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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Jul 09. 2020

5-01. 정신의 보편법칙을 찾아서

정신분석학의 기본 전제와 세계관

현재로서 프로이트의 입지는 애매하다. 아니 불안정하다고 해야 하나. 심리학 하면 일반인들은 프로이트를 떠올리겠지만, 실상 심리학계에서 프로이트는 뒷방 늙은이가 돼버렸다. 심리학이 철저한 실험과 통계로 무장한 과학주의를 표방하며 자연과학의 품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전 세계에는 몇몇 정신분석학 전공자들이 건재한 건 사실이지만, 그들이 주류라고 하기엔 민망하다.


게다가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빅데이터니 AI니 하는 시대에 무의식을 언급하는 건 철지난 촌스러움이 되었다. 적어도 과학계에서는 그렇다. 그나마 철학이나 비평 쪽에서는 프로이트나 라캉 등의 정신분석학적 접근이 유효하지만, 그것도 한때의 광풍스런 유행이 지나고 난 뒤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행히(?) 인문계열 쪽에서는 여전히 프로이트가 후한 대접을 받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를 이 책에서 아주 중요한 사람으로 꼽는 이유는, 분명히 현대인들은 프로이트적인, 정신분석학적인 사고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무의식적’이라는 표현을 쓴다. 무의식라는 말이 단순히 관용적으로 쓰이는 게 아니라, 사람들은 실제로 의식이 눈치 못 채는 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한다. 성적 동기를 중요시하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해 진반농반으로 이야기한다.


무의식이 실존하는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진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여기서 그것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데 관심이 없다. 다만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나름의 관심과 믿음을 갖기 때문에, 정신분석학은 사람들 사이에 범용적인 가치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러므로 이번 장은 우리에게 정신에 대해 많은 생각의 유산을 남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소개하려 한다.


원래 정신분석학은 신경증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정신의학의 치료 방법이었다. 그러니까 맨 처음 정신분석학은 신경증을 앓는 환자에 한해서만 적용되는 특수한 이론이었다. 그러던 것이 프로이트가 치료한 환자들의 사례가 쌓이고 프로이트 본인을 정신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환자뿐 아니라 병증이 없는 일반인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 정신법칙의 존재를 감지하면서 일반적인 이론 체계로 확장했다.


생각해 보면 정신병 환자든 비환자든 심리 구조는 똑같다. 따라서 둘의 마음의 작동 원리도 동일하다. 18-19세기의 계몽주의와 합리주의를 거쳐온 유럽 사회에서 ‘과학법칙’은 자연스러운 발상이었다. 뉴턴에 의해 모든 우주의 구성 요소들이 단 하나도 예외없이 우주의 단일한 법칙을 따라 운행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지구든 천상이든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에너지와 열과 전자기력에 관한 놀라운 연구가 진행된 19세기를 지나면서는, 물질뿐 아니라 우주를 구성하는 힘과 에너지 또한 일관된 물리 법칙에 따라 작용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인간의 정신은 어떨까. 인간의 마음 또한 물질이라는 신체로 구성되었으며, 신체 또한 물질의 운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바꿔 말하면 정신의 작용은 물질의 운동에 기인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18세기 후반 분트 이후의 심리학적 세계관이었다.


프로이트 또한 그러한 선구자들의 연구 결과 위에 서 있었다. 우주가 물리법칙에 따라 움직이듯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는 보편적인 법칙이 있을 것이라고 그는 가정했다. 그게 맞다면 우리가 어떤 생각, 어떤 행동을 하든 그것은 반드시 그 법칙 위에 놓인 것이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환자가 내뱉는 아주 사소한 말과 행동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 보잘 것 없는 표현이 환자를 이해할 수 있는 결정적 요인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프로이트가 신경증 환자를 치료할 때 사용한 방법은 ‘자유연상’이었다. 프로이트의 개인병원을 방문한 환자는 치료를 위해 편안한 침대에 누웠다. 프로이트는 환자의 시선에 잡히지 않는 뒤쪽에 멀찍이 앉았다. 그러면 환자는 침대에 누운 채로 생각나는 대로 아무 말이나 하면 됐다. 이때 그 어떤 검열도 거치지 않아야 한다.


혹자는 의혹을 비칠 것이다. 그럼 정말 환자가 아무 말이나 내뱉을 텐데, 그게 치료와 무슨 상관이냐고 말이다. 자유연상은 그 이름과는 달리 전혀 자유롭지 않다. 앞서 언급한 대로 우리의 언행은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는데, 우리의 마음은 100% 내 자유가 아니다. 내 마음은 정신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유롭지 않은 거다. 환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그가 내뱉는 맥락 없는 말들은 모두 정신의 인과법칙에 따른 필연적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거기서 치료의 가능성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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