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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Jun 12. 2017

벌써부터 욕먹고 있는 [알쓸신잡]

정의로운 비평과 저급한 방송이라는 이분법


어젯밤에 처음 알쓸신잡 1화를 봤다. 지코바 먹으면서...30분 시청하다 치킨이 사라져 더 이상 안 봤다. 재미 없었다.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개그코드나 오가는 대화의 결도 특별하지 않았다. 정말 너무나 일상에서 딱 접하는 정도의 이야기였다.


알쓸신잡에 대한 몇몇 비판을 이미 접한 후였지만 그것 때문은 아니다. 기존 비판을 간추리면, 1: 애초에 인문학을 논할 줄 모르는 자들끼리 모였으니 인문학이 될 리 없다 2: 이순신이 왜군 무찌르는 얘기를 하면서 다찌집이라니 3: 왜 죄다 남자인가 4: 유희열의 서울대 발언, 정도.


1 2번은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우선 1번을 주장하는 자는 인문학이 무슨 고등하고 고결한 무언가라고 생각하는가 보다. 소외 계층이나 약자를 위하거나, 도덕적인 컨텐츠와 정치적으로 올바른 담론만 인문학인가. 부자의 인문학도 있고 부도덕한 인문학도 가능하다. 이미 자신의 머릿속에 '바람직한 인문학의 바운더리'를 설정해 놓고 거기서 벗어나면 나쁜 인문학이 되거나 아예 인문학이 아니라고 말하는 거야말로 반-인문학적이다. 황교익이 자본주의 옹호 발언을 하든, 유시민이 정치를 예능으로 전락(?)시키든 그 자체가 인문학의 범주일 수 있다. 그런데 감히 자신이 뭐라고 인문학의 기준을 정하는가. 오만하다.


2번은 사실 말할 가치도 없다. "이순신이 무찌른 왜군"이라는 논의 층위와,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접하는 일본 문화의 층위가 동일한가. 2번을 주장하는 사람은 로빈슨 크루소가 되지 않을 바에야 자신의 생각을 다시 정리해 보는 게 적절하겠다.


3번은 부분적으로 동의하는데, 여성도 함께였다면 더 많은 역할분담이 됐을 것 같긴 하다. 그리고 그 편이 다양하고 폭넓은 논의를 통해 방송을 지금보다 더 재밌고 의미있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모든 영역에서 남자 반 여자 반이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여자는 없고 남자만 있으면 무조건 비판하고 보는 건 아닌지.


4번 또한 비판받을 일인지 의문이다. 방송 시작부터 유희열은 계속 자신이 무지한데 그게 들킬까봐 얘기에 잘 끼지 못하겠다고 하소연한다. 그게 설정일 수도 있으나 적어도 방송 내에서는 '진실'로 읽혔다. 그는 질문은 많지만 답할 때나 지식을 전달하는 자리에서는 일절 대화에 끼지 않는다. 그런 자신이 당장 멍청한 사람이 아님을 호소할 수 있는 손쉬운 수단은 '학력 인증'이었을 것이다. 그 부분이 편집되지 않고 그냥 방송으로 내보내진 이유는 그것이 '웃기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내는 중이거나 그 시절을 지났다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학력이 강력하게 먹힌다. 그러면서도 학력 위주로 평가받는 것에 대한 한편의 부당함과 불만도 지닌다. 한국인들의 학력에 대한 감정은 양가적이다. 유희열의 학력 발언과 해당장면의 방출은 그에 대한 함의로 읽힌다. 그런 발언을 한 유희열과, 그 장면을 여과없이 내보낸 피디와 스탭들이 학벌주의를 옹호한다고 판단한다면 자신의 1차원적 사고력을 인증하는 꼴이다. 혹은, 그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해당장면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학벌주의를 수용하게 만들고 그러한 세계관을 확산시킨다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시청자는 유희열의 서울대 발언에 박수치며 웃다가도, 웃픈 현실을 한번 돌이켜보게 될 뿐이다.


어찌 됐건 위의 비판들과 무관하게 나는 방송 자체가 재미 없었다. 애초에 나영석 피디 작품은 1박2일 시즌1 빼고는 다 노잼이었던지라 딱히 기대는 안 했다만. 나는 해당 방송보다, 비평가들이 자신의 머릿속에 이미 담론의 틀을 규정해 놓고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작태가 훨씬 더 불편하다. 그대들이 정의롭고 선량하다고 생각하는 방송 영화 문학 등만 나온다면 현재보다 얼마나 지루한 세계가 될지,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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