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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Oct 12. 2020

5-07. 벌거벗은 몸도 부끄럽지 않던 시절에

신경증의 원인

무의식의 상당 부분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거세 콤플렉스로 인해 억압된 유년의 기억이다. 그리고 그 외 억압된 기억이다. 정신이 기억을 억압하는 이유는 그 기억이 불쾌한 감정을 일으키기 때문이므로, 결국 무의식은 참을 수 없을 만큼 불쾌한 감정을 일으키는 모든 기억을 담고 있다.


문제는 나쁜 감정을 없애기 위해 불쾌한 기억을 의식에서 지우고 무의식으로 밀어넣어도, 감정은 무의식으로 들어가지 않고 의식에 남는다는 것이다. 분리된 그 감정만 의식을 떠돌다가 어떤 유사한 현재의 사건/기억에 붙어서 정신을 괴롭힌다. 그것이 신경증이다. 초기에 프로이트가 최면요법으로 치료하는 방법이 바로 그 감정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애초에 그 감정을 유발한 원인 사건을 전혀 모른 채 감정만 해소해서는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았다. 환자들은 금방 신경증이 재발하거나 다른 사건으로 인해 신경증이 복합적인 양상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프로이트가 생각한 근본 치료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불쾌한 감정을 일으켜 정신이 스스로 삭제한 바로 그 사건이 무엇인지 환자 스스로 알아차리고 해당 사건을 자연스럽고 건강하게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문진법을 통해 환자의 기억을 끄집어냈는데, 어떤 환자가 프로이트에게 그만 좀 질문하라고, 선생님의 질문 때문에 하려던 말을 자꾸 잊어버린다며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하도록 내버려두라면서 짜증낸 적이 있었다. 그후로 프로이트는 다른 환자에게도 같은 방식을 적용했는데 더 효과적이었다. ‘자유연상법’은 그렇게 우연히 운 좋게 탄생했다.


프로이트는 자유연상법을 통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신경증 환자의 상당수가 유년 시절에 가족이나 친척, 또는 가까운 성인으로부터 성추행이나 그와 비슷한 접촉을 겪은 적이 있었다. 환자들은 대부분 그러한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다가 프로이트와의 상담을 통해 그 기억을 떠올리곤 했다. 프로이트는 어린 시절 성추행이 나중에 신경증을 유발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어린 시절의 모든 성추행이 신경증이 되는 건 아니며, 모든 신경증 환자가 성추행을 겪은 건 아니다. 무엇이 됐건 해당 사건을 정신이 견디지 못하면, 너무 불쾌한 감정을 일으키면, 억압되어 무의식에 갇힌다. 그리고 그 강렬한 감정만 신체를 떠돌다가 외부 세계와 스파크를 일으키면 신경증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상담한 환자들의 절대 다수가 어린 시절 성추행 혹은 유사 경험을 겪었다는 점에서 프로이트는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어릴 때 가족으로부터 성적 접촉을 당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더 이상한 건 이제부터다. 분명히 유아들은 어른들이 하는 성적 제스처의 의미를 모르는데, 어떻게 그 행동으로부터 모종의 감정을 일으킬 수 있을까. 생식 기관이 완전히 성숙하기 전까지, 아이들은 성적인 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성기가 어떤 신체 기관인지조차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유아들은 자신의 벌거벗은 몸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건 성의 의미를 알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러므로 가족의 성추행이 불쾌하게 느껴지려면, 유아가 그 행동의 사회적 의미를 알고 있다는 전제가 먼저 성립돼야 한다. 하지만 유아는 어른이 자신에게 행하려는 그 행동의 의미를 전혀 모른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그것이 사후적인 해석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니까, 성추행이 있을 당시에는 아이에게 무의미한 중립적인 행동이었으므로 불쾌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따라서 아이의 정신은 그 기억을 억압하지 않는다. 아이가 성장한 후 성의 의미를 깨치게 되면서 과거 사건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고, 그때서야 불쾌감이 생겨 해당 기억은 무의식으로 억압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성추행의 경험을 호소하는 환자의 비율은 엄청 났다. 어느 날 한 환자의 사례에서 유년기의 성추행 경험이 실은 거짓이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그 후로도 거짓 성추행을 고백하는 환자들이 발견됐다. 프로이트는 그때부터 자신의 생각을 바꾸었다. 외부세계에서 실재로 성추행이 있었든 없었든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고. 진짜 중요한 건, 성추행이든 아니든 아이가 타인의 행동을 성추행으로 받아들이는지 여부가 중요하다고 말이다. 그리고 적지 않은 환자들이 성추행이 아닌 행동을 성추행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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