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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Nov 25. 2020

7-06. 아인슈타인도 어쩔 수 없는 꼰대였다

제6차 솔베이 회의

고양이 사고실험을 들은 보어는 슈뢰딩거의 불만을 간단하게 일축했다. 고양이가 상자 안을 관찰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상자 문을 열기 전에 이미 전자는 입자로 나타나 있을 거라고 그는 답했다. ‘관찰’에 대한 깊은 고민과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이라 보어의 답변은 해프닝처럼 넘어갔고, 한동안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대한 과학적인 답변은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보어의 말은 ‘관찰’을 표면적으로 이해한 답변이었던 듯하다. 그러니까 보어의 답변은, 표면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보어는 자신의 답변이 가진 심층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눈치채지 못했던 것 같다. 인간의 관찰과 고양이의 관찰이 물리적으로 차이점이 있는가 하는 질문은 굉장히 중요하다. 아마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차이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관찰의 주체가 고양이만 있는 건 아니다. 전자의 이중슬릿 실험에서 카메라를 설치한 경우 전자는 파동이 아닌 입자로서 운동했다. 고양이 실험에서는 상자 속 입자탐지기가 카메라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관찰의 주체는 고양이뿐 아니라 탐지기도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의 과학자들은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이 전혀 모순되지 않음을 알고 있다. 거시세계에 있는 모든 물체는 무조건 외부세계와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우주에 있는 모든 물체는 복사열을 낸다. 상자 속 고양이도 입자탐지기도 독약도 복사에너지를 방출한다. 방출된 복사열의 일부는 상자에 흡수되고 다시 상자에 흡수된 복사에너지의 일부는 상자 외부로 방출된다. 그리고 고양이와 입자탐지기와 독약과 상자와 상자 밖의 모든 물체들은 서로 중력을 주고받는다. 전자기력 관해서든 중력에 관해서든 거시세계의 모든 물체는 항상 역학적으로 힘과 에너지를 서로 주고받는다. 그러므로 고양이가 파동함수로 중첩될 수 있는 경우가 단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다. 고양이는 반드시 결정적인 입자의 형태로만 존재한다.


당시 슈뢰딩거가 그와 같은 사고실험을 진지하게 제시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사고실험에 현기증을 느끼며 당대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난감해했던 것도, 그때만 해도 ‘관찰’의 물리적인 의미를 제대로 정립/음미하지 못했던 탓이다.


아인슈타인은 슈뢰딩거보다 더 집요했다. 그는 솔베이회의 내내 보어를 괴롭혔다. 아인슈타인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인간의 부족함 탓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은 전혀 불확정적이지 않음에도 자연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기술적/해석적 무능 탓에 자연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거라고 여겼다. 아인슈타인은 미시세계에서 대상의 2가지 속성을 동시에 측정할 수 있는 사고실험을 끊임없이 보어에게 제시했다. 그때마다 보어는 머리를 싸매면서도 결국엔 아인슈타인의 사고실험에서도 대상의 2가지 속성을 동시에 측정할 수 없음을 논리적으로 증명했다.


그 중 하나만 소개하겠다. 광자로 가득 채운 밀봉한 상자에 광자가 겨우 나올 수 있는 아주 미세한 구멍을 뚫고 저울 위에 올려놓는다. 상자 위에는 시계를 올려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구멍으로 광자가 새어 나올 것이므로 시간이 지날수록 저울의 무게는 감소할 것이다.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 무게를 재고 그 시간을 측정하면, 일정 시간 동안 상자 밖으로 나간 광자의 양을 측정할 수 있다. 이 방법으로 시간 변수와 에너지 변수를 동시에 알 수 있다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생각이었다.


보어는 아인슈타인의 다른 사고실험과는 달리 이번엔 상당히 고전했지만 다행히 슬기롭게 난관을 극복했다. 우선 위의 사고실험은 아인슈타인 스스로 연구한 상대성이론에 위배된다. 상자도 시계도 모두 이미 지구의 중력장 안에 존재하는데 그 위치에 따라 지구로부터 받는 중력의 크기가 미세하게 다르다. 그러므로 시계가 표시하는 시간의 흐름과 상자 안에서의 시간은 미묘하게 달라진다. 또한 광자가 상자 밖으로 배출됨에 따라 질량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 저울의 탄성으로 인해 상자가 아주 작게 진동하게 된다. 그러므로 질량에 오차가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시간의 경과도 질량의 변화도 둘 다 정확하게 측정하지 못하게 되므로, 이는 불확정성 원리에 부합한다.


보어에 의해 몇 번이나 반박된 자신의 사고실험에도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물리학 이론이 우주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둘 중 하나였다. 이론 자체가 틀렸거나 이론을 보완하기 위한 추가적인 요인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그는 양자역학이 본질적인 무언가를 결여하고 있는 게 아닌지 염려했다. 그 걱정 덕분(?)에 아인슈타인은 8년 뒤 아주 심각한 반격을 들고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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