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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May 27. 2018

진짜 무서운 중독은

영화 [라잇 온 미] 다시 읽기

폴을 향한 에릭의 크나큰 사랑과 노력, 엄청난 인내에도 불구하고, 폴은 결국 마약을 끊지 못하고 둘은 9년 만에 헤어진다. 이 영화를 보며 나는 사랑이란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질 수 없는 거구나, 한탄했다. 시험 합격이나 취업 승진 등은 혼자 하는 거니까 내 노력에 달렸다지만, 사랑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둘이 하는 거니까 상대의 자유의지를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기에 사랑만큼은 예측도 계획도 불가한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이렇게 영화를 결론 내리고 며칠이 지나도 개운하지 않았다. 저 당연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2시간 가까이 영화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보여주었던가. 그러기에 영화가 담은 함의가 조금은 맥락이 다르지 않았나 하는 낌새가 들었다. 다시 생각해야 했다.


우선 에릭이 사랑하는 폴을 떠올랐다. 그는 어떤 인물인가. 마약 중독자다. 만약 사랑이 노력과 무관하게 실패하기 마련이라고 말하고 싶었다면, 폴을 마약 중독자가 아니라 천하의 바람둥이로 설정하는 게 더 어울렸을 것이다. 에릭은 폴을 너무도 사랑하지만, 폴은 에릭뿐만 아니라 이 남자 저 남자와 항상 침대에서 뒹군다, 그럼에도 에릭은 폴을 포기할 수 없다, 그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폴은 에릭의 사랑만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이런 식의 구상이 더욱 에릭의 사랑과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데 적합했을 거다.



그렇다면 폴은 왜 마약 중독자로 나와야 했나. 둘의 관계로부터 어떤 의미를 읽으려면 폴과 에릭을 어떤 대구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폴과 에릭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으며 이야기를 풀어가야 하지 않을까. 폴은 마약을 끊지 못하고, 에릭은 마약을 끊지 못하는 폴을 끊지 못한다. 폴이 며칠 동안 잠수탈 때 에릭의 행동은 금단현상과 유사하다. 어떻게 하면 다시 폴을 만나 그 기쁨을 반복할 수 있을까 그 고민뿐인 듯 보인다.


폴이 마약이라는 물질에 중독됐다면, 에릭은 폴이라는 사람에 중독됐다. 하지만 본질은 똑같다. 폴이 탐닉하는 것이 마약 성분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쾌락 몽환 안정 등)이라면, 에릭이 욕망하는 것은 폴과 함께 할 때 자신의 신경 체계에 분비되는 호르몬의 영향(=쾌락 행복 안정 등)이다. 에릭은 왜 폴 없이는 못 산다고 생각할까. 왜 혼자서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없나. 마약은 불법, 사랑은 합법이라는 차이밖에 없지 않나. 에릭은 마치 폴이 치료 받아야 할 환자처럼, 불완전하고 결핍된 부정적 인간상으로 여기지만, 정작 본인은 어떤 상태인지 자기 분석을 하지 못한다.(싱글이든 커플이든 자아 탐색은 늘 필수다.)


영화 후반부 에릭의 자위씬은 그런 면에서 폴로부터 에릭의 심적 독립 선언처럼 읽힌다.(폴 없이 에릭 스스로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아니겠나) 그리고 둘은 완전히 결별한다. 이별 후 에릭이 도시의 거리를 걷는 영화 엔딩씬은 개운씁쓸하다. 한동안 에릭은 간헐적으로 금단현상을 보일 것이다. 폴이 그립고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을 때가 가끔 있겠지만, 에릭은 그 중독을 극복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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