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이 Jan 31. 2022

자유는 최고의 가치인가?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를 읽고



1.

20대 때 혼자 살 때는 영양제와 건강기능식품을 13개쯤 먹었었다. 열심히 챙겨 먹으며 건강을 기원하는 내 모습이 흡족하면서도 한편으론 제약/식품회사들에 돈이나 갖다 바치는 쪼다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렇게 몇 년을 먹어도 먹기 전의 나와 별 차이를 못 느껴 결국 영양제를 모두 끊었다가. 몇 년 후 멀티비타민이랑 오메가3 정도는 먹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다시 시작했다. 요즘은 약들약 고약사님의 유튭을 보면서 이것저것 바꿔가며 한 번에 5-6개가 넘지 않는 선에서 다시 영양제와 건강기능식품을 복용하고 있다.


가끔 런 생각이 든다. 건강이란 게 객관적인 개념일까? 우리 외할머니는 힘든 시절에 태어나 평생 영양실조 가까운 식생활을 영위하시면서도 94세까지 살다가셨다(외할머니가 평소 영양제를 챙겨드시고 균형 잡힌 식사를 하셨다면 100세 넘게 사셨을 거라는 얘기는 여기선 관두자).


그렇다면 건강이라는 것도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주관적 개념일까? 건강에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건강이 일상적인 대화 주제가 되고, 방송/문화 컨텐츠로 활용되고,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노력하고 또 소비하고 운동하고 이런 것들도 자본주의 사회의 어떤 질서와 연관될까? 나는 ‘그렇다’ 쪽인데, 그렇다면 건강에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는 삶은 오히려 불안을 더 키워 삶을 건강하지 못하게 만들까? 건강을 위해 건강을 소모하는 삶. 그 끝없는 순환이 이 사회에 어떤 양상을 만들어냈는지 궁금하다.



2.

비슷한 사례로는 바디 프로필 열풍이 있다. 근래 들어 바프 찍기가 일반인들에게도 일상적인 버킷리스트처럼 되었는데, 이것도 영양제처럼 유사한 메커니즘으로 볼 수 있을까? 헬창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도? 동네에 헬스장이 늘어나고 PT가 일상화되고, 바프 전용 스튜디오가 번성하고, 하다못해 홈트용품이 즐비해지고, 홈트/다이어트 영상이나 강좌 한 두 개쯤은 기본으로 보는 등의 변화는?


한편으로 바프나 홈트 열풍은 코시국에 대한 대응적인 측면도 있다고 생각된다. 집콕라이프로 활동양이 줄어, 늘어가는 체중을 억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면도 있고, 또 만남의 횟수가 줄어든 만큼의 시간을 맨날 넷플릭스로 채울 수는 없으니 이참에 몸이나 만들까 하는 생각도 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그러한 선택과 변화는 사회에 이미 깔려 있는 어떠한 흐름/경향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면에서 사적인 레벨을 넘어 사회적인 레벨에서 생각해 볼 사안이라 생각된다.


쉽게 말해 이런 얘기다. PT를 받든 홈트를 하든 먹고 바로 눕든 그건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정말 자유인가? 수많은 데이팅 프로그램에서 다수의 참가자들이 자기관리 잘하는 상대가 이상형이라 말하는 시대에, 헬창/몸짱 계정의 팔로워와 좋아요가 단연코 많은 세상에서, PT를 받을지 말지를 온전히 개인의 자유에 떠넘길 수 있을까. 우린 이미 사회에 잠재된 어떤 판단들에 잠정적인 강요를 받고 있지 않느냐 말이다. 사회적 판단을 어기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그걸 어길 시 사회는 그 개인에게 더 이상 호락호락하지 않다.



3.

위는 이미 푸코가 했던 얘기다. 그렇다면, 자유라는 근대의 프로그램은 태생부터 개인을 옥죄기 위한 가면이었던가. 아니면 우리 시대에 와서 자유가 변질된 건가. 혹은 자유의 변질은 태생부터 예고된 수순이었나. 나의 관심은 여기에 있다. 그리고 나는 셋 중에 뭐가 됐든 자유라는 프로그램이 어쩌면 처음부터 인간에게 가능성과 희망을 줄 수 없는, 거짓된 이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물론 책에서 서동진 쌤은, 그럼에도 자유를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그건 너무 쉽고 안일한 답일 거라고. 다시 인간에게 새 세계를 열어줄 자유를 새롭게 구상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나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회의적이다. 자유 평등 윤리 인권 이런 가치들은 자본주의에 대항해서 생긴 것들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자장 안에서 자본과 함께 태어나고 형성되어온 개념들 아닌가. 오라클도 매트릭스의 일부인데, 우리는 오라클을 믿을 수 있는가? 오래도록 나를 괴롭힌 질문. 그리고 앞으로도.




작가의 이전글 05. 서양 철학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