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성장과 공항
곰곰이 생각해보면 주식이 거래되는 현상은 기적에 가깝다. 주식이 거래되려면 특정 가격에 매수하고자 하는 사람과 같은 가격에 매도하고자 하는 사람의 의지가 동시에 만나야 한다. 매수하려는 사람은 해당 종목이 그 가격보다 더 오를 거라고 판단하기 때문이고, 반대로 매도하려는 이는 그 종목의 값이 내려갈 거라고 추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같은 시간에 서로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야 주식 거래가 성사된다. 흥미롭지 않은가.
어떻게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가장 흔한 한 가지 이유는, 둘 중 한 명은 판단 미스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를 주식인데 내릴 거라고 착오했다거나 반대로 내릴 주식인데 오를 거라고 예단했을 것이다. 판단 미스의 이유는 다양하다. 공포나 욕망에 사로잡혀 감정과 심리를 컨트롤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주변인의 카더라 뉴스나, 증권사의 리포트, 또는 종목 뉴스를 과신한 탓일 수도 있다. 혹은 순전히 차트를 잘못 분석한 탓일 수도 있고, 세력의 유혹에 놀아난 것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제대로 된 판단과 잘못된 판단이 만나 주식 거래는 이루어진다는 게 1차적이다.
그런데 매수자 매도자 둘 다 올바른 선택을 한 경우도 있다. 이는 두 사람의 매매 스타일의 차이에 기인한다. 한 사람은 스캘핑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장기 투자를 한다면 충분히 둘 다 올바른 판단을 하고 있음에도 거래가 성사될 수 있다. 스캘퍼는 수 분 내에 1~2% 상승을 예상하여 매매하고, 장기투자자는 수 개월~1년 이상을 바라보고 수 십% 이상의 수익을 기대하며 사고판다. 매매 스타일과 목표치 등에 따라 순간적인 판단은 얼마든지 엇갈릴 수 있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만약 모든 투자자가 가진 정보량이 다 똑같고 그에 따른 판단도 같다면 주식 매매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이다. 모두가 오르길 기대한다면 팔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반대로 모두가 내릴 거라 예측한다면 사려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혹은 주가가 변동하지 않을 거라 판단해도 마찬가지다. 결국 주식 매매는 각 투자자들의 판단 차이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
더더욱 흥미로운 건, 모든 교환활동이 그러하지만, 언어의 의미 발생 과정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가장 완벽한 문장은 동어반복이다. 가령 "사과는 사과다" 같은 문장은 오해의 여지가 절대 없다. 하지만 세상만사를 다 그렇게 말한다면 우리는 오해없이 살 수 있을 테지만, 그렇게 해서는 메시지나 의미를 전달할 수 없게 된다.
자고로 언어의 목적은 나의 의사를 남에게 전달하는 데 있다. 하지만 동어반복적인 문장으로는 아무런 의미를 전할 수 없다. "A는 A다"라는 문장에서 만약 수용자가 A를 이미 알고 있다면 저 문장을 통해 새로 알게 되는 정보는 전혀 없다. 반대로 수용자가 A를 모른다고 해도 역시 저 문장을 통해 A가 무엇인지 알게 되진 않는다.
반면, "A는 B와 같다"거나 "A는 B의 성격을 지닌다"라고 했을 때에는 모종의 의미가 전달된다. A를 아는 이는 A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나 몰랐던 특성을 새삼 깨닫게 될 것이고, A를 모르는 이는 이미 알고 있던 B를 통해 전혀 몰랐던 A에 대한 개념이나 배경지식을 얻게 된다. 우리가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을 아주 단순화시킨다면 다 저런 구조이다. 우리는 하나의 대상을 그것과 다른 대상과 겹쳐 보임으로써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고 전달한다.
물론 그 방식에는 리스크가 있다. 왜냐하면 A와 B 사이에는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있기 때문이다. "A는 B와 같다"고 말할 때 수용자가 A와 B의 공통점에 주목하지 못하고 차이점에 먼저 눈이 갈 수도 있다. 그래서 전달자가 애초에 전달하려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도 있다.
예전에 그런 오해로 친구와 얼굴을 붉힌 적 있다. 내가 친구더러 유명인 K를 닮았다고 말한 적 있다. K는 평소 지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배려심 깊고 유순한 성격을 지닌 인물이라 나는 그 부분이 친구와 비슷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대화의 앞뒤 맥락도 충분히 그걸 유추할 수 있을 거라 판단하여 말했는데, 친구는 완전히 오해하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K의 외모가 그리 훌륭하지 않았다. 친구는 내가 본인 외모가 K를 닮았다고 하는 줄 알고 버럭 화를 냈다.
또는 각자가 지닌 의미의 풀(pool)이 다르기 때문에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분명히 A와 B의 관계를 양측이 제대로 파악했다 하더라도 A 또는 B 자체에 대한 의미망이 서로 다를 수 있다. 가령 연인끼리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고 그 의미까지 다 이해했다 쳐도, 두 사람의 내면에서 '사랑'이 차지하는 무게와 입지, 맥락 등은 서로 다르기에 두 사람이 서로에게 행하는 태도와 행동은 미묘하게 다르다. 그 때문에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그 갭 덕분에 두 사람은 연인 사이가 된 것이기도 하다. 같은 말을 듣고 그 의미를 표면적으로는 똑같이 이해했다고 해도, 누군가는 설득되고 감화되어 행동으로 이어지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주식이 매수자-매도자 간 판단 차이로 거래되듯, 언어의 의미 또한 전달자-수용자 사이의 오해에서 비롯한다. 모든 투자자가 똑같이 판단한다면 그 어떤 거래도 체결되지 못하듯, 만약 모든 언어 사용자가 똑같은 의미 체계를 가지고 완벽히 똑같이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그에 따른 행동의 다양화는 나타날 수 없으며 따라서 사회는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판단 미스가 주식 시장을 움직이듯, 역시 언어적 이해의 간극이 실은 인간 관계를 만들고, 각자에게 다른 역할을 부여하고, 공동체를 구성하여 운영할 수 있게 만든다. 단, 주식에서 수익 창출의 기회 이면에 손실의 리스크가 있듯, 언어 사용도 의미 전달이라는 가치 창출의 계기가 되는 반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 또한 분명하다.
저 생각을 경제에 적용한 이가 있었는데 바로 칼 맑스다. 그는 경제 성장과 공황 역시 언어적 이해와 오해처럼 동전의 양면이라고 봤다. 애초에 상품경제가 발달할 수 있는 것은 시장에 참여하는 판매자-소비자 간의 판단 차이 덕분이다. 내가 편의점에서 생수를 1000원에 구매했다면, 나에게 지금은 1000원보다 생수가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판매자는 생수보다 1000원이 더 가치 있기 때문에 매매 성립이 가능하다. 시장에서의 상품 거래가 등가교환이라는 생각은 표면적인 환상일 뿐이다. 우리는 분명 거래 대상 중 한 쪽의 가치에 더 방점을 두기 때문에 거래를 행하는 것이다.
반면, 다수 시장참여자들의 판단이 같아질 때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공황이다. 시장참여자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상품을 구매하려 하지 않는다. 모두가 현금의 가치를 더 중시할 때 기업은 상품을 판매하지 못해 재고가 쌓인다. 결국 이윤을 남기지 못해 운영에 어려움을 겪거나 도산 위기에 처한다. 이것이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것이 공황이다. 흥미롭게도 시장참여자의 판단이 다양할수록 매매는 활발해지고 경기는 호황을 띤다. 반면 시장참여자들의 판단이 같아질수록 경기는 불황이 되는 셈이다. 이는 주식 시장도 마찬가지고 언어 또한 같다.
우리가 그저 구호로만 외치던 다양성이, 혹은 갈등으로 인해 고통을 준다고 원망했던 차이가, 실은 인간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너와 나의 다름에 진심으로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Q. 다른 사람들과 같은 판단을 하고 있을 때 안심한다. vs 다른 사람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야말로 나의 가치가 드러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