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놈들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영화 [불한당]이 부수고 싶어 하는 세계
1. 누가 불한당인가?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은, 언뜻 주인공 조현수(임시완)와 한재호(설경구)의 입장에서 보면 각각 그들의 불한당 되기 성장담으로 읽힌다. 조현수는 영화의 전개와 더불어 점점 불한당이 되어 가는 듯하고, 한재호는 그의 과거담을 통해 그가 어떻게 불한당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조현수가 불한당이 된 이유는 한재호의 배신과 천인숙(경찰팀장)의 무관심 때문이다. 한재호의 경우는 불우한 가정사 탓이다. 두 사람은 자신의 선택 때문이 아니라 주변 환경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불한당이 되어 살아간다. 그것이 영화의 전반적인 이야기 구성이며, 주인공의 세계관을 형성한다.
그렇다면 불한당은 조현수와 한재호뿐인가. 그렇지 않다. 보스인 고병철도, 조카 고병갑도, 천인숙도, 조현수의 라이벌 형사 영근도, 감옥의 보안계장도, 오검사도 모두 불한당이다. 영화의 부제가 “나쁜 놈들의 세상”인 것은 이 세상 모두가 결국 나쁜 놈들로 구성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불한당이 되었나? 영화는 그에 대한 답은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관객은 조현수와 한재호의 관계를 통해 간접적으로 추정할 뿐이다.
2. 그들은 왜 불한당이 되었는가?
그들이 불한당이 된 이유는, 간단히 말하면 결국 환경적 요인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나면 영화를 본 의미가 전혀 없어진다. 그래서 그에 답하기 위해 조금 에둘러 가겠다.
감옥에 있을 때 한재호는 조현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곳에는 두 부류가 존재하지. 건드려도 되는 놈들이랑 건드리면 안 되는 놈들. 난 어느 쪽일 거 같냐?” 조현수는 “건…드리면 안 되는 놈…들 쪽 같아요” 하고 답한다. 그러자 한재호는 “아니. 난 그 기준을 정하는 사람이다”라고 대꾸한다. 그런데 그건 감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영화 시점이 감옥씬과 출옥 후 씬을 투 트랙으로 병행해서 이끌어가는 이유 중 중요한 하나가, 감옥과 감옥 바깥 세상이 다를 바 없음을 나란히 보여주기 위함이다.
감옥에서는 한재호가 룰-메이커지만, 현실에서 그는 ‘건드리면 안 되는 부류’로 분류된다. 현실의 룰-메이커는 국가로 상징되는 공권력을 가진 무리들이다. 영화에서는 그것이 검사와 경찰 세력으로 대변된다.
감옥에서 김성한이 입소하면서 혁명이 일어난다. 그가 룰-메이커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한재호는 ‘건드려도 되는 놈’, 아니 더 정확히는 ‘곧 죽을 새끼’로 전락한다. 이는 룰-메이커의 자리 또한 가변적이며 위태로움을 뜻한다. 이를 바깥 세상에 적용하면, 절대 권력처럼 여겨지는 국가의 입지 또한 변화가능하며 상대적이라는 걸 암시한다.
한재호는 두 번이나 룰-메이커로서의 자리를 탈환하는데, 한 번은 감옥에서 조현수와 짜고 김성한을 죽인 후, 다른 한 번은 출옥 후 자신을 제거하려던 고병철을 죽인 후다. 그 과정에서 한재호는 국가마저 농락하려 한다. 그 방법은 룰-메이커(=국가)의 하수인인 형사 조현수를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다.
3. 한재호는 왜 조현수를 선택했나?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간다는 건 결국 어느 한 쪽에 속하는 과정인 셈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건드려도 되는 놈들’이 되어 평범하게 살아가고 일부는 ‘건드리면 안 되는 놈들’이 되어 범죄를 저지르며 불법적인 삶을 산다. 그리고 전자인 대부분의 사람은 출세를 위해 룰-메이커의 일원이 되기를 갈망한다. 조현수는 룰-메이커의 하수인이 되었지만, 그 이유는 권력자가 되기 위해서도, 성공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도, 국가에 충성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단지 그런 삶의 방식이 가장 재밌고 자신에게 어울린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조현수는 룰-메이커의 부류지만, 실질적으로 그는 그 어느 쪽 부류도 아닌 유랑아인 셈이다.
한재호는 그런 조현수에게서 인간 본연의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한재호가 조현수를 아끼고 신뢰한 이유를 단순히, 감옥에서 자신을 구해줬기 때문이라거나, 어릴 적 자신의 모습과 유사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은 단편적이다. 자신의 목숨과 삶 전체를 던질 만큼의 무리수를 감행하고 끝내 자신을 내려놓는 모습에서, 더욱 근본적인 요인이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모두가 나쁜 놈들인 세상에서 오직 유일하게 조현수만은 아직 불한당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앞서 내가 한 이야기를 뒤집을 수밖에 없다. [불한당]은 조현수의 불한당 되기 성장담이 아니라 불한당이 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으로 전화한다.
4. 불한당들의 세상을 구원하는 법
영화는 세상에서 ‘건드리면 안 되는 놈들’인 범죄조직뿐 아니라 이미 그 구조 속에서 자신의 사회적 입지를 차지하고 살아가는 모두가 불한당이라 말한다. 한재호가 조현수의 엄마를 살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것이 조현수가 불한당이 되지 못하게 막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현수가 그대로 경찰의 심복이 되어 국가의 녹을 받고 살거나, 혹은 고병갑의 작전으로 목숨을 잃거나 어느 쪽이든 불한당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건드리면 안 되는 놈들’에서도 벗어나게 하기 위해 한재호는 조현수와 함께 조직 이외의 삶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그때가 영화의 엔딩이자 모든 사실이 다 밝혀진 후였지만 말이다.
한재호는 조현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을 믿지마. 상황을 믿어.” 사람을 믿지 말라는 말은 그 사람이 속한 부류를 믿지 말라는 뜻이고, 결국 그 어떤 부류도 믿지 말라는 뜻이다. 심지어 국가마저도 말이다. 다만 그 순간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느 부류 간의 어떤 대결인지 그 맥락을 파악해서 잘 빠져나가야 한다.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이 되는 것. 그것만이 자신을 지키며 불한당이 되지 않는 길이다.
영화를 끝까지 감상한 관객이라면, 누구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조현수를 기회주의자라고 욕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매순간 최선의 선택을 했고 늘 열심히 살았다. 물론 그럼에도 그의 주위에는 이제 아무도 없다. 그는 모두가 죽은 곳에서 홀로 차 안에 앉아 가쁘게 숨을 몰아쉰다.
5. 우리는 불한당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조현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불한당이 된 이유는, 스스로를 버리고 자신이 속한 집단을 택했기 때문이다. 스스로와 타인을 믿는 대신 그 자리를 믿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사회라는 거대한 체스판에서 말놀이를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 거대한 게임에 갇혀 룰에 급급한 삶은 얼마나 비참하고 어리석은가.
이때 우리는 한재호와 조현수를 통해 서로 다른 방향성을 비교해 볼 수 있다. 한재호는 기존의 룰을 부시고 자신이 새로운 룰을 세우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기존의 게임을 새로운 게임으로 대체하는 것일 뿐 게임 자체를 부시지는 못한다. 한재호의 죽음은 그 방법의 실패를 암시한다.
반면, 조현수는 그 무엇도 부시려 하지 않는다. 다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뿐이다. 그는 사건과 상황에 따라 타인과 그의 자리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내세우고 그에 따라 움직였다. 그의 생존은 그 방법의 성공을 암시하는 걸까. 확신할 순 없지만 적어도 한재호의 방법론보다는 더 낫지 않냐고, 영화는 넌지시 말을 건네는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