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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May 13. 2018

성장 없는 성장영화

[레이디 버드]의 부끄러움은 평생의 몫


10대 미국 시골 여성의 성장기. 이렇게 쓰고 보면 정말 나와는 무관한 이야기 같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니 이건 그냥 내 얘기였다. 30대 한국 서울 남성의 성장기.


여전히 엄마에게 응석부리면서도 화를 내기도 하고. 현실의 나 자신이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사람처럼 느껴져 허황된 자아로 치장하고. 영원하고 충만한 사랑을 믿었으나 늘 배반당하고. 가장 친한 친구들이 때론 하찮게 느껴질 때도 있고. 또...


영화의 마지막, 지원한 대학에 합격해 도시로 간 레이디버드는 스스로 만든 가명을 버리고 본명을 말하고, 더 이상 남자와 사랑에 기대하지 않으며, 자신이 20년 가까이 살아온 마을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그는 자동응답기에 대고 말한다. 엄마를 사랑한다고.


그것으로 레이디버드가 드디어 성숙한 어른이 되었구나, 라고 생각하면 큰 망상이다. 이 숙녀가 자라 30대 중반이 되어도 지금의 나처럼, 아니 10대의 자신처럼 똑같이 살아갈 것이다. 여전히 가족과 티격태격, 친구들과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사랑에 목숨 걸다 배신당하다, 자신이 싫었다가 좋았다가. 또...


완벽한 성장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성장영화란 10대를 위한 게 아니라 인생 모두를 위한 장르다. 오늘밤 술집에서 60대 남성들의 대화를 들어보라. 유치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그게 내 모습이기도 하다. 지난 밤 내가 술집에서 친구들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려보라.

그러므로 인생은 완결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연속이 아니라 단절이라고, 영화의 엔딩 숏이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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