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론 vs 순환론
주식 투자의 가장 큰 비극은, 누군가가 돈을 버는 만큼 다른 누군가는 손해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간혹 주식 유튜버나 컨설턴트 중 주식 투자로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완전 사탕발림이자 거짓말이다. 애석하게도 주식은 제로섬 게임이다. 지수가 말해준다.
코스피, 코스닥 지수를 구하는 방법은 굉장히 간단하다. 상장된 기업의 시가총액 총합이 곧 지수다. 물론 금액 그 자체가 지수는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코스피는 1980년 1월 4일의 시가총액 총합을 100으로 두고 그 변동률을 계산한다. 똑같이, 코스닥은 1996년 7월 1일의 시가총액 총합을 1000으로 두고 변동률을 계산한다. 만약 코스피 지수가 3000이라면, 이 시점의 시가총액 총합이 1980년 1월 4일의 시가총액 총합의 30배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 말은, 주식 투자를 통해 모두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다는 뜻이다. 지수가 계속 우상향하면 된다. 모든 종목이 장기적으로 우상향하여, 내일의 주가가 오늘의 주가보다 높으면 된다. 늘 그렇게 된다면 모두가 돈을 벌 수 있다. 지난 40년 간 코스피는 우상향했으므로 우량주에 장기투자를 했다면 모두가 돈을 벌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 코스닥은 지난 30년 동안 사실상 횡보를 한 셈이므로, 코스닥은 그간 계속 제로섬 게임을 해온 셈이다. 따라서 코스닥 투자자들끼리만 본다면 누군가가 돈을 번 만큼 누군가는 돈을 잃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지수가 우상향한다고 해서 투자자가 모두 돈을 벌 수 있다는 결론은 여전히 어폐가 있다. 왜냐하면 개별 종목의 차트는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지수가 우상향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우하향하다가 결국 상폐한 종목도 수두룩하다. 그런 종목에 투자한 사람들은 돈을 잃었을 것이다. 또 장기적으로 우상향이라 해도 단기적으로 보면 하락하는 구간이 있다. 그 구간에 투자한 이들은 역시 손실을 봤을 것이다. 어쨌든 현실적으로는 그렇지만, 이론적으로는 모든 종목이 우상향한다면 모든 투자자가 다 이익을 볼 수는 있다. 그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는 아니라는 거다. 적어도 주식시장만 본다면.
그런데 정말 전체 종목이 우상향하면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있을까. 전체 종목이 우상향하고 지수가 우상향한다는 건, 모든 종목의 시가총액이 증가한다는 뜻이다. 모든 주식의 가격이 비싸진다는 말이다. 그 말은, 주식시장에 투입되는 돈의 양이 점점 많아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통화량의 총량은 한정되어 있다. 돈은 교환되는 것이지 어디서 갑자기 새로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게 플러스 금액이 생긴다는 건 반드시 누군가에게 마이너스 금액이 생긴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주식시장에 투입되는 돈이 계속 늘어난다는 말은, 반대로 말하면 시중에 돌아다니는 돈 액수나 저축량, 혹은 다른 투자금액이 줄어든다는 뜻이 된다. 주식 가격이 비싸진다고 기업의 가치가 커지는 건 아니다. 주식 가격이 비싸진다고 그 기업의 능률이나 생산성이 증가하는 것도 아니다. 기업 가치는 똑같은데 주식 가격만 높아진다는 건, 실물 경제는 그대론데 주가(=명목가치)만 오른다는 뜻이다. 반대로 말하면, 실물 경제는 그대론데, 시중의 현금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혹자는 돈의 가치가 높아지니까 좋은 것 아니냐고 기뻐하겠지만, 천만에.
실물 경제가 그대론데 시중 돈이 줄면 경제가 점점 마비될 수밖에 없다. 지수가 상승할수록 시중의 돈은 0으로 수렴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정부는 돈을 더 찍어내서 시장에 풀 것이다. 주식시장에 돈이 쏠리는 만큼 정부는 계속 더 찍어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돈의 가치는 하락하고 주가가 올라봤자 실질적인 가치는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한다.
결국 경제 전체를 본다면, 모든 종목이 우상향하면 실질적으로 아무도 이익을 보지 못하게 된다. 이러나 저러나 주식시장은 제로섬 게임이다.
바로 이 지점이 많은 사람들이 주식 투자를 비윤리적이라고 지적하는 점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 나는 묻고 싶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렇지 않은 영역이 있냐고 말이다. 대입도, 입사도, 공무원 합격도 다 그렇고, 심지어 장사나 기업 운영도 모두 마찬가지다. 내 가게 매출이 오르면 그만큼 다른 가게 매출은 줄어든다. 사람들이 소비하는 돈의 양은 정해져 있으니까. 그렇다면 시험 공부를 하고, 어딘가에 합격하고, 자기 사업을 하고, 마케팅을 하고, 재화와 서비스를 판매하는 것을 장려한다면, 주식 투자 또한 예외가 되어선 안 된다. 적어도 저 모든 활동은 제로섬 게임이기에 내가 이기면 누군가는 진다는 점에서 본질은 다르지 않다.
참고로 나는 위 논의에서 다음과 같은 전제를 사용했다. 화폐의 가치는 화폐 총량 분의 실물 경제라고 말이다. 전체 실물 경제의 가치를 전체 화폐량으로 나눈 값이 화폐 단위의 가치라는 뜻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설명을 썩 좋아하진 않지만, 이 설명이 가진 명쾌함이 분명 있고, 또 일정 부분 그러한 측면도 있기에 일단은 이 전제를 사용했음을 밝힌다.
이처럼 주식시장을 제로섬 게임으로 보는 관점은, 중세의 세계관과 흡사하다. 중세에는 오늘도 내일도, 올해도 내년에도 전체 부의 파이가 똑같다고 가정했고, 따라서 경제적 이득을 추구한다면 반드시 다른 누군가가 손해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랬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이윤 추구를 죄악시했다. 지금도 적지 않은 이들이 주식 투자를 죄악시하는 이유 중 하나가, 결국 주식 투자로 돈을 번다는 건, 다른 투자자의 투자금을 털어가는 것이라는 발상 때문이다. 그것은 악한 행위이다. 그렇게만 보면 표면적으로는 도박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리라.
반면 근대의 시작을 연 이들은, 중세인들의 세계관을 찢어버렸다. 내일의 파이는 오늘의 파이보다 클 것이기에, 내가 조금 더 먹더라도 다른 사람이 먹을 양이 줄어들지 않을 거라는 믿음과 확신. 자본주의는 그 믿음과 확신을 토대로 태어났다. 사회 전체가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그리고 그 덕분에 지금의 우리들은 중세의 귀족보다도 더 호위호식하며 살 수 있게 됐다. 방금 언급했다시피 자본주의는 사회 전체가 성장할 수 있다는 잠재력과 그에 대한 믿음, 따라서 구성원 모두가 여분의 열매를 나눠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과 그에 대한 기쁨을 동력으로 굴러간다.
지난 20세기는 분명 경제가 성장밖에 모르는 호황의 시대였다. 이제 그 시대가 저물어버렸다. 일부 개발도상국을 제외하면 전 세계 경제성장률은 점점 0으로 수렴해가는 중이다. 주식시장도 마찬가지 추세로 전환했다. 코로나 팬데믹은 어쩌면 그 세계관에 확실한 종지부를 찍는 사건이었는지도 모른다. 진정 우리는 제로섬의 사회에 살아갈 것인가. 하지만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또 어떤 새로운 계기가 생겨 우리를 어떤 형태의 세상으로 이끌지는.
Q. 세상은 꾸준히 발전하는 우상향 그래프다. vs 세상은 돌고돌아 제자리로 오는 원형 그래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