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물자체
매일, 아니 매초 매순간 주가가 움직이는 이유는 뭘까. 주가는 어떻게 그렇게 쉴 새 없이 변할까. 하루에도 적게는 플러스 마이너스 1~2%, 많게는 플러스 마이너스 20% 이상 달라진다. 따상에 삼상까지 간다면 3일 만에 2배 이상 가격이 뛴다. 대체 주가를 그렇게 움직이는 동인은 무엇일까.
앞서 밝혔듯 나는 그 이유를, 해당 종목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의 짓이라 생각한다. 물론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있음을 안다. 그들은 내게 이렇게 묻겠지. 그럼 모든 종목이 다 세력에 장악된 것인가? '모든' 종목은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 종목이 그렇다. 그리고 이는 시력만 멀쩡하다면 별 기술적 분석 없이 차트를 보는 것만으로 알 수 있다. 세력이 없는 차트와 있는 차트는 전혀 다르다. 우리가 흔히 보는 차트는 세력이 있는 차트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전자 그런 종목의 차트를 보면 알 것이다. 그런데 아주 간혹 정말 해괴망측한 차트가 보이는데 그런 종목에는 세력이 들어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전혀 동의 못하는 이들이 있음을, 다시 한 번 인정한다.
그들은 주가가 움직이는 이유로, 세력이 아니라 다른 요인을 제시할 것이다. 보통은 모멘텀이라 부르는 해당 기업의 이슈이다. 사업적/경영적/마케팅적 이슈일 텐데, 좋은 이슈가 있다면 주가는 오를 것이고 반대라면 내릴 것이다. 또는 국가 자체의 위기나 상황 변화가 원인이다. 최근 비상 계엄 사태는 한국인이 보기에도 외국인이 보기에도 한국의 위기 상황이었다. 그래서 지수 자체가 며칠 동안 급락했고, 절대 다수 종목의 주가는 그보다 더 큰 폭으로 급락했다. 이는 기업에 딱히 이슈가 있어서가 아니라 기업이 활동하는 제반 환경의 탓이다.
혹은 해당 기업이 자리한 섹터의 호/불황 문제일 수도 있다. 코로나 때 마스크 관련 회사와 진단 키트 회사의 주가가 급등한 것도 그 예고, 얼마 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슈로 예스24와 밀리의 서재 등이 이틀 연속 상한가를 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서 재밌는 건, 세력의 존재를 가정하는 투자자들도 뉴스와 이슈의 중요성을 당연히 인정한다는 점이다. 차이점이라면, 세력을 인정하는 이들은 세력들이 뉴스와 이슈를 이용한다는 입장이고, 세력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은 세력 없이 그냥 뉴스와 이슈에 투자자들이 각개전투로 판단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주가가 변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세력이라고 아무 명분 없이 그저 본인들 마음대로 주가를 오르락 내리락 하지는 않는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보통 7~8% 이내의 등락은 특별한 이유없이 세력들이 조물락거리는 것이라 간주한다. 하지만 10% 이상 주가를 변동시키려면 세력 마음대로 하기 어렵다. 그에 따른 명분으로서의 뉴스나 이슈가 있어야 투자자들이 달려든다. 하지만 하루에 10% 이상 변하는 종목보다는 7~8% 이하로 오르내리는 주식이 절대 다수다. 이들은 단순히 뉴스나 모멘텀으로 설명하기 애매하고 어려운 부분이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양측의 입장에 차이가 없어 보일 수도 있다. 뉴스나 모멘텀을 세력이 이용하기 때문에 주가가 움직인다는 생각이나, 뉴스나 모멘텀에 각 투자자들이 반응해서 주가가 변한다는 생각은, 얼핏 보기엔 큰 차이점이 없다. 하지만 세계관의 차이는 그 세계를 대하는 태도를 다르게 만든다. 세력이 있다고 믿는 투자자와 없다고 여기는 투자자는 그 근본적인 태도부터 다르고 따라서 구체적인 투자 방법이나 전략 등에서 많은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이는 주식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 모든 일의 문제이기도 하다. 과학을 예로 들어보자. 화학은 우주의 삼라만상을 원소의 결합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이렇게 한 번 물어보자. '수소'(H)는 정말 존재하는 객관적 물질일까. 실은 '수소'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 양성자 1개와 전자 1개의 세트가 존재하는 건 아닐까. 그러니까 우리가 '수소'라 부르는 건 다만 업쿼크 2개, 다운쿼크 1개, 전자 1개의 세트는 아닐까. '산소'(O)도 마찬가지일까. 그저 양성자 8개, 중성자 8개, 전자 8개 세트를 '산소'라 이름 붙여 놓고는 '산소'가 정말로 존재하는 거라 착각하는 건 아닐까. 18세기 사람들이 '플로지스톤'이 정말 존재했다고 믿었듯 말이다. 마찬가지로 물이 H2O인 게 아니라 역시 양성자 10개, 중성자 8개, 전자 10개인 집합체일 뿐이지 않을까. 양성자와 중성자, 전자의 갯수에 따라 성질이 달라질 뿐인데, 각각의 세트에 저마다의 원소명을 붙여 실존한다고 믿는 건 아닌지.
많은 이들은 나의 질문에 이렇게 반박하고 싶어질 것이다. 각각의 원소는 저마다 고유한 성질을 지녔다고 말이다. 하지만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분자들 또한 고유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가령, 소금인 염화나트륨은 염소와도 나트륨과도 완전히 다르다. 물 또한 수소와도 산소와도 다르다. 그렇다고 우리가 염화나트륨이나 물을 그 자체의 기본 입자라고 생각하고 다루진 않는다.
사실 이는 순서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각 원소를 발견(?!)한 지 한 세기쯤 후에야 전자, 양성자, 중성자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이미 원소를 토대로 한 화학 이론들이 정립되었기에 바꾸기 쉽지 않았을 터. 그나마 지난 반 세기 동안 양자화학이 양성자, 중성자, 전자 등을 재료로 한 화학이론을 새로 쓰는 중이긴 하다. 만약 과학자들이 처음부터 양성자, 중성자, 전자를 먼저 발견했다면 어쩌면 지금 우리는 주기율표의 원소들을 몰랐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원소는 정말 존재하는 게 맞을까.
'한국'이라는 국가는 어떤가. '서울'은 어떤가. 그것들은 구성원들의 집합체일 뿐 실체는 없다. '중력'은 정말 실체가 있는 걸까. 그저 가설이기만 한 건 아닐까.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우주상수들은 어떤가. 뉴턴 역학 3법칙은? 우리가 배우는 물리학이나 수학의 원리와 법칙들은 정말 존재하는 걸까. 그저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 발명한 프레임이기만 한 건 아닐까. 이렇게 물어본들 물리 법칙이 정말 존재하는지, 아니면 우리가 그런 식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틀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런 것들을 모두 아울러 칸트는 '물자체'라고 표현했다. 내 눈 앞의 책상이 흰색인 이유는 뭘까. 애초에 흰색을 희게 보이도록 만드는 원인을 뭘까. 책상이 이와 같은 형태이도록 만든 근거는? 애초에 책상이 존재하도록 한 근본적인 원인은 뭘까? 이 세상을 지금과 같은 모양새로 존재하도록 만든 전제는 무엇일까. 그것들을 통칭해 '물자체'라고 칸트는 불렀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물자체를 절대 절대 알 수 없다. 우리는 세상의 참모습을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 하긴, '참'모습이라는 게 뭘까. 그런 게 있기나 할까. 역시 알 수 없다.
다르게 생각해 보자. 우리는 지금 '지동설'을 믿고 그 프레임으로 우주를 생각하고, 바라본다. 그렇다면 지동설은 진리이고, 천동설은 거짓일까. 재밌는 사실 하나. 상대성이론이 개발되기 전까지만 해도 실은 천동설의 설명력이 지동설보다 더 뛰어났다. 천동설은 지동설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까지도 설명할 수 있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우수하고 정교한 이론이었다. 그렇거나 말거나 지금의 우리는 천동설을 부정하고, 천동설을 믿었던 옛사람들을 비웃는다.
그렇다면 100년 뒤, 200년 뒤 미래의 지구인들은 어떨까. 지금의 우리를 비웃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지동설이 틀린 이론이 되고 다른 새로운 이론으로 대체되는 건 아닐까. 상대성이론이니 양자역학이니 이런 것도 다 얄팍한 헛소리였고, 더 우수하고 정교한 이론이 나타나 대체하는 건 아닐까. 그런 식이라면 진리라는 건 무한히 저 미래로 딜레이될 뿐이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믿는 이론 체계를 우리는 그대로 믿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건 전혀 잘못된 것도 아니고 멍청한 것도 아니다. 다시 주식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나 또한 세력의 존재를 증명할 재간은 없다. 세력을 본 적도 없고, 그들이 자신의 존재를 커밍아웃하며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다는 뉴스 또한 본 적 없다. 나는 다만 그렇게 믿을 뿐이다. 그렇게 믿었을 때 주가의 변화나 차트의 움직임이 더 잘 이해되고, 또 그런 이해를 전제했을 때 종목을 발굴하고, 매수 타이밍을 재고, 어떤 때에 매도하고, 어떻게 대응할지 등등을 계획할 수 있게 된다.
수소나 산소 따위가 정말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한가. 그런 게 있다고 믿기에 세제를 만들고 약을 개발하고 전기자동차와 수소자동차를 만들고 이렇게 PC와 태블릿과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의 소식과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또 스페이스X는 더 효율적인 탐사선을 개발해 이제는 일반인들도 우주여행을 즐기고 있다. 범인凡人들에겐 그거면 족하다. 주식 투자의 목적도 오직 수익 창출이라면, 그 목적만 달성할 수 있다면 만사 오케이 아니겠나. 그러니 주가가 무엇 때문에 움직이는지를 밝히는 것은 전문가들과 학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하자.
Q. 주가가 움직이는 이유는 세력 때문이다. vs 뉴스, 모멘텀, 시장의 변화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