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는 모순

머릿말

by 이태이

1.

근래 모순된 인간이라는 말을 자주 듣고 산다. '아싸'이고 싶으면서 '인싸'이고 싶다거나. 혼자이고 싶지만 떠들썩하게 놀고도 싶고. 미친 듯이 빡쎄게 일에 치이는 워커홀릭의 삶을 동경하는가 하면, 아무런 의무와 책임도 없는 욜로의 삶에 매력을 느끼곤 한다. 개방적이고 싶다가도 규칙에 의존하고 싶어진다.

삶이란 내가 의도하는 대로, 계획하는 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는 것이 나름의 철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도하고 있다, 혹은 내가 관여하고 있다는 느낌은 중요하다. 그것이 내가 로또는 절대 사지 않으면서도 주식 투자는 하는 이유다.

로또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확률이 바뀌지 않는다. 늘 814만분의 1이다. 공부한다고 그 확률이 바뀌지 않는다. 주식은 노력하면 확률을 바꿀 수 있다. 물론 100%는 없다. 오르거나 내리거나 50 대 50이라 치면, 공부하고 조사하면 51 대 49라도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물론 노력한다고 지수가 바뀌진 않는다만.

결국은 지수에 따라, 시장의 거시적인 흐름에 따라 몸을 맡길 수밖엔 없지만, 그럼에도 개별적이고 미시적인 움직임은 제각각이기에 성공 가능성은 늘 있다. 마치 역학과 유체역학의 차이처럼 말이다. 고체의 움직임은 일관적이다. 반면, 유체의 움직임은 모든 지점을 다 예측하거나 계산할 수 없다. 양자역학이니, 통계적 열역학이니 발전한 지금의 시대에도 그러하다.

아주 약간의 틈이 있고, 그 틈을 내가 조금이라도 벌어지게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2.

철학과 주식의 만남? 솔직히 말하면 이는 나의 방어기제인지도 모른다. 주식을 처음 시작할 때, 모종의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불로소득이라는 측면도 그렇거니와,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주식에 올라타는 행위 자체가 자본주의를 빨아먹음과 동시에 그 시스템을 더 심화시킬 것이기에 그랬다. 맑스의 가능성을 여전히 믿고 있는 인문학도로서의 정체성이 정면으로 찢기는 것 같았다.

이제는 철학도, 종교도, 예술도, 자본도, 모두 한몸이라고 생각한 지 오래다. 이런 생각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게는 아주 흔한 생각이지만, 이것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은 매우 험난하고 지난한 과정일 것이다. 언젠가 그런 책을 쓰는 게 꿈이지만, 이뤄질지는 알 수 없다. 삶이란 내가 의도하고 계획하는 대로 흘러가지는 않기에.

철학책을 읽고 맑스의 가능성을 꿈꾸면서 주식 투자로 돈을 버는 것은 모순이 아니라 같은 체계 안에서의 서로 다른 경로일 뿐이다. 어느 경로로 가든 결국은 그 시스템을 따르고 활용한다는 측면에서는 다르지 않다. 그런 합리화. 이 책은 한 모순된 인간의 변명이, 과연 의미와 가치를 띨 수 있을지 걸어보는 실험의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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