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에 대한 그들 각자의 해석
대충 눈치챘겠지만 양자역학에 대한 해석은 코펜하겐 해석만 있는 게 아니다. 코펜하겐 해석이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는 것도 아니며 그 외에도 수십 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그 중 유명하고 흥미로운 해석 몇 가지를 소개하겠다.
데이비드 봄은 초창기에 전자의 파동성을 거부했다. 전자가 파동으로서 공간 전체에 안개처럼 퍼져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는 전자 자체가 파동이 아니라, 전자가 파일럿파를 발사하여 그 파동을 따라서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자의 입자성은 지켜지고 입자이자 파동이라는 이중성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자 자체가 파동으로서 존재하고 움직인다는 해석과 전자가 파동을 발사해 그 파동을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비교하는 것은 현실 세계에서는 무의미하다. 전자가 파일럿파를 발사하는지는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애초에 파일럿파의 정체가 무엇인가? 왜 전자는 파일럿파를 따라 운동하는가? 파일럿파의 가정은 오히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혼란만 가중시킨다.
많은 학자들의 타박에도 불구하고 코펜하겐 해석에 대한 봄의 의구심은 사그라들지 않았나보다. 그는 여전히 인간이 관찰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존재하는 우주의 본질을 옹호했다. 단, 인간은 그 우주의 본질을 지각하지 못한다는 거다. 인간이 지각하는 우주에 대한 이미지란, 코펜하겐 해석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주의 구성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간섭무늬로서의 환영일 뿐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허나 우주의 근본 요소들은 간섭무늬 이면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게 이 주장의 핵심이다. 이를 사람들은 ‘홀로그램 우주론’이라 부른다.
홀로그램 우주론과 비슷하지만 의도는 정반대인 극단적 코펜하겐 해석도 있다. 이들은 아예 우주에 존재하는 것은 파동으로서의 환영뿐이라고 말한다. 사실 입자라는 건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우주의 본체 같은 것도 인간의 감각기관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라는 거다. 미시세계의 대상이 인간의 관찰에 의해 창조되는 거라면 거시세계 또한 동일해야 한다는 논리다. 미시세계만 그렇다면 반칙이긴 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쪽은 ‘다세계 해석’이다. 평행우주론과 흡사한데 약간 결이 다르다. 이들의 주장은 파동함수가 붕괴할 때마다(=파동으로 존재하던 미시세계의 대상이 관찰에 의해 특정 위치에 입자로 형성될 때마다) 각각의 우주로 쪼개진다는 거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앞선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다시 소환하겠다. 상자의 문을 열지 않으면 살아있는 고양이와 죽은 고양이의 상태가 파동함수의 형태로 중첩되어 있다. 문을 여는 순간 고양이는 살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의 상태로 확정된다.
이때 우주는, 고양이가 산 우주와 죽은 우주, 둘로 나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실은 고양이뿐만 아니라 상자를 열기 전의 사람 또한 산 고양이를 반기는 사람과 죽은 고양이를 슬퍼하는 사람이 파동함수의 형태로 중첩되어 있다가, 문을 여는 순간 두 개의 우주로 각각 분리되는 셈이다. 이때 두 우주는 서로의 존재를 전혀 모르며 소통할 수 없다.
이 해석이 편한 건, 왜 하필 내가 죽은 고양이를 발견한 거냐고 그 원인을 따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살아있는 고양이를 발견한 나는 다른 평행우주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왜 전자가 저쪽 상자가 아니라 이쪽 상자에 존재하냐고 물을 필요도 없다. 저쪽 상자에 전자가 존재하는 우주는 내가 모르는 전혀 다른 곳에 존재한다. 그들을 걱정하거나 궁금해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 해석의 문제는, 그래서 현재 우주가 몇 개냐는 질문에 침묵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앞으로 늘 파동이 관찰에 의해 입자로 응축될 때마다 우주가 분할될 테니 말이다. 그런 경우는 지금까지 셀 수 없이 있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대체 그 많은 우주가 어떻게 관찰 한 번으로 쪼개져 탄생할 수 있단 말인가. 수많은 평행우주를 어떻게 증명한단 말인가.
가장 추상적인 관점은 ‘이타카 해석’이다. 이들은 대상이 물리적으로 실존하는 게 아니라 대상 사이의 상관관계가 물리적으로 실존한다고 주장한다. 전자가 파동으로 나타나든 입자로 존재하든 그 자체는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는 거다. 전자가 외부세계와 어떠한 관계를 맺을 때 어떤 속성을 띠게 되는지 그 정보값만이 우주의 본질적 실체라는 거다.
생각해 보면 그럴 듯하긴 하다. 만약 우주에 물체가 단 하나만 존재한다면 그 물체는 중력을 띨까. 중력이 질량을 가진 물체와 물체 사이의 힘이라면, 하나뿐인 물체는 중력을 발휘할까. 이타카 해석대로라면, 질량을 가진 물체 자체는 실체가 아니라는 거다. 물체와 물체 사이에 나타나는 중력만 실재하며 그 중력에 의해서 두 물체가 인간의 감각에 지각된다. 두 물체는 중력이라는 본체에 의해 발휘되는 표면적인 이미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