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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Nov 26. 2020

7-07. 빛보다 빠른 것

아인슈타인의 EPR 역설

아인슈타인의 결정적 질문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약간 변형된 실험을 소개하겠다.


추가적인 에너지를 받은 들뜬 상태의 원자는 다시 본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에너지를 방출하는데, 방출되는 에너지는 광자의 형태로 발사된다. 에너지를 연달아 두 번 방출할 때는 2알의 광자가 발사된다. 이때 두 광자는 반드시 동일한 편광을 나타낸다.


들뜬 원자를 장치에 연결하여 2개의 광자를 각각 반대편 방향으로 보낸다고 가정하자. 한 쪽에는 관찰자A가, 반대 쪽에는 관찰자B가 각자 편광 장치와 함께 대기 중이다. 이때 장치로부터의 거리는 관찰자B가 A보다 더 멀다. 그러므로 관찰자A에게 광자가 먼저 도착한다. 관찰자에게 도달하기 전까지 광자는 관찰당하지 않으므로 파동함수의 형태로 존재한다. 전자기파(=광자)의 편광 방향을 알 수 없다는 말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는 측정하지 않았으니 모른다는 무지의 차원이 아니다. 측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편광 방향이라는 속성 자체가 해당 전자기파에는 없다는 말이다. 관찰자A에게 먼저 도달하므로, A가 편광 방향을 측정하는 순간 전자기파에게는 해당 속성이 부여(창조)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 순간에 발생한다. 반대편 관찰자B에게 간 전자기파 또한 편광 방향이 부여되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 B가 아닌 A가 반대 쪽에서 먼저 전자기파의 편광 방향을 측정하는 순간 B에게 가고 있는 전자기파에게도 동일한 방향의 편광 방향이 결정되어 버린다.


이때 아인슈타인이 문제시했던 포인트는 바로 이 점이다. 아직 관찰자B에게 도달하지 않은 전자기파는 관찰자B를 비롯한 그 누구에게도 관찰당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저절로(?) 편광 방향이 정해진다는 점이다. 그는, 관찰되지 않아도 미시세계의 대상은 자체의 속성을 이미 지닌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코펜하겐 해석의 두 번째 특성에 대한 반박이었다.


코펜하겐 해석의 의미를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자. 그들이 말하는 것은, 미시세계의 대상을 관찰하는 순간에, 파동이었던 대상이 입자로 짠!하고 나타난다는 게 아니다. 애초에 대상이 가지지 않던 모든 물리적 속성이 관찰의 순간에 한꺼번에 창조된다는 게 코펜하겐 학파의 입장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우주의 실재성을 부정한 셈이다.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을 신뢰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그 점이었다. 아인슈타인이 생각하기에 물리학이란, 우주의 질서와 속성을 인간과 무관하게, 있는 그대로의 설명과 예측을 제공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양자역학은 인간이 관찰하지 않으면 우주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인간과 무관한 객관적인 이론으로 되돌리고 싶었다. 그러니까 사람이 관찰하든 관찰하지 않든 상관없이 우주는 그 자체의 존재와 속성을 명확히 가지고 있는 구체적일 실체로서 부활시키고자 한 게 아인슈타인의 의도였다. 아인슈타인의 그러한 문제제기를 이후의 학자들은 EPR 역설이라 부른다.


오랜 시간이 지나 그들의 사후에 정밀한 실험 결과 관찰자A에게 광자가 관측되자마자 B에게로 간 광자의 성질 또한 즉시 결정되는 것처럼 나타났다. 하지만 이 실험 결과가 우주의 실재성을 보증하는 근거로 오해하면 안 된다. 현대의 물리학자들은 여전히 양자역학을 믿는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관찰자A와 B에게 동시에 발사된 두 광자에겐 아무런 성질이 없다. 관찰자A가 먼저 자신 쪽으로 온 광자를 측정한 결과 그 광자를 비롯해 반대편으로 간 광자에게도 동시에 해당 속성이 부여된다. 두 광자의 거리는 상관없다. 두 광자가 은하 저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한 쪽의 광자를 측정하는 것만으로도 몇 만 광년이 떨어진 상대 쪽 광자의 속성도 동시에 창조된다. 그러니까, 정보의 이동속도는 빛의 속도보다 빠르며, 아마도 그 속도는 무한일 것으로 짐작된다. 실험 결과는 최소 광속의 1만 배 이상이라고 나왔으니 말이다.


이것을 물리학자들은 ‘얽힘’이라는 개념으로 지칭한다. 두 개의 광자는 특정한 사건으로 인해 서로의 속성이 연결된 것이다. 거시세계에서는 모든 대상이 정확한 물리적 성질을 띤 입자의 형태로만 존재하는데, 그 이유가 ‘얽힘’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물질의 구성 요소들은 서로가 서로를 연결하여 상대에게 물리적 속성을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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