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이 Dec 06. 2020

8-03. 근대인의 편견

모든 사회는 다 특수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진리의 편으로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에 쿤은 반대했다. 앞서 말했듯 양자 역학이 뉴턴 역학보다 더 진리에 근접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믿음에 근거한다. 양자 역학과 뉴턴 역학을 절대적으로 비교할 제3의 근거는 없다. 우리는 양자 역학의 입장에서 뉴턴 역학을 보기 때문에 뉴턴 역학이 틀린 것처럼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당연히 지금 우리가 믿는 과학의 패러다임은 언제가는 무너질 것이다. 과거의 천동설이 부정되었듯이 말이다. 물론 그러한 ‘과학 혁명’은 쉽게 오지 않는다. 갈릴레이가 지동설 관련 논문을 썼을 때 그는 목숨을 위협당했다. 기존 패러다임으로 설명되지 않는 오류나 반례가 발견된다고 해서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그 오류를 해결하기 위한 보수 작업을 한다. 천동설에서는 행성의 역행을 설명하기 위해 ‘주전원’을 새로이 도입했었다.


뉴턴 역학에서는 천왕성의 궤도 오류를 설명하기 위해 천왕성 바깥에 또 다른 행성의 존재를 가정했다. 천왕성 궤도 오류보다 소중한 게 뉴턴 역학이었던 셈이다. 물론 그 덕분에 해왕성을 더 빨리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도 상대성이론이나 양자 역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우주의 비밀이 많다. 상대성이론은 원자 세계의 운동을 설명하지 못한다. 양자 역학은 중력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성이론이나 양자 역학을 폐기하려는 과학자는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과학자들의 기본 자세는 ‘보수 성향’이다. 최대한 기존의 패러다임 안에서 새로운 문제나 오류를 해결하려고 하지, 어떤 균열을 발견했다고 해서 쉽사리 기존 세계관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양자 역학을 공부하는 이론물리학도가 그 이론 안에서 어떠한 오류를 발견한다면 그는 일단 자신의 실수나 무능력을 탓하지 이론 자체를 부정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혁명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은 오류의 축적이 아니다. 오류가 산더미처럼 쌓여도 과학자들이 눈도 꿈쩍하지 않는다면, 혹은 그 오류들을 기존 패러다임으로 빠른 시일 내에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패러다임이 바뀌기는커녕 기존 패러다임은 오히려 더욱 공고해진다. 반면, 오류가 몇 개밖에 없음에도 과학자들이 그 오류를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기존 패러다임으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을 느낀다면, 과학혁명은 일어날 수 있다.


과학을 ‘지식의 축적’이라거나 ‘논리적 결론’이라는 생각은 편견이다. 과학 활동의 본질은 과학자 집단의 ‘심리적 합의’라는 것이 쿤의 진단이다. 과학을 다른 어떤 학문이나 여타 분야보다 우위에 두는 경향이 있는데 그 또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시대적 편향이다.


같은 맥락에서, 무신론자들은 종교인들을 비웃는 경향이 있는데 그 또한 합리적이지 않다. 물론 있지도 않은 신을 저렇게 열렬히 믿고 숭배하기까지 하는 행태가 우스꽝스러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신이 없는 세계를 믿는 것이 신이 있는 세계를 믿는 것보다 우월하지 않다. 물론 반대도 마찬가지다.


쿤의 말대로라면, 진화론에 대한 믿음의 근본에는 논리와 합리성과 객관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다만 ‘과학자들의 심리적 편견’과 그 합의에 대한 ‘대중의 신뢰’만 있을 뿐이다. 진화론을 믿거나 창조론을 믿거나의 문제는 결국 과학자를 믿거나 신학자를 믿거나의 문제로 귀결된다. 과학이 과학자들끼리 합의된 해석의 결과물이라면, 종교는 종교자들의 합의된 해석의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그 둘은 근본적인 레벨에서는 차이가 없다. 같은 논리로, 종교인들은 무신론자를 안타까워하겠지만, 그 또한 자기중심적 편견에 불과하다.


‘과학적’이라는 말은 ‘과학자들로부터 검증된’이라는 말이듯, ‘종교적’이라는 말은 ‘종교인들로부터 검증된’이라는 뜻이다. ‘예술적’이라는 말은 ‘예술가들로부터 검증된’이라는 뜻으로 이해해도 된다. 누구에게 검증된 것이 더 우월한가. 그것을 판단할 중립적이고 공정한 심판자나 근거는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지 않다. 남는 건 선택일 뿐이다. 다만 지금의 우리는 ‘과학’을 골랐다는 점이 우리 시대의 독특한 판단이자 편견일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