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관념론 vs 유물론

by 이태이

우주의 수는 사람의 수만큼 많다는 말이 있다. 주식투자의 방법도 투자자 수만큼 많다. 투자 근거를 어디서 찾느냐에 따라서도 천차만별이다. 펀더멘털을 분석하는 이들이 있고(주로 퀀트?), 재료나 이슈를 좇는 이들도 있다. 테마주 투자자들이 있고, 기업의 가치를 보는 이들도 있다(가치 투자). 나는 이 모든 것에 해당하지 않는다. 나는 오직 차트만 본다. 이른바 기술적 분석.


투자 방법의 구분은 기간에 따라서도 다양하다. 장기, 중기, 단기가 있고, 단기 중에서도 초단타인 스캘핑이나 하루 안에 매수와 매도를 끝내는 데이트레이딩이 있다. 나는 매수 후 다음 날에 매도하는 스윙 투자자다.

주식 투자자를 가장 먼저 구분하는 근본적인 기준점은 바로 이거다. 세력이 있다고 믿는가 없다고 믿는가. 나는 있다고 믿는다. 대부분의 종목 뒤에는 세력이 있다. 세력이 있는 차트와 없는 차트는 보자마자 바로 티가 난다. 그리고 세력이 없는 차트는 흔치 않다. 물론 나의 뇌피셜이다.


세력이 있다고 믿는 이들(나 포함)의 근거는, 세력이 없다면 주가가 지금처럼 움직일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증권 프로그램을 켜보라. 그리고 상승 종목을 찾아보라. 하루에 5% 이상 상승한 종목이 매일 수두룩하다. 그걸 개인 투자자들이 올릴 수 있을까.


나는 한 호가라도 높여서 매수하는 걸 굉장히 꺼린다. 시장가 매수는 거의 하지 않는다. 아마 다른 투자자들도 비슷할 것이다. 이왕이면 한 호가라도 낮춰서 매수하려고 혈안이 되어 호가창을 노려보고 있을 것이다. 보통 한 호가의 금액 차이는 0.1~0.2% 내외다. 1%라도 상승하려면 적어도 5호가에서 많게는 10호가 이상을 높여서 매수해야 한다. 매도창에 쌓인 5호가 내지는 10호가 정도의 매물을 매수해서 1%라도 올리려면 최소 억 단위는 필요하다. 아무리 잡주라도 말이다.


몇 억을 투자하면서 호가를 올려가며 매수할 의향이 있는 개인투자자가 얼마나 될까. 그렇게 올려 매수한 금액보다 더 높은 가격에 매도할 자신이 있는 개인투자자는 또 얼마나 될까. 아마 대부분 꺼려질 것이다. 물론 소수의 용감한 투자자들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5% 이상을 올려 매수한다는 건 개인의 영역일 수 없다고 판단된다. 그건 세력의 영역이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올려 매수한 게 아니라면 설명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주가를 어느 정도 조작할 수 있을 만큼의 자금력이 있거나, 혹은 그 회사에 대한 핵심 정보를 미리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다.


내가 아무리 설명해봤자, 아니 이미 전문가들이 주구장창 설명해왔지만, 안 믿는 사람들은 여전히 믿지 않는다. 이는 근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및 세상을 대하는 성향의 차이 때문이다. 신을 믿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없다고 믿는 사람이 있듯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주식 시장의 세력은 확실히 믿지만, 신은 없을 거라는 쪽을 좀 더 믿는 편이다. 정확히는 불가지론자다. 없다고 믿는 게 맞을 거 같지만, 행여 있다고 해도 크게 놀라지는 않을.


나는 세상에는 숨겨진 이면이 있고, 그 이면이야말로 본질적이라 믿는다. 일상에서 누군가가 A라고 말하면 A라고 곧이곧대로 믿는 편이 아니다. 저 사람이 A라고 말한 숨겨진 의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편이다. 영화나 드라마 등의 작품을 볼 때도 겉으로 보이는 부분보다는 크리에이터가 저렇게 연출한 의도나 속내를 더 생각한다. 표면적인 해석을 하는 것을 낮게 취급하고, 그 이면까지 보려는 관점이 더 훌륭하다고 평가한다.


이 우주에도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적인 표면보다 그 표면 아래 드러나지 않은 어떠한 원리나 법칙 같은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찾아 의미화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는 부심이 있다. 이런 나를 친구들은 선민의식 가득한 허영쟁이라 욕하지만.


철학에서도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과 반대 태도를 가진 사람들로 나눌 수 있다. 관념론과 유물론이다. 혹은 합리론과 경험론이기도 하다. 나와 비슷한 태도로 세상을 대하는 쪽이 관념론(합리론)이다. 반대 성향이 유물론(경험론)이다. 아주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진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 쪽이 관념론이고, "눈에 보이는 것만 믿을 수 있어" 쪽이 유물론이다.


이런 전통은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소크라테스를 삼킨) 플라톤이 관념론자이고,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유물론의 조상격이다. 플라톤은 이데아만이 진실이라 설파하며 현실에서의 사물들은 모두 이데아의 짝퉁이라 폄하했다. 그런 플라톤에게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란 결국 추상적 명칭이기에 사물들에 대한 사후적인 명명일 뿐이고 현실에 존재하는 개별적인 사물들이 본질적이라 일갈했다.


이후 데카르트, 칸트, 헤겔, 후설 등이 관념론의 맥을 이었고, 로크, 베이컨, 흄, 마르크스 등이 유물론의 맥을 이었다. 물론 같은 관념론자라고 해서 세계관이 같은 건 아니다. 나만 해도 관념론적인 세계관을 믿지만, 개인적으로 플라톤의 철학은 딱 질색이다. 이데아라니, 말이 되는가. 차라리 종교를 만들거나 믿고 말지. 데카르트나 칸트, 헤겔의 철학도 상당히 다르며 어떤 부분에서는 부딪히는 점도 있다. 유물론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크게 두 부류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을 뿐 각각의 철학자들은 저마다의 우주를 품고 있다.


의외로 흥미로운 지점은, 수학자들과 과학자들이야말로 찐 관념론자라는 사실. 수학자야 그렇다 치더라도 과학자는 왠지 눈에 보이는 물질만 믿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일단 수학에서는 수 자체가 현상 너머에 있는 관념의 총체이다. 피타고라스 정리라든가, 허수, 미적분 같은 것들을 떠올려보라. 수학자들이야말로 이 우주의 근원에 존재하는 근본 법칙을 찾아 헤매고 다닌다. 과학 법칙 또한 마찬가지며, 그런 우주의 법칙을 관찰하고 실험하고 보편화하려는 과학자들 또한 진성 관념론자들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렇게도 물어볼 수 있다. 과연 수학자들은 미적분 같은 수학의 원리들을 발견한 것일까, 발명한 것일까. 마치 신이 인간을 만들었을까, 인간이 신을 만들었을까 하는 질문과도 같은 구조다. 우주에는 정말 미적분 같은 원리가 빅뱅과 함께 태어났고 아주 오랜 후에야 우리 인간이 발견할 것일까. 아니면 우리 인간이 우주를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자의적으로 미적분을 구상한 것일까. 이는 마치, 주식 시장에 세력이 있냐 없냐처럼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과학자들 또한 사정은 다르지 않다. 애초에 근대과학 자체가 감각을 믿지 않은 데서 시작했다. 과학사에서는, 태양이 도는 게 아니라 지구가 돈다는 지동설을 근대과학의 시작점으로 보는데, 그 후에 나오는 과학 이론들은 죄다 인간의 감각을 배반하는 것들이다. 보이는 물질 너머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법칙을 찾으려는 몸부림의 격렬함은 과학자들 또한 만만치 않다.


화학자들에게도 똑같이 물어볼 수 있다. 원소는 발견한 것일까, 발명한 것일까. 18세기를 풍미했던 플로지스톤은 확실히 발견이 아니라 발명이었다. 21세기의 지구인들은 더 이상 플로지스톤 이론을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200년쯤 뒤의 지구인들은 원소 이론을 믿을까. 알 수 없다.


의외로 의사나 과학자들 중에 기독교 신자들이 많다. 내 주위에도 많다. 처음엔 이것이 모순이라 느꼈었다. 과학을 연구하면서 어떻게 신을 믿지? 지금은 모순은커녕 오히려 그것이 자연스러운 정신의 수순처럼 느껴진다. 신을 믿는 이도 과학을 믿는 이도 모두 세상의 본질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무언가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똑같으니 말이다.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는, 인간의 위대한 점으로 정신적 능력을 꼽는다. 그 능력이란 바로 허구를 생각하고 만들어내 진짜처럼 대할 수 있는 상징적 내면을 일컫는다. 이는 유발 하라리의 독창적인 생각은 아니고, 20세기 문화인류학자와 정신분석학자들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다.


그들 중 일부는 인간의 정신이 일정한 규칙에 따라 설계되었다고 주장한다. 인간 정신은 보편적인 구조가 미리 정해져 있고, 그 구조 위에 경험과 학습 등에 의해 내면이 형성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러한 구조를 다양한 사회와 시대에 적용했고, 모든 인류 사회는 공통의 구조 위에 성립한다는 관점을 문화인류학이 가져다 썼다. 그 후 같은 관점을 다양한 분야와 주제 및 학문에 적용하여 활용해왔다. 그것이 구조주의/포스트구조주의다.


인간의 정신이나, 인간 사회와 문화의 근본에는 주어진 구조가 있다는 생각은 명백히 관념론적이다. 그에 반해 해체주의(흔히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도 불린다)는 그런 구조의 존재를 의심한다. 그들은 개개인의 각개전투식 방향성과 다양성을 옹호한다. 그런 면에서 해체주의는 유물론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역시나 굉장히 거친 비유지만, 구조주의는 뉴턴식 고전역학에, 해체주의는 양자역학에 비견할 만하다. 고전역학에서는 우주가 거시적인 차원에서 어떤 법칙이 다 설계되어 있고, 각 요소들은 그 설계에 입각해서 움직인다고 본다. 구조주의 또한 인간의 정신이나 인간 사회 등에는 선험적인 설계가 있고, 개개의 인간은 그 설계 위에서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간주한다. 따라서 고전역학도 구조주의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시한다. 반면, 양자역학은 미시적인 세계에는 규정된 규칙 같은 것은 없고 다만 확률분포가 있으며 개개의 입자는 확률적으로 움직이기에 혼란스럽고 무작위적이라고 규정한다. 해체주의 또한 각 개인이 가진 우발과 우연을 중요시하며 거기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자 한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매우 매우 거칠고 뭉뚱그려진 설명이다. 어떤 철학자 한 명을 완전히 관념론자로 혹은 유물론자로 구분하기는 어렵다. 양측의 특성을 모두 가진 학자들이 대부분이다. 다만 그 중 주요 맥락이 어느 쪽으로 치우쳤느냐에 따라 철학사적으로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사실 세상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결국은 살아있는 동안 즐겁게 행복하게 가치있게 살다 가고 싶은 것이 궁극적인 삶의 목표 아니겠나. 다만 자신이 희망하는 삶을 살기 위해 어떤 스탠스를 취하면 좋을지. 그에 대한 근거나 방법을 찾기 위한 기본 전제쯤에 해당하는 것이 철학이려니 한다.


마찬가지로 주식시장에 세력이 있는지 없는지 또한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주식 투자를 하는 이유는 결국 내가 이익을 얻기 위함이다. 다만 내가 어떤 식으로 파악하고 해석해야 더 수익률을 높이기 쉬운지가 관건이겠다. 나는 세력이 있다고 믿고 차트를 분석하는 게 가장 쉽다. 그런 면에서 이는 사후적인 정당화인지도 모르겠다.


Q. 눈에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vs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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