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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Nov 23. 2020

7-04. 물질은 파동이다

전자의 이중성

빛은 입자로서의 성질과 파동으로서의 성질을 동시에 가졌다는 것으로 잠정 결론 내려졌다. 쉽게 말해 빛은 입자면서 파동이라는 말이다. 과학자들은 저 모순을 해결하거나 봉합할 언어적 설명을 개발하지 못했다. 아니다. 정확히는 20세기의 물리학자들은 빛의 이중성을 현실의 언어로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과학자들이 과학 연구에 채택한 언어는 수학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수식으로만 맞아 떨어지면 그만이다. 수식 증명이 끝나면,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지가 다음 과제다. 빛의 이중성이 밝혀진 후 상당히 독특한 발상을 한 학자가 있었으니 루이 드 브로이다. 그는 빛뿐만 아니라 자연의 다른 물질들도 빛처럼 이중성을 가진 건 아닐까 하는, 당시로서는 미친 발상을 했다. 그가 가장 먼저 의심한 것은 전자였다.


그의 생각을 실험으로 옮긴 자는 클린턴 데이비슨과 레스터 저머였다. 그들의 실험은 토마스 영의 이중슬릿 실험과 똑같은 구상이었다. 차이점은, 빛 대신 전자를 쏘는 것이었다. 첫 번째 실험은 전자를 한 알 쏘는 것이었다. 이중슬릿을 지나 스크린에 한 알의 전자가 점으로 박혔다. 그게 끝이었다. 이 실험에서는 전자의 특별함을 알 수 없었다.


두 번째 실험은 전자 몇 만 알을 한 번에 쏘는 것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빛의 이중슬릿 실험과 결과가 똑같았다. 전자는 간섭무늬와 흡사하게 l l l l l과 같은 모양에 수렴하게끔 스크린에 박혔다. 기존 통념대로 전자가 입자라면 전자를 아무리 많이 쏴도 이중슬릿을 지나 스크린에 두 줄로 꽂혀야 이치에 맞다. 그런데 간섭무늬에 가깝게 여러 줄에 꽂힌다는 건(빛처럼 완벽하게 간섭무늬 줄에만 전자가 꽂히진 않았다. 전체적으로 산발적으로 꽂혔지만 특정선에 반복적으로 더 많은 전자가 도달했다) 전자끼리 간섭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입자끼리는 간섭 현상을 일으키지 않는다. 간섭을 일으키는 건 파동뿐이다. 그러므로 이 실험만으로 이미 전자는 간섭을 일으키는 파동의 성질을 가졌다는 걸 알 수 있다.


허나 그게 끝이 아니다. 세 번째 실험은 놀라움 그 자체다. 이 실험에서는 전자를 시간 간격을 두고 한 알씩 발사했다. 그리고 그것을 십만 번 넘게 반복했다. 몇 천 번째 발사가 진행될 때에는 특별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전자는 그냥 산발적이고 무작위적으로 스크린의 여기저기에 꽂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몇 만 번의 횟수를 넘기자 특이점이 보이는 듯했다. 두 번째 실험처럼 전자가 간섭무늬로 수렴하듯 특정 지점들에 훨씬 더 많이 박혔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간섭무늬는 선명해졌다.


이쯤 되면 상식적인 이해의 선을 넘어선다. 분명히 전자를 한 알씩 쐈는데, 그 한 알의 전자는 대체 다른 무엇과 간섭을 일으켰다는 말인가. 전자는 자기 스스로 간섭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므로 전자 한 알 그 자체가 파동인 셈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이 불가능한 실험 결과였다.


아직 끝이 아니다. 네 번째 실험이 남았다. 이번에는 양쪽 슬릿 출구에 카메라를 설치해 실험 진행 과정을 촬영했다. 3번째 실험과 동일하게 전자는 1알씩 시간을 두고 반복적으로 쐈다. 결과는 전혀 달랐다. 스크린에는 각 슬릿에 대응하도록 딱 두 줄의 선만 생겼다. l   l 이렇게 말이다(물론 정확히 저 두 세로줄 위에만 전자가 박힌 게 아니라 대략적으로 스크린에 박힌 전자의 모양이 저 두 선에 수렴했다).


3번째 실험과 4번째 실험의 차이는 카메라 촬영 유무다. 전자는 카메라의 감시를 받지 않으면 스스로 간섭효과를 일으켜 스크린에 간섭무늬를 나타내지만, 카메라의 감시를 받으면 우리가 아는 입자처럼 전자는 얌전히 고분고분 활동한다. 쉽게 말해, 아무런 외부의 간섭이 없으면 전자는 파동처럼 움직이고 카메라로 보면 입자처럼 움직인다.


결국 드 브로이의 상상대로 전자도 빛처럼 입자면서 동시에 파동으로서의 성질을 가진다는 게 밝혀졌다. 문제는,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인 게 대체 뭔지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거다. 그리고 왜 어떤 때는 입자가 되고 어떤 때는 파동이 되는지 그 원인과 매커니즘을 과학자들은 모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적어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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