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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Nov 18. 2020

7-02. 빛도 입자라고?

빛의 이중성

플랑크 상수의 의미를 당시 사람들은 관심 두지 않았거나 몰랐으며, 플랑크 본인도 의아해했으니, 플랑크 공식 자체가 양자역학의 탄생에 직접적으로 기여한 건 아니다. 만약 이후에 특별한 과학적 발견이나 이론이 나오지 않았다면, 그냥 해프닝으로 묻힐 일이었다. 다만 현시점에서 돌이켜봤을 때 양자역학과 관련된 가장 최초의 발견이 플랑크 상수라는 것.


양자역학의 탄생에 직접적으로 기여한 것은 빛의 정체에 대한 논쟁이었다. 기원전 400년 전후에 데모크리토스는 물질이 원자로 이루어졌듯 빛 또한 원자라고 여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엠페도클레스의 이론을 계승한) 4원소설에 입각해 빛은 불의 원소가 뿜어내는 진동이라고 주장했다. 이 논쟁은 어차피 관념적인 논쟁이었기에 뚜렷한 검증을 거치지 못한 채 중세를 맞이하고, 추가적인 의견은 오랫동안 나오지 않은 채 멈췄다.


11세기에 아랍의 학자 이븐 알하이삼이 자신의 저서에서 빛의 여타 특성들, 가령 굴절 반사 등을 설명하며 빛이 입자임을 밝혔다. 허나 17세기에 데카르트는 당시 유명한 파동 법칙인 스넬 법칙을 빛에 적용하여, 빛의 굴절을 수학적으로 증명함으로써 빛의 파동성을 방증했다.


이후 다시 고전물리학의 아버지 뉴턴에 의해 빛은 입자라고 주장되었다, 흥미로운 건 뉴턴에겐 빛을 입자라고 주장할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는 점이다. 사실 당시 모든 정황은 빛을 파동이라고 생각하게끔 만들었음에도 뉴턴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뉴턴과 동시대 과학자인 하위헌스는 한사코 빛이 파동이라고 반박했다. 굴절 반사 회절 등의 성질은 입자가 아닌 파동의 성질임이 명백했기 때문이다. 역시 같은 시대의 과학자 로버트 훅 또한 하위헌스와 똑같이 빛이 파동이라고 역설했다. 만약 빛이 입자라면 빛끼리 부딪혔을 때 빛 알갱이들이 사방팔방 튀어야 하는데 전혀 그런 현상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물줄기와 물줄기를 부딪히면 물방울들이 여기저기 튀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계의 무게중심은 빛의 입자설 쪽으로 심각하게 기울었다. 역시 근거는 없었다, 다만 과학계의 거물인 뉴턴이 빛은 입자라는데 거기다 대고 더 뭐라 반박했겠는가.


전혀 비과학적으로 중단된 이 과학의 논쟁은 100여 년 뒤 뒤집힌다. 토마스 영이 빛을 이용해 이중슬릿 실험을 했던 것이다. 실험은 간단하다. 가시광선이 통과하지 못하는 네모 판에 커터칼로 두 개의 실금(=슬릿)을 11자로 긋고 세워 놓는다. 그 판 너머에 스크린을 설치한다. 조명을 다 끄고 랜턴만 켜서 그 불빛이 네모 판의 두 실금을 통과하게 한다.


빛이 입자라면 두 실금을 통과한 빛은 스크린에 두 개의 빗금으로 (슬릿과 같이 11자 형태로) 나타나야 한다. 하지만 실험결과는 전혀 달랐다. 111111111과 같은 모양으로 여러 개의 빗금이 스크린에 반복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빛이 파동이라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파동의 간섭 현상으로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쪽의 슬릿을 통과한 두 파동으로서의 빛이 서로에게 간섭을 일으킨 것이다.


두 파동이 만날 경우 크게 두 가지 간섭을 일으키는데, 하나는 같은 마루나 골이 겹칠 경우 진폭이 더 커지는 보강간섭이고, 다른 하나는 마루와 골이 겹쳐 두 파동이 사라지는 상쇄간섭이다. 그러니까 보강간섭을 일으킨 곳은 세로로 선명한 빛의 빗금을 만들고, 상쇄간섭을 일으킨 곳은 빛의 파동이 사라져 스크린에 어둠만을 남긴다. 빛이 입자라면 결코 설명할 수 없다.


이것으로 빛에 대한 논쟁이 끝날 줄 알았는데. 다시 100여 년이 흐른 후 또 다른 학자에 의해 논쟁은 다시 뒤집힌다. 아인슈타인이었다. 당시에는 헤르츠의 광전효과라는 실험이 알려져 있었다. 헤르츠는 전자기파를 이용한 다양한 실험을 통해 맥스웰의 전자기방정식을 입증한 학자였다. 그런데 그의 광전효과 실험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의문의 실험이었다. 실험내용은 다음과 같다. 특정 진동수 이상의 전자기파를 금속에 쬐면 금속에서 전자가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실험을 확장하여 낮은 진동수의 전자기파를 금속에 오랜 시간 쬐어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오래 쬐어도 금속에서는 전자가 발사되지 않았다. 만약 기존 연구대로 빛이 파동이라면, 낮은 진동수의 전자기파를 오래 쬐면 높은 진동수의 전자기파를 짧게 쬐는 것과 똑같은 에너지가 금속에 축적되어야 한다(에너지=진동수×시간).


아인슈타인은 막스 플랑크에게서 영감을 얻어 빛의 에너지에 플랑크 상수를 도입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쉽게 말해, 빛이 한알 두알 셀 수 있는 알갱이라면 광전효과 실험을 수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다(이것이 플랑크 상수가 물리학계에 출현한 두 번째 사건이다). 현실의 언어로 비유하자면 이렇다. 진동수가 낮은 전자기파를 계란에 비유한다면, 진동수가 높은 전자기파는 바위에 비유할 수 있겠다. 계란 백만 개를 연달아 던져도 철문은 부서지지 않겠지만, 바위는 하나만 던져도 철문이 뭉개질 수 있다. 에너지가 센 빛의 입자는 금속으로부터 전자를 탈출시키지만, 에너지가 약한 빛의 입자는 그럴 수 없다. 이로써 다시 빛은 입자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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