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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Mar 21. 2018

만나러 가는 게 좋은 선택이었나?

합리적 의사 결정 모델로 본 [지금 만나러 갑니다]


몬티홀 딜레마라는 확률게임이 있다. 1990년쯤 미국의 유명 tv 퀴즈쇼에서 하던 게임인데 당시 상당히 논쟁이 되었다. 퀴즈는 다음과 같다. 문이 3개 있고 하나의 문 뒤에는 롤스로이스가, 나머지 두 문 뒤에는 양이 있다. 양이 있는 문을 고르면 꽝이고 롤스로이스를 고르면 그것을 상품으로 준다. 물론 이게 다라면 논란의 여지는 없다.


진짜 골때리는 건 지금부터다. 참가자가 문을 하나 고르면, 사회자는 남은 두 문 중에 하나의 문을 열어서 보여준다. 당연히 사회자가 열어준 문에는 양이 있다. 그러고 나서 사회자는 묻는다. 혹시 선택한 문을 남은 다른 문으로 바꿀 거냐고. 이때 참가자는 바꾸는 게 좋을까 바꾸지 않는 게 좋을까.


밑도끝도 없이 이런 수학문제를 꺼낸 이유는,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과연 수아(=손예진)의 선택이 올바른 판단에 근거한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다. 심지어 수아의 상황이 몬티홀 딜레마의 상황과 비슷하기도 하고.


수아의 관점에서 보면 영화 내용은 간명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하던 우진(=소지섭)과 대학 때 짧게 교제하다 결국 헤어졌지만 수아는 그를 잊지 못하고 다시 만나고 싶어한다. 그러다 교통사고를 당해 3주간 의식불명 상태일 때 그녀는 9년 후 미래로 타임슬립한다. 그때는 그녀가 죽은 지 1년이 지난 시점이다. 그 미래를 3주간 체험하고 현실로 돌아온 수아는 의식이 깨어나 그 행복한 미래를 실현시키기 위해 이미 남이 된 우진을 다시 만나러 간다.


25살 수아에게는 2가지 문이 놓인 셈이다. 우진과 헤어진 그대로 남이 되어 다른 사랑을 찾거나, 다시 우진을 만나러 가 그와 인연을 맺거나. 그런데 장난스러운 운명은 두 번째 문을 열어서 보여준다. 그 문을 열면 너의 미래는 이러할 것이라고. 8년 뒤인 33살에 죽지만 대신 우진과 이처럼 멋진 사랑을 나누고 토끼 같은 자식을 나을 수 있다며 말이다.


수아는 1도 망설임 없이 그 문을 택한다. 그리고 미래의 아들에게 말한다. 자신이 죽더라도 이 삶을 살게 되어서 무척 행복하다고.


수리적 관점에서 보면 수아의 선택은 비합리적이다. 왜냐하면 다른 문을 택했을 때 자신의 미래가 어떠한지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녀는 훨씬 더 긴 삶을 더욱 행복하게 살았을 수도 있다. 자신에게 더 나은 판단을 하려면 각각 두 미래의 가능성(=확률)을 짐작하고 기댓값을 추론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그러한 추정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비교도 해보지 않고 8년밖에 남지 않을 삶을 택했다.


그렇다면 그녀의 선택은 잘못된 판단일까. 적어도 나는 그녀의 선택이 충분히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그녀와 같은 상황이었어도 동일한 선택을 했을 것 같다. 지금 당장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있고, 그와의 사랑으로 더없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보장이 주어졌는데 왜 그 선택을 마다하겠는가. 여기에 확률 계산은 무가치하다.


어릴 때부터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로또 같은 걸 구입하는 사람들은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로또의 가격(=비용)이 1000원인데 반해, 로또 1장당 기대 수익은 1등 당첨금을 20억원으로 가정해도 200원이 안 된다. 쉽게 말해 1000원 주고 200원을 받는 행동이 로또 구매 행위다. 내겐 더없이 비합리적이고 미신적인 소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 멍청한 행동이야말로 우리 삶의 소중한 한 부분을 이루고 있음을 이해한다. 그 한 장의 로또가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손난로와 같은 존재임을 말이다.


그래서 몬티홀 딜레마에서 마지막에 문을 바꿔야 하냐고? 수아의 삶을 응원한다면 그녀와 같은 선택을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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