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이 Nov 03. 2020

6-03. 움직이는 차 안에서 드론을 띄우면?

상대성 원리와 광속도 불변 법칙의 모순

양측 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맥스웰은 자신의 전자기 방정식을 통해 이론적으로, 마이컬슨과 몰리는 에테르 측정 실험을 통해 실험적으로, 빛의 속도는 변하지 않는 상수임을 밝혀냈다. 이를 ‘광속도 불변 법칙’이라 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를 보고 그저, 빛의 속도는 유한하고 변하지 않는 거구나, 하고 받아들이며 안도하고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왜냐하면 물리학에서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한 가지 법칙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갈릴레오 갈리레이의 ‘상대성 원리’이다.


이 챕터의 본격적인 주제는 ‘상대성 이론’이며 이것은 ‘상대성 원리’와는 다르므로 헷갈리지 않길 바란다. 물론 상대성 이론의 한 축은 상대성 원리에 기반하므로 전혀 상관없는 것은 아니다. 갈릴레이가 상대성 원리를 생각해낸 배경은 자신의 지동설에 대한 천동설자들의 반박에 대한 재반박에 있다. 당시 천동설자들의 반박은 이렇다. 정말로 지구가 그렇게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면 반대로 공기의 저항에 의해 매순간 태풍과 같은 바람이 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이다.


그에 대한 갈릴레이의 재반박은 이렇다. 만약 배의 지하 선실에 타고 있다고 가정하자. 출발 전 배는 고요하다. 그러다 배가 출발하면 배의 진행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모든 사물과 사람들이 기우뚱할 것이다. 하지만 배가 목표 속도에 도달하면 다시 지하 선실은 고요해질 것이다. 그때 선실 안에 있는 사람은 배가 움직이는지 정지해 있는지 분간할 수 없다. 그렇지만 배는 분명히 움직이고 있다.


갈릴레이의 예시가 너무 올드하다면, 현대적으로 바꿔서 이해해 보자. 시속 800km로 비행 중인 항공기 내에서 물건을 떨어뜨리면 물건은 떨어지면서 비행기 뒤쪽으로 밀려갈까? 그렇지 않다. 의심스럽다면 직접 해보시라. 차 안에서든 기차 안에서든 운행 중이든 정지 중이든 물건은 정확히 수직으로 떨어진다.


상대성 원리란, 등속도 운동을 하는 폐쇄계는 역학적으로 동일하다는 법칙이다. 쉽게 말해 정지해 있든 등속도로 움직이고 있든 물리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그 말은 다시, 정지 상태와 등속도 운동 상태에서의 물리 법칙은 완전히 똑같이 작용한다는 의미이다. 물리적으로 차이가 있는 건 가속도 운동을 할 때뿐이다. 그러므로 지구가 공전하든 가만히 있든 지구 내부에서의 물리적 상태에는 차이가 없다. 이것이 갈릴레이가 천동설자들에게 전한 답변이었다.


상대속도라는 개념도 여기서 나왔다. 시속 30km로 가는 관측자가 시속 60km로 오는 대상을 보나, 정지한 관측자가 시속 90km로 오는 대상을 보나 물리의 관점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러므로 정지한 관측자가 빛을 볼 때와 지구 자전 속도로 이동 중인 관측자가 빛을 볼 때, 분명히 속도에 차이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맥스웰의 이론과 마이컬슨-몰리의 실험은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광속도 불변 법칙은 상대성 원리에 위배된다. 둘은 모순 관계이다. 둘 중 하나는 틀렸다는 뜻이므로 아인슈타인은 둘 중 하나는 버려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무엇을 택하고 무엇을 버렸을까?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아인슈타인은 뉴턴은 믿지 않아도 갈릴레이는 무조건적으로 신뢰했다. 아인슈타인에게 갈릴레이의 상대성 원리는 만고불변의 법칙 같은 것이었다. 그는 상대성 원리를 물리학의 근본 뼈대처럼 여겼다. 만약 상대성 원리가 틀렸다면 전 세계적으로 점프 금지령이 내려졌을지 모른다. 점프했다간 우리 몸이 공중에 떠 있는 동안 지구 자전으로 인해 서쪽에서 동쪽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건물 벽면에 초강력 스매싱을 맞고 납작포가 되어 사망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점프해 보시라. 우리는 공중에 떠 있는 짧은 순간에도 돌아가는 지구를 따라 움직이고 제자리에 떨어진다.


그렇다면 깜짝 퀴즈 하나. 만약 소형 드론을 가지고 기차에 탔다고 가정하자. 출발 전 기차 안에서 드론을 공중으로 띄웠다. 드론은 제자리에 떠 있다. 기차가 천천히 움직이며 출발한다. 기차가 제 속력에 도달하는 동안 드론은 진행 방향 반대로 움직일까? 기차가 제 속력에 도달한 이후에 드론은 계속 뒤로 밀려날까?


첫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다. 정지한 기차가 제 속력을 내기까지는 가속도 운동을 한다. 그러므로 기차는 앞으로 힘을 받는 반면 드론은 힘을 받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드론은 뒤로 밀려난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다’이다. 제 속력에 도달한 기차는 등속도 운동을 한다. 따라서 기차도 드론도 힘을 받지 않기 때문에 둘의 상대적인 위치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아인슈타인 고민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아인슈타인은 광속도 불변 법칙을 버렸을까? 맥스웰 또한 아인슈타인이 숭배하는 선배 학자였다. 그리고 마이컬슨-몰리의 실험 결과는 너무나 자명해 보였고 이후 학자들에게 그들의 실험은 하나의 큰 이정표 같은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는 광속도 불변 법칙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인슈타인이 버린 것은 뉴턴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6-02. 일출과 일몰을 육안으로 구별 가능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