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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May 31. 2018

욕망과 우연이 만든 소중한 삶

영화 [스탠바이 웬디]가 전하는 인생의 주문

영화 [스탠바이 웬디]를 보며 이렇게나 운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는 정말이지 펑펑 울다 나왔다. 나는 왜 영화를 보며 펑펑 울었나. (자아분열을 시도하여) 영화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보면, 감동적이긴 하지만 울어버릴 정도는 아닌데 말이다. 슬픔? 감동? 아마 처음 시작은 슬픔 쪽이었던 것 같지만, 그 감정은 이내 경이로움으로 바뀌어갔다.


맨 처음 눈물이 난 건 웬디가 언니 오드리를 만나 감정을 주체 못하는 장면에서다. 웬디는 이제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고 남들 못지않게 일상적인 생활(심지어 아르바이트까지!)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드리는 그 사실을 모르며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웬디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천적으로 거부한다. 나는 여기서 오히려 오드리가 환자이고 웬디가 정상인처럼 느꼈다. 왜냐하면, 웬디는 변화와 성장을 믿는 반면 오드리의 세계는 정체된 채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오드리의 세계는 죽음의 세계이고, 웬디의 세계가 생명의 세계라고 하는 게 맞겠다. 오드리는 웬디가 어린 시절 그대로일 것이라 믿으며 그녀의 성장을 신뢰하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반면 웬디는 자신이 과거와 달라졌으며 이제는 말썽도 부리지 않고 충분히 조카를 돌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아마 실제로도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호소하며 웬디는 이렇게 말한다. 시설에서는 글 쓰고 싶을 때 쓸 수 없고 매일 저녁 보기 싫은 애니메이션을 봐야 하고 매주 목요일엔 먹기 싫은 피자를 먹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웬디가 싫어하는 바로 그 세계는 오드리의 세계와 다를 바 없다. 계획과 안정이라는 이름 속에 억압된 반복과 정체의 일상. 매주 똑같은 일생을 반복할 거라면 인간은 왜 살아야 할까.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 그건 무생물의 영역 아닌가. 주어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해진 TPO에서 예정된 역할분담을 수행한다면 사물과 차이점이 없을 것이다.(물론 누군가는 거기서 평안과 만족을 느끼겠지만 적어도 웬디는 그런 류의 인간은 아니다)


정체된 세계에 사는 오드리는 웬디를 구할 수 없다. 오드리는 웬디도 정체된 세계에 사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웬디를 톱니바퀴의 수렁에서 건져낼 수 있는 건 웬디 자신뿐이다. 정확히는 웬디의 욕망이다. 글을 쓰고 싶다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그리고 그녀는 파라마운트 사에 원고를 제출하기 위해 탈출을 감행한다. 절대로 건너면 안 된다던 횡단보도를 지나 웬디는 속박에서 벗어난다. 다시 한 번, 웬디를 탈출시킨 원동력이 그녀의 욕망임을 기억하자.


그녀는 로스앤젤레스까지 가야 함에도 아무런 계획이 없다. 무작정 현실에 부딪힐 뿐이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계획은커녕 예측조차 하지 못한 무수한 일을 겪는다. 가방과 돈을 도둑맞고, 편의점에서 선량한 할머니를 만나 바가지를 면하지만, 함께 얻어 탄 버스는 기사의 졸음운전으로 전복되고, 웬디는 병원에 입원할 신세가 된다. 급기야 병원을 탈출하지만 원고의 일부를 소실한다. 겨우겨우 도착한 파라마운트에서는 우편으로 도착한 원고가 아니면 받아주지 않는다고. 하지만 웬디는 특유의 재치를 발휘해 원고를 성공적으로 접수하고 나온다. 욕망 하나만 믿고 요람을 박차고 나온 웬디가 만난 진짜 세상은 온통 불확실성과 위험의 용광로다. 어쩌면 그 혼돈이야말로 삶의 역동성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렇다면 원고의 결과는? 당연히 탈락이다. 인생은 불확실성투성이라 하지 않았나. 바라는 대로 노력한 대로 이루어진다면 세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웬디는 행복하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조카와의 첫 만남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웬디가 시설에서 오드리와 대면하지 않았다면.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길에 수많은 타인을 만나지 않았다면. 웬디는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인생의 놀라운 가치는 예기치 않은 사건과 만남에서 온다. 정해진 계획과 궤도를 벗어나 낯선 사람, 낯선 환경을 만나러 갈 용기. 그것은 우리의 욕망에서 나온다고 웬디의 2박3일 여정이 에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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