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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Jul 04. 2017

성숙한 사랑을 시작하는 때

드라마 [혼술남녀]가 전하는 사랑 성공법



드라마 [혼술남녀]의 키워드는 혼술, 공무원시험, 청년실업 등 시의적인 것들이다. 그래서 (꼭 혼술을 하지 않거나, 공시를 준비한 적 없는 이도) 쉽게 공감하게 되는 드라마다. 그럼에도, [혼술남녀] 또한 수퍼갑남 진정석과 찌질을녀 박하나의 사랑을 다룬다는 점에서 뼛속 깊이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반복하고, 진정석-진공명 형제 간의 사랑 다툼이라는 비현실적인 요인을 드라마의 큰 동력으로 삼으며, 끝내 혼술문화와 고시생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양산하기에, 기존 한국 드라마의 구태를 답습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하지만 나는 그런 비판 말고 드라마가 가리키는 손가락과 그 방향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

 

드라마를 보면서 감정적으로 화가 났던 부분은, 진공명 때문에 진정석과 박하나가 이별하는 부분이었다. 그러면서도 드라마는 자꾸만 진공명의 사랑은 진실되고 간절한데, 진정석의 사랑은 피상적이고 이기적이라 묘사한다. 사랑에 간절하고 말고의 기준을 누가 판단할 것인가. 내가 보기에 박하나에 대한 진공명의 마음만큼 진정석의 마음도 간절해 보였다. 그런데도 진공명=정의=피해자/진정석=부정=가해자라는 도식은 드라마를 보기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계속 시청해도 될지 고민까지 들게 했다.(물론 결국 끝까지 다 봤다)

 

하지만 그보다 더 화가 난 이유는, 박하나의 감정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박하나는 진정석을 좋아하는데도, 진공명은 그에 대한 고민 없이 자신의 감정만 진정성 있으며 가장 우선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대상화’라는 점에서도 [혼술남녀]는 기존 연애물의 나쁜 관습을 차용한다. 결과적으로 진공명은 자신의 감정을 포기하고, 진정석-박하나 커플은 무사히 재결합한다. 이는 너무나 당연히 예측 가능한 결말이고, 또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런데 나는 이 지점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진공명의 사랑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말이다.

 

진공명은 극중에서 유일하게 사랑에 골인하지 못한 인물이다. 그 이유는, 진공명을 제외하고 사랑에 성공한 나머지 모든 인물들과의 비교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우선, 친구인 기범의 경우를 살펴보자. 기범은 채연이 자신이 아닌 공명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감정과 자신의 감정을 소중히 여긴다. 물론 처음에는 힘들고 괴로워 하고 공명을 저주하지만, 이내 훌훌 털어버리고 각자의 감정 그대로를 존중한다. 반면, 공명은 박하나가 자신을 연애 상대로 보지 않음을 알면서도, 애써 무시하거나 언젠가 박하나가 자신을 진지하게 생각해 줄 거라고 망상한다. 상대의 감정을 배려하느냐 무시하느냐의 차이다.

 

물론 기범 또한 1년 전에 채연에게 구애하지만 실패했던 적이 있다. 채연의 감정에 아랑곳 않고 섣불리 자신의 감정만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기범뿐만 아니라 채연에게 들이댄 무수한 남학생들의 실패 사유도 마찬가지다. 박하나가 초반에 진정석에게 까인 것도, 이후 진정석 또한 박하나에게 잠깐 거절당하는 이유도 똑같다. 황진이가 구남친 김민호에게 차인 것도, 남친의 현실적인 상황이나 욕구, 마음 상태에 대한 고려 없이, 오직 자신이 원하는 임신이라는 카드만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상대방에 무지하면서, 혹은 상대방을 무시하면서 그의 마음을 얻어낼 수는 없는 법이다.

 

진공명이 상대를 파악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에게 자립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늘 엄마의 그늘 아래에서 어려움 없이 살았고, 이제는 형 진정석의 울타리 안에서 또 편하게 생활한다.(친구 동영과 비교하면 극대화된다) 9급 공무원 공부를 하는데도 혼자 하지 못하고 채연에게 의존한다.(친구 기범과 비교해보라) 공명은 무엇 하나 혼자 해 본 적이 없으며, 스스로 무언가를 해보려는 의지도 없다. 그에게는 항상 옆에서 도와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혼술남녀]에서 유일하게 혼술하지 못하는 인물이 진공명이다. 피상적으로 ‘혼자 마시는 술’이라는 의미의 혼술이 아니라, 스스로의 가장 근원적인 민낯과 마주하지 못한다는 뜻에서 그러하다. 황진이가 김민호와 이별하고 한동안, “흐에엥~ 제가 너무 헤퍼서 헤어졌나 봐요ㅠㅠ”라거나 “헤엥~ 제가 발음이 새서 헤어졌나봐요ㅠㅠ” 같은 말들은 그녀가 스스로를 객관화하며 자기반성하기 시작했다는 방증이다. 동료 강사인 민진웅도 어머니 생전에는 어머니에게 심정적으로 많이 의존하다가, 어머니 상을 치른 후에야 온전히 혼자만의 시공간을 가진다. 황진이의 이별과 민진웅의 상 후에 그들은 서로를 만날 수 있다.

 

그것은 기범과 동영에게도 같은 패턴으로 나타난다. 기범은 1년 전 채연에게 차인 후 채연을 늘 원망하는 척하다가, 채연이 공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안 후로 자신의 마음과 채연의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동영은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자신의 상황을 객관화하고 여친의 마음을 조금 더 헤아린다. 결국 그들은 원하는 사랑을 쟁취한다. 이는 진정석과 박하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결국 드라마가 말하는 사랑에 성공하는 방법은 이러하다. 첫째, 지피.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충분히 고려할 것. 둘째, 지기.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존재인지 명확하게 파악할 것. 그런 의미에서 술자리를 함께 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알아가는 시간이고, 혼술은 자신을 알아내는 시간인 셈이다. 너무 많은 인간관계와 크고 작은 집단들, 끊임없이 정보를 내뱉는 미디어에 지친 현대인에게 내놓을 단 하나의 처방이 있다면, 그것은 혼술이 아닐까.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 조금 더 깊숙이 자신의 내면을 만나는 시간. 진정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자만이 진실한 사랑도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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