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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Nov 17. 2020

7-01. 에너지가 입자라고?

막스 플랑크, 양자역학의 문을 처음 연 자

근세 이후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에 불을 지핀 건 확실히 과학이었다. 왜냐하면 근대과학은 인간의 오감을 배신하면서 탄생했고, 과학의 발전 또한 오감에 대한 끝없는 배반으로 점철돼 왔기 때문이다. 근대과학의 시작은 지동설이다. 하늘이 도는 게 아니라 땅(=지구)이 돈다는 발상.


사람들은 이제 학교나 책에서 배워 지구가 돈다는 걸 알지만, 한 번 솔직해져 보자. 지구가 돈다는 게 느껴지는가? 감각을 통해 지구가 돈다는 걸 알 수 있나? 평소에 지구가 뱅글뱅글 돌아서 혹시 두통을 호소하시는 분이 계신지?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의 감각은 여전히 태양이 돌고 별자리가 도는 것으로 느껴진다.


수도꼭지를 틀어보자. 수돗물이 콸콸 흘러나온다. 우리의 감각은 물이 연속체라고 알려준다. 하지만 과학은 물이 아주 작은 구슬의 합이라고 가르친다. 뭐가 옳은가? 무엇을 믿겠는가? 공기는 어떤가? 아니 애초에 공기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나?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맛도 안 나며 만질 수도 없다. 공기의 존재는 철저히 이성적으로 배워서 아는 것이지 오감으로 느껴서 아는 게 아니다. 게다가 그 공기 또한 연속체가 아니라 물처럼 구슬의 산발적인 합이라고 과학은 알려준다.


지동설 이후 지금까지의 과학은 모조리 인간의 감각이 틀렸다고 말한다. 우리가 느낀 것과는 정반대되는 진실을 알린다. 이제 우리는 감각보다 이성을 믿는다. 그럴수록 점점 그래야 한다는 당위가 굳어진다. 그나마 우리가 감각을 제쳐두고 논리와 이성을 믿은 이유는, 현실 감각으로는 느껴지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이미지는 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구가 돈다는 것, 물이 아주 작은 구슬이라는 것, 지구는 공기에 둘러쌓여 있다는 것, 인간의 몸은 아주 작은 세포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모두 볼 순 없지만 명확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떠올릴 수는 있다.


그런데 이제 인간의 상상력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알리는 이론이 100년 동안 물리학자들 앞에 버티고 있다. 양자역학이다. 우리가 양자역학을 여전히 현실의 레벨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감각에 반하기 때문뿐만 아니라, 도저히 그 세계관을 머릿속으로 그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의 이론물리학자들은 반쯤 포기하고 그냥 수학적인 계산에만 몰두하기로 한 듯하다.


의도치 않게 양자역학의 신호탄을 처음으로 쏘아올린 사람은 막스 플랑크다. 그의 이론을 토대로 후배과학자들은 에너지 또한 물질처럼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음을 직감하게 됐다. 물론 플랑크 본인은 그런 식으로 생각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자신의 이론을 불경하게 여겼다. 왜냐하면 그 이론은 뉴턴의 세계관을 반하는 것이었는데, 본인은 완벽한 뉴턴 신봉자였기 때문이다. 그의 이론을 살펴보자.


19세기 유럽은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 중인 때였다. 각 공장에서는 금속을 녹이기 위해 상당한 고온의 불을 피워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불이 몇 천 도나 되는 고온이라 온도계로 온도를 잴 수 없었다. 잘못해서 해당 금속의 녹는점보다 낮은 불을 피웠다간 낭패다. 그래서 용광로 내부의 온도를 알아내는 게 당시 과학자들의 연구 과제였다.


절대온도가 0도가 아닌 모든 물체는 복사열을 낸다. 자연에는 절대온도 0도인 경우가 존재할 수 없으므로 사실상 우주에 있는 모든 물체는 다 복사열을 낸다고 보면 된다. 한 가지 파장의 복사열만 내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넓은 파장의 복사열을 내며 파장별로 내는 복사열의 세기는 조금씩 다르다. 물체의 온도가 높을수록 더 짧은 파장의 복사열을 더 많이 낸다. 막스 플랑크 이전 세대에 이미 복사열에 관한 두 개의 방정식이 존재했고 학자들은 두 개의 방정식을 적당히 섞어서 복사열의 파장과 세기를 예측할 수 있었다. 그것을 역으로 추론하면 대상의 온도를 알 수 있다.


그런데 플랑크는 전혀 다른 두 개의 방정식을 임의로 섞어 쓰는 것이 이론적으로 불완전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방정식을 하나로 만드는 연구에 착수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으나 거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에너지값을 특정한 상수로 가정해야 식이 성립하는 것이었다.


뉴턴의 고전역학대로라면 에너지값을 0으로 수렴시켜 연속적인 값을 가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게 옳을 텐데, 그렇게 계산하면 플랑크의 식이 성립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플랑크는 에너지값을 특정 상수값으로 맞춰서 식을 발표했다. 그는 평생 자신의 방정식에 회의를 품었으며 그 전제를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후대 학자들은 그 상수값을 플랑크 상수라 부르며 에너지의 최소 단위로 이해하고 있다. 물질뿐 아니라 에너지 또한 입자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이제는 과학의 상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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