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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Nov 02. 2020

6-02. 일출과 일몰을 육안으로 구별 가능할까?

빛의 속도를 구하는 방법 2

브래들리의 시도 이후 100여 년이나 지난 후에야 지상에서 빛의 속도를 측정하는 현실적인 실험을 행한 이가 나타났다. 프랑스 물리학자 아르망 피조. 빛의 속도 측정을 위해 행한 역사상 최초의 본격 실험인 셈이다. 피조의 실험도 기본 원리는 간단하다. 빛이 이동한 거리와 시간을 측정해서 속도를 구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그 방법이 굉장히 초인간적(?)이다.


약 9km 떨어진 거울에 빛을 쏴서 되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을 측정하는 것이다. 이 실험이 원리적으로는 가장 간단하지만 현실적으로 힘든 이유는 그 시간이 너무 짧아서 제대로 측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피조의 초인성(!)이 발휘된다. 그는 광원 바로 앞에 톱니바퀴를 설치했다. 그래서 빛이 발사되면 바로 톱니와 톱니 사이를 통과해서 거울 쪽으로 가, 반사되어 광원 쪽으로 되돌아와 다시 톱니 사이를 통과한다. 발사된 빛이 톱니 바퀴 사이를 두 번 통과하도록 디자인했다.


이때 피조는, 발사될 때 통과한 칸의 바로 다음 칸에, 돌아온 빛이 통과하도록 바퀴를 회전시켰다. 그러니까, 쏘아진 빛이 반사되어 돌아오는 동안 톱니바퀴는 딱 톱니 1칸을 움직인다. 바퀴에 달린 톱니의 수는 720개. 초당 바퀴 회전 수는 12.6회였다. 그러면 톱니 한 칸 움직이는 데 걸리는 시간이 계산된다. 그렇게 도출한 빛의 속도가 초당 31만5천km였다.


10년 뒤 푸코는 톱니 바퀴 대신 거울을 회전시켜 계산의 오차를 줄일 수 있었고, 물 속에서 해당 실험을 진행한 결과 물에서는 공기에서보다 빛의 속도가 느리다는 것 또한 알아냈다. 그 후 몇 차례 더 진행된 광속 측정 실험들은, 기본적으로 피조의 모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단지 장치를 더욱 정밀하게 고안해서 오차를 줄이는 정도였다.


같은 시기에 실험이 아닌 순수하게 수학적인 계산을 통해 전자기파의 속도를 구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전자기학의 아버지 제임스 맥스웰이다. 맥스웰의 전자기파 방정식에서 전자기파의 속도는 상수값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 값은 당대에 과학자들이 실험으로 측정한 빛의 속도와 오차 범위 내에서 일치했다. 자연스럽게 과학자들은 빛이 전자기파의 일종임을 알게 되었다. 빛은 비록 인간적 범위를 초월한 엄청난 속도를 지녔지만, 그 값은 무한이 아닌 유한임을 실험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증명 완료되었다.


빛이 전자기파, 그러니까 파동이라면 매질이 있어야 한다. 빛이 온 우주에 퍼질 수 있다는 건, 빛을 나를 수 있는 매질이 온 우주에 빈틈없이 퍼져 있다는 뜻일 테다. 당시 과학자들은 밝혀지지도 않은 빛의 매질을 일컬어 에테르라 불렀다. 그 에테르를 찾기 위해 도발적인 실험을 행한 두 학자가 있었으니, 알버트 마이컬슨과 에드워드 몰리가 바로 그들이다.


둘은 빛의 속도를 지구의 자전과 같은 방향으로, 반대 방향으로, 수직 방향으로 측정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모든 실험에서 관측된 속도가 똑같았다. 지구의 자전값이 상쇄돼야 정상인데 마치 지구의 자전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빛은 내달렸다. 에테르 발견은 실패였다. 마이컬슨과 몰리의 실험 결과는 맥스웰의 이론과는 일치한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맥스웰의 방정식에서 전자기파(=빛)의 속도는 상수값이다. 그러니까 어떤 물리적 상태에서도 빛의 속도는 항상 같은 값이 나와야 한다. 마이컬슨과 몰리는 본인들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맥스웰의 이론을 실험적으로 증명해준 셈이다.


그렇다면 일출과 일몰을 육안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도플러 효과’라는 명칭은 생소해도 그 현상은 익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앰뷸런스가 멀리서 나에게로 다가오면 점점 경박한 고음으로 들리지만 나를 지나쳐 내게서 멀어지면 어눌한 저음으로 바뀐다. 앰뷸런스의 상대속도가 빨라질 때는 소리의 파장이 짧아져 고음으로 바뀌고, 반대로 상대속도가 느려질 때는 소리의 파장이 길어져 저음으로 변한다.


빛도 마찬가지다. 일출 때의 빛은 지구가 태양 쪽으로 회전하므로 빛의 속도에 자전 속도가 더해져 상대속도가 높아지고 따라서 빛의 파장이 짧아진다. 반대로 일몰 때 지구에 닿는 빛의 파장은 길어진다. 그러므로 일출 때는 청색 편이, 일몰 때는 적색 편이가 일어난다. 그렇다면 정말 일출 때는 해가 더 파랗게 보이고, 일몰 때는 더 빨갛게 보일까?


그렇지 않다. 편이가 일어나는 건 맞지만 그 정도가 매우 미약하기 때문에 인간의 육안으로 분별할 수 있는 수준이 못 된다. 지구의 자전 속도는 광속의 약 650만 분의 1이다. 일출과 일몰 때 태양광은 붉은 색이므로 파장은 대략 600나노미터 내외다. 거기서 일출 때는 650만 분의 1이 짧아지는 거고, 일몰 때는 650만 분의 1이 길어지는 거다. 600나노미터에서 650만 분의 1만큼 짧아지고 길어져봤자 우리 눈에는 똑같이 붉은 색으로 보인다. 차라리 관측자가 위치한 곳의 대기질이 태양빛의 파장 변화에 훨씬 더 큰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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