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1. 과학을 믿어도 괜찮을까?
과학의 한계
과학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인 대답은 다음과 같다. 자연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다. 보편적 법칙을 도출한다. 그 법칙을 해당 대상에 적용하여 누구든 언제든 답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수학의 언어를 쓰며 수학적 방법론을 토대로 한다. 관찰 또는 실험으로 데이터를 얻는다.
하지만 위와 같은 특징만으로 과학인 것과 과학 아닌 것을 정확히 가려내기는 어렵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점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생명과학과 심리학의 경계가 애매해진다. 보편적 법칙을 목표로 하지만 대부분의 과학 분야는 여전히 보편 법칙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부분 정설이 아닌 가설만이 난무한다. 관찰도 실험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블랙홀을 관찰할 수 있는가? 블랙홀로 실험할 수 있는가? 암흑물질을 관찰할 수 있는가?(암흑물질은 관찰한 것 자체만으로 성공이다. 아무도 암흑물질을 관찰한 적 없으며 그게 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암흑물질에 관한 연구는 누가 뭐래도 이론물리학의 영역이다.)
사실 거의 100년 전쯤 철학자들은 과학의 심각한 결함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과학 연구가 귀납적 추론에 무조건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이다. 먼저, 추론의 종류부터 짚고 넘어가자. 논리적 추론에는 크게 3가지 종류가 있다. 연역 추론, 귀납 추론, 오류 추론. 오류 추론은 말 그대로 틀릴 확률이 매우 높은 추론을 말한다. 보통 우리가 참이라고 하는 추론은 연역 추론과 귀납 추론이다. 둘의 차이는 질적인 차원이 아니라 양적 차원에 기반한다.
전제가 모두 참이면 결론이 100% 참이 되는 추론이 연역 추론이고, 전제가 모두 참이어도 100%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히 참일 것으로 짐작되는 추론이 귀납 추론이다. 그러므로 시중에 유통하는 연역 추론과 귀납 추론에 대한 정의는 대부분 틀렸다. 상당수의 텍스트에서, 연역 추론은 보편 명제에서 특수 명제를 도출하는 것으로, 귀납 추론은 특수 명제에서 보편 명제를 추론하는 것으로 설명하는데, 정확하지 않다.
연역 추론의 경우 전제가 참이면 결론이 무조건 참이 되는 이유는, 전제에 이미 결론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귀납 추론의 경우 전제가 참이어도 결론이 무조건 참이 아닌 이유는, 결론이 전제보다 더 많은 내용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귀납 추론을 틀릴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결론의 범위가 전제의 범위보다 넓기 때문이다. 전제는 자기 바깥의 영역까지 진위 여부를 보장하지 못한다.
과학은 그동안 인간이 몰랐던 자연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밝혀내는 것이 목표인 만큼, 반드시 귀납 추론을 방법론으로 사용한다. 현재 과학 분야에서 이론이나 법칙으로 자리잡은 모든 것들은 하나도 예외없이 귀납 추론을 통해 도출한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언제든지 틀릴 준비가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보자.
까마귀는 까만 색이다,라는 이 간단한 명제를 참이라고 증명하기 위해서는 세상 모든 까마귀의 색을 다 관찰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과거 몇 천만 년 동안 살다간 까마귀의 색까지 관찰해야 하는데 그들의 몸은 이미 썩어서 흙이 되었을 테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태어날 모든 까마귀 자식들의 색도 체크해야 하는데, 짧은 수명을 살다가는 우리 인간으로서는 과연 까마귀가 언제 멸종할지 알 길이 없다.
저런 간단한 명제도 증명이 불가능한데, 하물며 다음과 같은 명제는 어떤가. “물은 100℃에서 끓는다”, “은은 모든 원소 중에서 가장 전기전도율이 높다”, 이런 명제도 아직(?) 참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을 끓여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은 원자를 상대로 전류를 흘려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라면 어떻게 과학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공장에서 만든 자동차를 마음 놓고 타고 다닐 수 있겠는가. 한강 다리를 안전하게 건널 수 있겠으며, 고층 빌딩에서 평온한 마음으로 식사를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이때 영웅처럼 등장한 과학철학자 2명이 있었으니 바로 칼 포퍼와 토머스 쿤이다. 포퍼는 어떻게든 과학에 희망을 불어넣으려 했다면, 쿤은 그나마 있던 희망의 불꽃마저 확실하게 꺼뜨렸다. 이번 챕터의 주인공은 쿤이므로 포퍼 얘기는 생략하고 쿤의 생각에만 집중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