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이 Aug 01. 2017

청년과 경찰 사이에는 무엇이 있나

영화 [청년경찰], 결국 경찰이 아닌 청년의 이야기



장면1.

‘프로듀스 101’ 시리즈에 이어 ‘아이돌학교’가 이슈다. 경쟁률이 1000:1이란다. 시청자뿐만 아니라 참가자들에게도 엄청난 인기라는 방증이다. 심지어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참가신청한 사태가 벌어졌단다. 물론 전원 탈락하고 학교가 발칵 뒤집어졌다고. 이는 최근에 벌어진 기현상이 아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격인 ‘슈퍼스타K’도 매년 200만명 이상의 참가자를 끌어모은다.물론 요즘은 시들해지긴 했지만 춤·노래뿐만 아니라 각종 분야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뜨고 지는 시절이 있었다.

    

장면2.

올해(2017년) 9급공무원 일반행정직 경쟁률은 172.5였다. 작년 405.3에 비하면 상당히 많이 줄었지만, 경쟁률이 감소하고 있다고 오해하면 안 된다. 공무원시험 경쟁률은 항상 등락을 반복했으며 늘 일정 수준 이상이었다.앞으로도 이 경쟁률이 감소 추세를 띨 것 같지는 않다.

    

장면3-1.

몇 년 전에 ㅊ평론가의 고민을 들은 적이 있다. 중견작가인 자기 세대가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혹은 글을 쓰려는 이들에게 어떻게 길을 터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무언가 선례를 보이고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할 때인데 그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중이란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그 길을 모색하고 있는 듯하다.

    

장면3-2.

글을 쓰고자 하는 혹은 쓰고 있는 지인들의 불평. 그나마 문학을 하는 이들은 신춘문예라는 공식적인 관문이 있어 통과하면 어엿한 작가 대접을 받지만, 문학을 제외한 나머지 분야에서는 그런 공식 루트가 없다. 방법은 둘뿐이다. 투고를 하거나, 아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지면을 얻거나. 나처럼 주변에 아는 이가 없는 이들은 저런 불평을 삼키며 SNS라는 지면에 글을 올리는 걸로 만족과 행복을 느낀다.

    

장면4.

영화 [청년경찰]에서 기준(배우 박서준)과 희열(배우 강하늘)은 각자 자신이 경찰대에 입학한 동기를 밝힌다. 기준은 집안에 아빠가 안 계시고 가난하여 학비가 전액 무료인 경찰대에 지원한 거라고. 희열은 과학고 출신인데 친구들이 대부분 카이스트에 입학하는 게 따분해 보여 자신은 특이한 행보를 걷겠다고 경찰대에 온 거란다. 쉽게 말해, 둘 다 딱히 경찰이 되고자 하는 의지나 각오는 전혀 없다. 제보다 젯밥에만 관심 있는 케이스.

    

하지만 이는 경찰대에 지원한 둘에게만 국한된 사항이 아니다. 매년 수능을 치는 60여 만 명의 학생들도 아마 비슷할 것이다. 꼭 되고 싶은 직업군이나 희망 분야가 있어서라기보다 여전히 점수에 맞춰 대학과 학과에 지원한다.기업 경영에 관심이 많아서라기보다 가장 높은 점수대이기 때문에 경영학과에 지원하고, 심리학이 무언지는 모르지만 미드 CSI 등을 보고 마음이 혹해 심리학과에 입학한다. 모두가 그렇다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그러하다.

    

위의 4가지 장면은 결국 같은 이야기다. 학생들이 아이돌에 열광하고 공무원시험에 올인하고 혹은 꿈을 위해 달려가지만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모르는 이유는 하나다.아무도 알려주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꿈과 희망을 노래하고 이끌어주는 자가 곁에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딱히 지금의 10-20대들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아마도 전(全) 세대가 방향 없는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전통도 공동체도 단절한 채 원자화된 개인의 고군분투를 동력으로 삼아왔다. 나의 부모님 세대도 그 윗세대도 그간의 삶이 딱히 자신이 꿈꿔온 자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단지, 살다보니 그렇게 돼 있더라, 정도 아니었을까.

    

영화에서 기준과 희열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왜 경찰대에 지원했고 어떤 목표를 가졌는지는 관심 없다. 다만 경찰대에 합격한 아들이 기특하고 자랑스러울 뿐이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들이 경찰대에 지원하기까지의 시간도 비슷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무도 진솔한 상담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거의 방치 상태에 그들을 두었을 것이다. 현재 일반계 고등학교 상황을 아는 이라면 충분히 상상 가능하다. 그나마 기준과 희열은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학생이어서(아마도 성적이 최상위권일 것이다) 다행스런 케이스랄까. 성적이 낮은 다수 학생들의 미래는 이보다 훨씬 어둡다.

    

영화가 보여주는 입학 후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그들 곁에는 아무도 없다. 기준과 희열이 아닌 다른 친구들이 그 사건을 함께 목격했다면 과연 모두가 목숨 걸고 달려들었을까. 그나마 아빠가 경찰이어서 경찰대에 들어왔다는 친구(배우 배유람)가 그들에게 여자 꼬실 수 있는 클럽을 알려주고(덕분에 사건을 목격하게 됐으니 그는 이 영화의 불씨 역할을 한 셈이다) 입고 갈 옷도 빌려주기에 가장 큰 도움이 된 동기지만, 영화 끝까지 그는 사건에 관여하지 못하며 무슨 영문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클럽에서 만난 한 여성은, 경찰이 될 거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기준에게 답한다. “돈도 안 되는 거 왜 해요?” 이는 직업군으로서 경찰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시민으로서 경찰을 대하는 태도를 함축한 표현이다. 경찰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부정적이다. 같은 편이어야 할 지구대 경찰 또한 기준과 희열을 의심하며 오히려 그들에게 수갑을 채운다. 본질보다 절차가 더 중요하단다.

    

그들을 구하러 온 담당 교수(배우 성동일) 또한 그들에게 냉담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의 진심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경찰들이 당장 납치 사건에 전념할 수 없으며 아직 경찰이 아닌 학생이 사건을 담당할 수도 없음을 설파한다. 그나마 대화가 통하는 어른이라 고맙긴 하지만, 끝내 그는 둘의 곁에 머물지 않는다.

    

사건이 해결된 후 학교 측의 입장도 같다. 다수의 교수진은 두 학생을 퇴학시키길 요구한다. 다행히 퇴학은 면했지만 그들은 1년 유급과 500시간 봉사활동이라는 징계를 받는다.

    

부모도 또래집단도 학교도 국가도 멘토도 부재하는 청년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무엇일까. 일반적인 답은 ‘돈 명성 자신’이다. 돈을 택한 자들은 납치범, 명성을 택한 자들은 오디션 프로 참가자들, 자신을 택한 이는 가출청소년 또는 영화의 두 주인공처럼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에 나오는 납치범과 가출청소년과 경찰대생은 결국 동일한 길목에서 서로 다른 길을 택한 자들의 각기 다른 미래다.

    

옆에 아무도 도와줄 이 없는 청년경찰 기준에게 “수사의 세 가지 방법”은 당연히 “열정 집념 진심”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 말고 그가 택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는가. 자신을 떠받칠 바닥도, 이끌어줄 줄도 없는, 오직 몸뚱이 하나뿐인 청년에게, “나는 할 수 있어”라는 마법의 주문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렇다면 열정만 있으면 되는가. 그렇지도 않다. 그들이 납치 사건을 직접 겪지 못했다면 기준은 학교를 불신하며 대충 4년을 마치고 졸업했을 것이고 희열은 별 고민이나 반성없이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해 학업에 임했을 확률이 높다. 물론 그들은 무사히 경찰이 되었겠지만, 경찰로서의 성취감은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자긍심을 가져다준 납치 사건은 우연히 찾아온다. 그들은 단지 어떻게든 그날밤 예쁜 여자와 술을 마시고 말겠다는 집념 하에 한 여성을 미행하다가 우연히 사건 현장을 목격하고 만다. 그 현장에 그들이 없었다면 절대 겪지 못할 일이다. 결국 [청년경찰]의 사회는 이렇게 말하는 셈이다. “네가 경찰이 되거나 범죄자가 되거나 낙오자가 되는 것은 너의 열정과 하늘의 운에 달려 있단다.” 한낱 청년을 위대한 경찰로 만든 것은 개인의 열정과 행운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그러한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납치범이 된 청년들은 실형을 선고 받았을 것이다. 두 경찰대생은 징계를 받는다. 가출청소년은 두 경찰대생을 면회 가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마치 이 사회가 청년에게 줄 것이라고는 ‘큰 벌’과 ‘작은 벌’뿐이라는 듯 말이다. 영화는 그러한 사회를 옳다 그르다 판단하지 않는다. 다만 두 청년경찰에게 흐뭇함과 응원의 시선을 보낼 뿐.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옥자’를 구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