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학, 현대 철학을 열다]를 읽으며 든 생각
우리의 의식은 왜 어떤 경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까? 오랫동안 궁금했던 질문이다. 현대 심리학이 주장하듯, 의식도 기억도 감정도 모두 물질로 환원할 수 있다면. 내 뇌와 신경의 물질 구성은, 어떤 사건을 경험하기 전의 배치로 돌아갈 수 없는 걸까? 내 몸을 구성하는 원자의 구성을 이전으로 바꾸면 기억도 사라질까? 아픔도 잊힐까? 그 아이스크림을 처음 맛보는 짜릿한 경험을 또 할 수 있게 될까? 영화 <이터널선샤인>도 비슷한 소재를 토대로 했고 말이다.
미래에는 지식/지혜를 USB처럼 전선을 꽂아 뇌로 바로 이식할 수 있을까? 영화 <매트릭스>에서도 나온다. 물론 저런 의문은 이제 식상하다. 내가 요즘 궁금한 건 조금 다른 지점이다. 책 한 권 분량의 정보가 뇌에 '동시에' 입력된다면, 나에게 의미로 작용할까? 우리가 책을 읽는다는 건, 사실 시간성을 배제할 수 없는 행위다. 우리는 글을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순차적으로 읽으며, 의미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만약 책을 반대로 읽는다면? 그때도 우리는 책의 첫 장을 덮고나서 똑같은 의미를 수용하게 될까? 나는 아닐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모순은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책을 순차적으로 읽으나 역순으로 읽으나 내 머리에 들어오는 정보값의 총량은 동일하다. 그런데 왜 순서만 바뀌었을 뿐인데, 의미는 전혀 다르게 작동할까? 그게 맞는다면, 의미는 물질로 환산할 수 없는 게 되는 것 같다. 음악의 경우는 어떤가. 음악도 시간의 예술/매체이다. 첫 음부터 막 소절까지 순차적으로 들을 때 느끼는 감정 상태와, (90년대 유행했던 백워드 매스킹처럼) 리버스로 음악을 들었을 때의 감정 상태가 동일할 리 없다. 하지만 분명 내 청각을 통해 머리로 입력된 음악의 정보값은 그냥 들으나 역순으로 들으나 같다.
그렇다면 의미는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가령 우리가 솔-미-레-솔-미 음을 순차적을 듣는다고 가정하자. 솔 다음에 미를 들었을 때, 그 미는 파 다음의 미나 라 다음의 미와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왜냐하면, 공기 중에는 솔 음이 사라졌어도 우리 머릿속에는 솔 음의 잔상이 남아있어서 현재 들리는 미 음과 모종의 마찰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음악을 듣는다는 건, 바로 직전 음과 현재 음 사이의 관계를 함께 느끼는 것이다.
사실 영화의 원리도 동일하지 않은가. 우리 눈에는 동영상이 연속적인 이미지로 보이지만, 실은 1초에 적게는 수 장에서 많게는 30장 정도의 이미지 나열을 보는 것이다. 시각적으로 방금 본 이미지의 잔상이 뇌에 남아있기 때문에 현재 이미지와의 차이와 변화를 통해 우리 뇌는 자연스러운 연결 동작으로 지각하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의식 활동 전반은, 감각이든 지각이든 인식이든 등등은 그저 시간이란 속성에 구속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시간성이 있기에 의미화될 수 있는 게 아닐까. 무시간적인 정보/입력값은 인간에게 무의미인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다시, 시간이란 무엇인가? 칸트가 말했듯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자체 프레임일까? 아니면 우주가 발생시킨 현상일까? 여기까지는 현상학이 다룰 주제를 벗어나는 것 같으니 일단 멈추는 걸로.. 이 질문은 이론물리학과 뇌과학에게 물어야 할 것 같다.(약은 약사에게, 치료는 의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