아니다. 칸트와 헤겔이 말하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기계다. 그들에겐 생의 감각도, 기쁨과 슬픔의 정념도, 삶과 죽음을 향하는 욕정도 다 하찮다. 하지만 니체는 그런 것들이야말로 인간을 진정 인간답게 만든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각 인간은 저마다 다른 발달 단계에 있다. 3단계형 인간=위버멘쉬가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주체성과 창조성이 필요하다. 그것이 니체가 ‘영원회귀 사상’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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