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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Jul 14. 2020

5-02. 잃어버린 질서를 찾아서

자연치유의 힘

모든 생명체는 살고 싶어 한다. 죽고 싶어하는 생명체는 없다(특수 상황은 예외). 산다는 것은 신체 내부의 고유한 생명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질서는 가만히 놔둔다고 유지되지 않는다. 생명은 자신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인위적인 노력을 엄청 해댄다. 신체는 ‘정상’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항상 시스템을 풀가동 중이라는 말이다.


신체는 상처가 나면 상처를 회복시켜 다시 정상 상태로 되돌린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마음에 상처를 입어도 우리의 심리 체계는 그 상처를 회복시켜 정상 심리로 회복시킨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마음의 방향성이다. 물론 이런 반문은 가능하다. 몸에 큰 상처가 나면 자연 회복이 불가능하지 않냐고. 맞다. 하지만 외과적인 치료나 수술을 통해 회복이 가능하다.


마음도 똑같다. 작은 마음의 상처는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치유할 수 있지만 큰 상처는 혼자서 치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정신과나 상담소를 찾는 것이다. 그곳에서 약물이나 상담을 통해 마음은 본래의 궤도에 안착할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은 이거다. 작은 상처든 큰 상처든, 마음은 병을 얻으면 그 병을 치유하여 다시 원래의 건강한 상태를 돌아가려는 회복탄력성이 있다는 거다.


프로이트의 자유연상법은 그러한 인간 마음의 기본적인 방향성에 기댄 치료 방법이다. 환자는 우선 자신의 병을 치유하고 싶기 때문에 프로이트의 병실을 찾아온 것이다. 환자는 자신의 마음이 병든 채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건강한 정상 상태로 되돌아가려 한다. 프로이트의 병실에 누운 환자는, 아무리 프로이트가 떠오르는 대로 말을 내뱉으라고 했어도, 결국은 자신의 병과 관련된, 그래서 (마치 모든 물체가 중력에 의해 지구 쪽으로 떨어지듯) 마음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지향으로서의 이야기를 내뱉게 된다. 환자의 무의식이 환자 모르게 그렇게 시킨다.


의식의 레벨에서 환자는 자신이 자유롭게 아무거나 이거저거 떠오르는 대로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무의식은 철저히 병든 환자의 마음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환자를 유도한다. 그러므로 자유연상법을 실행하는 동안 환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사소한 단어 하나까지도 중요할 수 있다. 의사는 환자의 말을 놓치지 않고 최대한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찾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무의식은 결코 있는 그대로 자신의 본모습을 내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의식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온갖 상징과 비유를 곁들인다.


그렇다면 환자의 마음은 애초에 왜 병들었을까? 신체의 병을 예로 들어보자. 신체는 왜 멍들고 피 흘리는가? 왜 위염에 걸리나? 독감을 앓는 이유는? 맞았거나 부딪혔거나, 과식했거나, 바이러스에 감염됐기 때문이다. 몸이 아픈 이유는 외부의 비정상적인 자극 때문이다. 마음의 병도 마찬가지다. 외부의 사건이나 경험이 인간 심리에 어떤 심상이나 감정으로 상흔을 남기는데 그것이 어떤 측면에서든 부적절할 경우 심리적 질환을 일으키게 된다.


따라서 프로이트의 병실을 찾는 신경증 환자들도 당연히 과거에 특정한 사건이나 경험을 겪었던 것이다. 그것이 현재 마음의 병을 앓게 만들었으며, 프로이트는 자유연상법을 통해 환자가 과거에 겪은 바로 그 원인으로서의 사건 또는 경험을 찾으려 한 것이다. 그런데 그 기억은 환자의 의식 레벨에 있지 않고 무의식 레벨에 있다. 환자는 해당 경험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거나, 기억하더라도 왜곡해서 전혀 엉뚱하게 기억할 것이다. 혹은 표면적인 사건의 개요는 기억하더라도 그에 대한 환자 본인의 감정은 표백된 상태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환자는 스스로 병의 원인을 찾을 수 없다.


환자의 무의식은 양측 힘의 균형이 팽팽한 상태다. 의식이 과거 사건의 진실을 영원히 몰라서 마치 그 사건이 없었던 것처럼 살기 바라는 힘과, 의식이 과거 사건을 기억해내고 그에 대한 본인의 감정도 떠올려서 정신질환의 원인을 알아채길 바라는 힘 사이에서 말이다.


이때 정신분석학자의 역할은 이것이다. 후자의 힘에 무게를 아주 조금만 더하는 것. 그렇게 되면 후자의 힘이 우세해져 의식은 결국 병의 원인을 간파해내고 스스로 치유할 힘을 회복한다. 그러니까 오해는 금물이다. 정신분석학자는, 환자의 마음에 개입한다든가 환자의 마음에 새로운 외부적 자극을 준다든가 하여 직접적으로 환자의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사람이 아니다. 정신분석학자는 다만 환자가 본래 가지고 있던 치유 능력에 아주 약간의 힘을 더하여 환자가 스스로 자신의 정신 상태를 다시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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