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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Oct 28. 2020

5-11. 근친상간이 금기시된 이유

종교의 기원

말년에 프로이트가 관심 가진 주제는 종교였다. 프로이트는 종교 또한 정신의 작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세계에 대한 객관적 이해를 돕는 건 과학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종교에 탐닉했다. 그러므로 종교는 외부 세계에 대한 문제가 아닌 사람들의 내면의 문제라고 볼 수 있지 않겠냐는 거다. 그래서 프로이트에게 종교는 미신의 연장선이자 환상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 생각에는 또 다른 현실적 증거가 있는데, 종교인들의 의례가 신경증 환자의 강박증세와 유사하게 보였던 점이다. 어떤 신경증 환자들에겐 자신만의 생활의 규칙이 있는데, 규칙대로 행하지 않으면 불안을 느끼거나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호소했다. 예를 들어 어떤 내담자는, 자기 전에 베개를 반드시 어떤 위치에 놓아야 하고, 어떤 행동을 몇 번 취해야 하고 특정 물건을 반드시 어떤 곳에 놓아야 하는 등 일련의 의례를 거치지 않으면 잠을 청하지 못했다.


신경증자의 강박 행동이 혼자만의 개인적인 의례라면, 종교인들의 의례는 집단적이며 그 믿음을 모두가 공유한다는 점을 제외하곤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신경증을 개인의 종교, 종교를 집단적 신경증이라 표현했다. 종교가 인류의 신경증이라면, 종교를 발생시킨 원인이 있을 것이다. 개인의 신경증에도 주관적인 경험의 문제가 도사리듯 말이다. 프로이트는 종교의 기원을 탐색했다.


프로이트가 먼저 눈길을 돌린 건 ‘근친상간 금지’였다. 근친상간을 금지하는 건 자연계에서 인간뿐이며, 전 세계 모든 사회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금기이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은 근친상간에 대한 염려는커녕 그에 대한 인지 자체도 없는데 왜 유독 인간만 근친상간을 혐오할까. 프로이트는 자신의 생각을 펼치기 전에 앞서 나온 논의들을 살폈다. 우선 찰스 다윈의 생각부터 알아보자.


법과 도덕이 없던 원시시대에 사람들은 난교를 벌였을 거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하지만 다윈은 아주 오랜 옛날에도 성관계는 엄격하게 금지되었을 거라고 봤다. 그는 질투심을 인간의 기본 감정이라 여겼다. 집단 내 우두머리 남성이 자신의 성적 충동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른 남성들의 성관계를 금지시켰을 거라는 판단이다. 집단 내 여성들과의 성관계가 금지된 남성들은 자연히 타 집단의 여성들에게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러한 행태가 정착되면서 족외혼이 인간 사회의 기본 규율로 자리 잡았다. 그러므로 다윈의 해석에 따르면, ‘근친상간 금지’는 그 어떤 규범·전통·문화보다 가장 먼저 존재한 셈이다.


『황금가지』로 유명한 신화학자 제임스 프레이저는 다른 의견을 주장했는데, 프로이트는 그의 통찰이 탁월하다고 평한 바 있다. 프레이저는 인간의 근친상간 금지가 반자연적이라 생각했다. 인간이 근친상간을 본능적으로 싫어한다면 굳이 사회적 규범으로 막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법으로 금지하는 건 인간이 저지르기 쉬운 범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근친상간을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게 맞으며, 근친상간 금지는 그것을 막기 위해 사후적으로 만들어진 인위적 규범이라는 해석이다.


프로이트는 프레이저의 주장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낌새를 느꼈다.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장 저지르기 쉬운 근친상간은 자식과 부모 사이이다. 어머니를 탐하는 남자아이의 충동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영원히 억압될 수밖에 없는데, 그러한 억압이 외부로 표출되어 사회화된 것이 근친상간 금지가 아닐까, 프로이트는 어렴풋이 생각했다. 때마침 프로이트는 아주 적합한 사례의 내담자를 만나는데 그가 바로 꼬마 한스다.


한스에게는 말 공포증이 있었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극도로 꺼려했으며 집 안에 있어도 언제 말이 쳐들어와 자신을 물지 모른다는 공포에 절어 있었다. 분석 결과 말 공포증은, 말이 죽었으면 하는 한스의 소망에 대한 스스로의 처벌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한스는 어머니를 향한 충동을 무의식적으로 숨기고 있었고, 그에 따라 아버지의 죽음을 소망하는 마음 또한 억압하고 있었다. 말은 아버지의 대체물이었던 것이다.


꼬마 한스의 분석에서 프로이트는 토테미즘의 기원에 대한 힌트를 얻는다. 유아의 정신 속에서 아버지는 쉽게 동물로 대체된다고 말이다. 저 무수한 원시부족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고유한 동물을 내세우며 토템으로 숭배해 온 이유는 바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부족민들이 자신의 토템에게 갖는 감정은 양가적이다. 토템을 경외하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워한다. 그 마음은 (남자)아이가 아버지에게 갖는 마음과 같다. 아이는 아버지를 동일시하고 싶어하면서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안다. 토템은 아버지의 대체물이다.


그러므로 프로이트의 생각 속에서, 토테미즘과 족외혼(=근친상간 금지)은 동전의 양면인 셈이다. 둘 다 인간의 근원적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부터 사회화 과정을 거쳐 탄생한 규범이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집단으로 극복하면서 탄생한 것이 바로 토템과 족외혼이라는 문화적 기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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