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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May 20. 2016

[러브레터] 잃어버린 옛사랑의 현재적 의미

그녀는 시간 말고 또 무엇을 되찾았나


영화 [러브레터]는 내가 이 사소한 글을 연재하는 이유를 대변한다. 나는 왜 20년도 더 된 영화에 대한 글을, 사람들이 지금은 별로 관심도 갖지 않을 글을 이렇게도 열심히 쓰고 있는가. 10대 때 내가 본 작품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 기억이 지금의 나에게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들을 더 상세하게 기억하고 정리하기 위해서 나는 글을 쓴다.내가 본 과거의 것들은 단지 그때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내가 더 성숙하게 살아가는 밑바탕이 된다.    


영화의 배경은 내내 겨울이다. 그것은 여자 후지이의 심리를 반영한다. 그녀의 마음은 중3 겨울부터 얼어붙었다. 아버지를 폐렴으로 잃고, 남자 후지이를 전학 보낸 때가 딱 겨울이었다. 그때부터 여자 후지이의 마음은 눈 속에 파묻힌 잠자리 시체처럼 빙장되어 버렸다. 그래서 여자 후지이는 우편배달원의 끝없는 사랑 공세에도 무관심이다. 마음이 꽁꽁 얼었기 때문이다.  


와타나베의 마음도 겨울이다. 그녀의 마음은 2년 전에 얼어붙었다. 약혼자인 남자 후지이의 몸이 눈구덩이 속에 영원히 얼어버렸을 때 그녀는 마음을 동결시켰다. 그녀 또한 마음이 아니라 몸을 얼려버리고 싶어 후지이의 제삿날 혼자 눈 속에 파묻혀 보지만, 쉽지 않다. [러브레터]는 정신적 겨울을 살며,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두 여인이 서로 편지를 주고 받으며 마음을 녹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여자 후지이는 왜 중학교 3년 동안의 기억을 잃어버렸을까? 같은 이름의 남자와 3년 내내 놀림 받는 일은 살면서 쉽게 잊을 만한 일상적인 사건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완전히 까맣게 잊고 지내왔다. 그 기억은 와타나베의 편지와, 감기 기운에 취한 상태에서 들었던 간호사의 호명 덕분에 되살아난다. 그후 그녀의 기억은 봇물 터지듯 콸콸 쏟아져 나온다. 물론 기억의 대부분이 이름과 얽힌 어린 시절의 쑥스러운 에피소드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자. 그토록 특별한 기억들을 여자 후지이는 왜 완벽하게 망각했을까? 그것은 심리적 방어기제로 보인다. 중3 겨울, 그녀는 아버지를 죽음으로, 같은 이름의 남자 동급생을 전학으로 떠나보낸다. 그녀는 인생의 소중한 인물을 한꺼번에 2명이나 잃어버렸다. 그것도 자의가 아닌 운명과도 같은 타의에 의해서. 그 슬픔을 그녀는 견뎌낼 수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그때의 기억을 통째로 삭제시킨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절정 부분. 여자 후지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예전에 폐렴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편지로 적는다. 그 문장을 쓰는 도중 그녀는 41.8도의 고열로 쓰러진다. 감기가 폐렴으로 악화된 것이다. 영화 속에서 여자 후지이는 늘 감기를 달고 사는 것으로 나온다. 그것은 아마도 중3 겨울 이후 계속된 증상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슬퍼하지 못한 대신 망각을 택했다. 그 부작용이 감기라는 상징으로 비집고 나오는 것이다. 편지를 주고 받으며 자신의 기억을 모두 다 떠올렸을 때, 그녀는 그때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깨닫는다. 무려 10여 년이 지난 후에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 슬픔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고열과 폐렴으로.   


그녀는 폐렴을 이겨내고 당당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애도는 끝났다. 그런데 아버지를 잃은 것은 당연히 큰 슬픔일 텐데, 이름 때문에 맨날 놀림 당하게 만든 원수 같은 남자아이 후지이를 떠나보낸 것은 왜 슬픈가. 그것은 여자 후지이가 남자 후지이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자 후지이는 자신이 남자 후지이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일깨워준 이가 바로 와타나베다. 이것이 영화 제목이 러브레터인 이유이다. 여자 후지이와 와타나베는 당연히 서로가 사랑하는 연인 사이는 아니지만, 서로가 각자의 사랑을 알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그것이 편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흥미로운 점은, 여자 후지이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모두 되살려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남자 후지이를 사랑했다는 것도, 남자 후지이가 자신을 사랑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녀의 기억은 그저 객관적 사실로서의 단편적 사건으로 의미화하지 못한 채 끊어져 있다. 후지이 본인도 몰랐던 사랑을, 자신의 기억도 아닌 남의 편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와타나베가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려준다는 점이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이다.    


그것은 감독의 영화에 대한 찬사로도 읽힌다. 와타나베가 여자 후지이에게 중학교 운동장 사진을 찍어달라며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어떤 학교의 운동장 사진은 그저 수많은 운동장 사진 중 하나일 뿐이다. 그것은 전혀 특별하지 않으며 따라서 어떤 의미를 띠지 못한다. 하지만 그 학교에 대한 기억을 가진 이들에게 각각의 사진은 개별적인 스냅샷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사진들 사이에 자신의 이야기가 녹아들어 하나의 스토리가 사진 속에 나타난다. 모르는 사람의 사진 앨범은 그냥 흔한 사진의 모음이지만, 아는 사람의 앨범은 그 사람에 관한 기억과 연계되어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듯 말이다.   


그것이 바로 영화의 힘이다. 각각의 샷과 씬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그 무의미해 보이는 샷들을 편집을 통해 엮어내고 하나의 단일한 이야기와 메시지를 만드는 것이 영화를 만드는 작업이다. 그것이 감독의 역할이고, 영화 속 와타나베가 한 일이다.와타나베는 무의미해 보이는 여자 후지이의 개별적인 기억 속에서 사랑을 찾았고, 덕분에 후지이의 기억은 하나의 러브 스토리로 재탄생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남는 두 가지 질문이 있다. 하나는, 이미 죽어서 이루어질 수도 없는 다 지나간 사랑이, 여자 후지이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여기서 [러브레터]는 영화에 찬사를 보내는 영화인 동시에, 더 나아가 인연과 사랑에 찬사를 보내는 영화로 승격한다. 항상 감기를 달고 겨울 살아가는, 심리적으로 중3에서 멈추어 버린, 그래서 여전히 도서관에서 일하는 여자 후지이는, 자신의 사랑과 타인에 대한 소중함조차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존재였다. 그래서 그녀는 우편배달원의 사랑 공세에도 초지일관이었다. 아마 그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남자들의 애정에도 그녀는 묵묵부답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시간은 10여 년 전 중3에서 멈춰 버렸고,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지나간 사랑과 그 상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충분히 애도하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 후지이의 마지막 러브레터를 보는 장면은 겨울이 아니라 봄이다. 그녀의 마음이 녹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녀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고 드디어 겨울이 끝났음을 암시한다. 잃어버린 시간뿐만 아니라, 기억과 사랑도 함께 찾은 셈이다. 아마 앞으로 여자 후지이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우편배달원과의 사랑일지도.    


남은 질문은 와타나베 히로코에 대한 것이다.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고 간 그녀에게, 여자 후지이와의 편지는 오히려 슬픔과 실망을 안겨다 주었다. 그렇다면, 남의 사랑 이야기를 편지로 전해 듣는 것은 와타나베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것도 죽은 남친의 첫사랑 이야기를. 와타나베는 죽은 연인의 진정한 사랑을 찾아줌으로써 그를 홀가분하게 잊을 수 있게 되었다. 편지가 아니었다면 와타나베는 평생 남자 후지이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시게루 아키바와 불완전한 사랑을 나누었을지 모른다.


두 여자의 편지는 결국, 슬픈 사랑을 망각하던 자에게는 기억을, 아픈 사랑을 기억하는 자에게는 망각을 선사한다. 망각에서 기억으로, 기억에서 망각으로. 그리고 사랑에서 다시 또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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